[신작 도서 인터뷰] <분노의 난임일기>
책 <분노의 난임일기> 표지. ⓒ유노북스
취업도, 집 장만도, 연애도, 결혼도, 임신도 하지 않는 세대, N포 세대가 이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아진 지 오래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드러내놓고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 자칫 잘난 체한다고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와중에 난임 인구가 20만이라는 기사들을 보았다. 반면 신생아수는 30만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나라와 사회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수치이지만, 임신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 4년간의 ‘난임 투쟁’을 겪고 무거운 주제임에도 웹툰으로 유쾌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 낸 책이 있다. 난임 인구가 적지 않음에도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나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데, 소중하고 귀한 콘텐츠임에 분명하다.
생소하거니와, 아기를 갖지 못하고 낳지 못하는 걸 금기시해 온 우리 사회 그러나 한편 임신을 포기한 세대가 시대의 거울이 된 사회에서 ‘난임’이란 무엇일까 자문하게 만든다.
<분노의 난임일기> 김정옥 작가를 만나 봤다.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김정옥 작가 제공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략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웹툰을 그리는 김정옥이라고 합니다.
책 <분노의 난임일기>와 동명의 웹툰을 출간 전에 연재하고 계셨죠?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만화가라고 소개하기는 했지만, 아직 조금 쑥스럽네요.(웃음) 어려서부터 만화를 워낙 좋아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선망하던 직업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작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난임을 겪게 되었는데, 난임과 관련된 콘텐츠가 없다시피 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한번 그려 보자, 라는 마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확히는 ‘만화를 그려 보자‘ 보다는 난임은 이런 것이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게 되었고, 비용이 어느 정도 든다, 라는 걸 정리해서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난임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난임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라서 답답함이 컸거든요. 뭐부터 해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어갈지...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아기가 안 생기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어 봤을 정도예요.
지금은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정보가 많이 올라오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정보가 지금만큼 많지 않았어요. 지금도 여기저기 뒤지면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한눈에 쉽게 알도록 정리해 놓은 자료는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난임으로 혼자 끙끙 앓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요즘 ‘육아’ 이야기는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데, ‘난임’ 이야기는 생소합니다. 세상에 내놓기까지 심사숙고를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사실, 큰 고민 없이 바로 시작했어요. 주변에 아기가 안 생기고 있다는 걸 얘기해 놓은 상태여서, 난임이 알려지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죠. 그리고 난임이라는 생소한 일을 처음 접하게 된 누군가에게 필요한 자세한 가이드를 만들어 주면,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에 그냥 시작해 버렸습니다.
문제는 웹툰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제 경험과 준비가 많이 모자랐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민감한 소재이니만큼 상처받는 분들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해야 하고, 워낙 경우의 수가 많다 보니 단순히 저희 부부의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처럼 난임을 겪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또 검색을 통해 공부를 많이 해야 했죠. 부족한 그림 실력과 맞춤법은 덤이었고요.
이 책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이를테면, 공감, 위로, 도움, 인식 전환, 정보 전달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보 전달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책으로 나올 때는 정보 외에도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웹툰 작업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난임을 겪는 부부가 굉장히 많고 그들의 아픔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겪는 자책과 아픔도 있지만, 난임에 무지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매우 컸던 거죠.
그래서 단행본에는 단순히 난임의 진행 단계만 설명하는 것이 아닌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내용도 함께 담고자 했습니다. 또 난임은 이런 것이다, 숨기고 힘들어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자,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 라는 메시지를 넣었고요.
출간 전 연재를 하실 때 또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작업하셨을 때, 어디에 가장 주안점을 두셨나요? 이를테면, 그림체, 스토리, 레이아웃, 정보 정확성, 분위기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웹툰 작업은 저의 첫 도전이기도 하고,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 올리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고요. 그래도 오래 반복하니 그림이나 내용 정리, 웹툰 스킬 같은 건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 작업할 때는 조금 수월했고요.
웹툰에는 남편과 저만 등장하지만 단행본에는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부부 외에 친구 부부들이 등장하죠. 같이 난임을 겪는 친구, 난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친구 등.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와 위로를 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작가님이 의도했던 대로 책이 잘 출간된 것 같나요?(웃음)
네, 굉장히 뿌듯합니다. 이 부분은 가장 먼저 저의 콘텐츠를 찾아 단행본으로 나오게끔 기획해 주신 편집자님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단행본 출간이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잘 설명해 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편집을 담당해 주신 편집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세세한 곳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듯합니다.
책을 보면, 작가님 부부 포함 세 부부가 나와 스토리를 이끌고 중간중간 방대한 양의 정보가 맥을 짚어 주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더할 얘기나 추가로 전하고 싶은 정보가 있나요?
단행본 작업 때 특별히 중요하게 여긴 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난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에게 ‘난임은 정말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당사자의 가까운 지인들은 난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은, ‘혹시 폐경이에요?’ 입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분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간단한 근황을 나누다가 느닷없이 물어 오는데 굉장히 당황했죠. 난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말이라는 걸 이해하려 했지만, 그날 하루 동안은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아기가 안 생기는 사람을 보고 ‘폐경인가...?’라고 혼자 생각하는 건 괜찮지만, 난임을 겪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죠.
두 번째는 난임을 겪는 분들에게 난임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받아 들여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모든 부부가 고생 끝에 아기를 갖고 부모가 되는 건 아닙니다. 노력과 고생의 결과가 모든 난임 부부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난임의 가장 괴로운 점이죠. 정확한 예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몇 년 동안 낙방하는 고시공부에 인생 전부를 걸고 도전하기보다 도전할 수 있는 기간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한 후 그래도 안 되면 깔끔하게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난임도 마찬가지로, ‘아기’라는 존재가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지만 집착해서 부부의 삶이 불행해진다면 과감하게 아기 없는 삶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
제가 생각하는 난임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뒤집히게 되어 큰 상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난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난임을 가볍게 생각하여 상처를 주고, 난임을 겪는 사람은 또 너무 난임에 얽매여 괴로워하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부디 제 책을 읽은 독자 분들에겐 이 두 가지 메시지가 마음에 남아 조금 더 행복하고 상처를 주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못 다한 얘기와 정보는 다른 식으로 전할 예정이신가요? 이를테면, 웹툰 연재나 차기작으로요.
단행본 준비를 하다 보니, 웹툰 연재를 잠시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난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니 만큼, 출판 후에도 기존 웹툰은 그대로 공개해 놓을 생각입니다.
웹툰으로 연재 중인 제 개인적 난임 스토리는 거의 막바지 단계입니다. 제 얘기가 끝나더라도, 난임 관련 다른 이야기들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난임을 겪은 친구들의 이야기와 육아 그리고 딩크족으로 사는 이야기까지 진행시켜 보고 싶습니다.
생활툰, 정보툰 말고도 다른 욕심들도 있지요. 머릿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스토리가 짜이고 있는데, 그림으로 표현이 잘 안 되니 답답할 뿐입니다. 현재 작업 중인 웹툰으로 열심히 스킬을 쌓아 준비가 되었을 때 새로운 작품을 가지고 오고 싶습니다.
난임 부부로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하나만 뽑아 본다면? 두세 개, 그 이상도 괜찮습니다.(웃음)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은 아기가 생기지 않고 매달 임신에 실패하는 데 오는 슬픔 정도지만, 외부적인 답답함이 더 컸습니다. 친구들과 근황을 주고받을 때나 수다를 떨 때, 아무렇지 않게 아이 얘기도 하고 싶고 친구들의 육아 이야기들도 궁금한데 제 앞에서 최대한 아이 얘기를 꺼내지 않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난임이라 그렇구나...’라고 실감하게 됩니다. 물론 배려하는 마음이 고맙긴 하지만, 그냥 지인도 아니고 가까운 친구들까지 그렇게 행동하면 서로 답답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라도 “아기가 안 생겼고 강제 딩크족이 될지도 모르겠어~”라고 말을 꺼냅니다. 아이들 얘기도 일부러 더 하려고 하고요. 그래야 주변에서도 편하게 말을 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조금은 웃픈 얘기지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이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야야! 나 좋은 일 생겼어~!” 이 말을 하는 순간 듣는 사람 대부분은, 갑자기 눈물을 그렁그렁하더니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격해하며 “드디어! 축하해!! 야, 잘 됐다!!! 임신된 거야????”라며 축하를 쏟아냅니다. 그럼 전 뭔가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 하죠. 그래서 “좋은 일 생겼어”라고 말할 때는 늘 “아, 임신은 아니고”를 덧붙여야 합니다.(웃음)
웹툰 그림은 일반 그림과 다를 텐데, 웹툰 그림을 따로 배우신 적이 있나요? 그림 아닌 글 에세이로 풀어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그림은, 예전부터 만화를 좋아해 이것저것 따라 그리면서 끄적거리는 수준이었죠. 입시 때 애니메이션 관련 전공을 하고 싶어 3개월 정도 미술 학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석고상만 열심히 그리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림보다는 연출과 스토리 쪽에 더 관심이 많았거든요.
처음엔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삼고 그냥 금액이나 절차만 정리해서 올릴까 하다가, 이왕이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화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글보다는 만화가 다가가기가 쉬우니까요. 만화로 그리면 난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호기심에 클릭해 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난임에 대한 벽이 많이 허물어 질 것 같았어요. 웹툰 댓글창에 ‘난임 친구가 있는데, 이렇게 힘든 과정인 줄 몰랐네요, 친구 열심히 응원해 줘야겠어요.‘ 같은 글을 보면 많이 뿌듯하기도 했고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을 거라 짐작 되네요. 앞으로도 계속 만화를 그릴 생각이신가요? 그럴 생각이라면 어떤 작품을 구상 중이신지요?
이왕 시작한 일이니 앞으로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선 정보툰을 빙자한 일상툰을 이어 나가고, 준비가 된다면 아예 다른 작품을 해 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와 SF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이쪽 장르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구상한 스토리들은 수백 가지입니다.(웃음) 제가 생각한 장면과 캐릭터들을 마음대로 그려 낼 수 있는 단계가 오면,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더욱더 발전할 작가님의 앞날이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난임 선배(?)로서 난임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음... 그냥 ‘힘내라. 열심히 하다 보면 임신될 거야’라고 위로해 주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나중에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만 도전하세요. 그 도전 때문에 본인들이 불행해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멈추세요. 인생의 길은 굉장히 여러 갈래입니다. 하나의 길에 집착하다 다른 멋진 길들을 포기하게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블로그 후기나 커뮤니티 이야기보다 전문적인 정보나 책도 읽어 보세요. 제 책을 포함해서요.(웃음)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로 개인 후기들도, 성공해서 부모가 된 모습으로 멋지게 마무리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 이야기들만 접하다 보면, 계속 임신이 되지 않는 본인들의 모습이 실패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와 전문적인 정보를 접하다 보면, 막연히 느껴지는 슬픔보다 ‘지금 내 상태가 어떠하니,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겠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거예요.
힘내시고, 아기가 있든 없든 행복한 가정을 꾸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분노의 난임일기 - 김정옥 지음/유노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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