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표지. ⓒ유노북스
작년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웹툰 형식의 에세이를 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요. 해 본 적 없는 기획과 편집 그리고 출간이기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검색하는 채널과 대상은 명확했습니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이하, '베스트도전')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만을 들여다보며 일상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작품만 선별해 연락을 취했죠. 출간 과정 중 가장 어렵고 지지부진하고 재미없을 기획이 그때 만큼 재밌던 적이 없습니다.
네이버 웹툰이 아닌 베스트도전만을 들여다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가능성'이었죠. 네이버 웹툰은 이미 타 출판사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며 빠르게 계약했을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계약과 기획 등 출간 과정도 복잡할 것이었습니다. 하여, 작가 개인이 직접 올리되 도전만화에서 승격되어 검증된 베스트도전 작품들만 노렸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작가주의'였습니다. 네이버 웹툰은 네이버에서 관리하기에 작가의 견해와 시선만큼 네이버의 입김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개인이 직접 관리하는 베스트도전은 작가만의 고유한 글과 그림이 생생히 살아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요. 혹자는 베스트도전을 네이버 웹툰의 하부리그, 2부 리그라고 말하겠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영화계로 따지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라고 할까요?
인스타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았더니, 은근 많은 수가 베스트도전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징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선별하고 연락하고 만나고 기획하여 내부 결재를 받아 계약까지 간 작품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갸우뚱하고 누군가한테는 산뜻하고 누군한테는 뼈때리는 제목으로, 많은 분께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쉬울 듯 결코 쉽지 않았던 단행본화 과정
올해 초 계약할 당시만 해도 단행본으로 낼 만한 분량의 연재물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하여, 나름 정교하게 단행본 목표 쪽수를 상정하고 연재물의 특성을 고려해 어느 정도 더 연재를 한 후 단행본 작업에 들어가면 좋을지 계산했죠. 올해 여름까지 열심히 연재를 마무리한 후 가을에 출간하기로 스케줄을 짰습니다. 큰 틀에서 스케줄에 변동 없이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름 쉬울 거라 생각했던 단행본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텍스트 작업보다 어려웠죠. 문제는 '교정'이었습니다. 텍스트라면 저자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손쉽게 소통하며 교정을 진행할 수 있죠. 하지만, 저자만의 그림과 그에 따른 작가주의적 글이 합세한 웹툰 형식이다 보니 디자이너는 사실상 빠지고 저자와 편집자가 직접적으로 교정 과정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즉, 기존의 저자-편집자 간의 교정 시행과 편집자-디자이너 간의 기술적 반영에서 저자-편집자 간의 교정 시행과 기술적 반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다시 한 번 디자이너의 최종 반영이 추가되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복잡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해 놓고 보니 값진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회일 텐데, 웹툰 형식의 에세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만화책'이라고 할 만한 책을 내 놓았으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책 자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만화책을 가장 좋아라 합니다. 그렇지만, 회사 차원에서 그리고 실무자들의 협업 차원에서 만화 형식의 책을 자신있게 또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더 특별한 마음이 들었던 게 아닐까도 싶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요.
<결않못>의 롤모델이었던 <막돼먹은 영애씨>
이 책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는 보시다시피 제목이 전부 혹은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만한데, 한 번 보거나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계속 그 저의를 생각해 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왜 결혼을 못하게 된 걸까? 주인공 예민희씨는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흔히들 말하는 '노처녀' 혹은 '올드미스'죠.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지만 명명백백하게 존재하는 '편견'과 '관습' 때문일까요? 작품 속에서 민희씨는 그런 것들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 때문이라고 해요.
민희씨는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또 살고 싶을 뿐인데 온갖 생각들과 고개를 치켜 드는 다양한 모습의 '나' 때문에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은 듯해요. 그 또한 누구나의 모습이겠죠. 이 책의 장점이, 그런 생각들을 가감없이 여과없이 드러내면서도 너무 자조적으로만 빠지지 않고 일상에 두 발을 굳게 서 있으며 은근히 단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깔린 은은한 유머와 때때로 보이는 호소력 짙은 페이소스는 덤이고요.
이 책을 기획할 때 롤모델이 될 콘텐츠를 상정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가장 좋아라 하는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인 <막돼먹은 영애씨>죠. 주인공을 관찰하는 듯한 시점, 리얼 다큐로 보여 주는 일상, 30대 여성의 고군분투, 어쩔 수 없이 삶의 중심이 도는 결혼까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다만, <막돼먹은 영애씨>는 전체적인 기조가 좀 더 전투적이거니와 회사에서의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 주는 게 중심을 이루고 있죠. 막상 책을 내 놓고 보니 기획과는 달라진 것 같네요. 정확히는, 기획이 아닌 머릿속으로 그렸던 상일 것입니다.
'공감'과 '캐릭터'를 자신있게 내 놓다
이 책에서 가장 자신있게 내 놓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두 가지 '공감'과 '캐릭터'일 것입니다. 둘을 이어 '공감 가는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30대 후반 미혼 여성의 현실적 공감뿐만 아니라 기혼자들에게도 추억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공 예민희씨가 스스로만을 천착해 자신 안으로 끊임없이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약한 듯 단단한 그녀는 닫혀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1980년대~2020년대를 두루두루 아우르는 시대적 공감도 함께합니다. 옛날 이야기를 촌스럽지 않게 '라떼는 말이야~' 같은 느낌이지 않게 풀어 내는 데 수준급의 실력을 뽐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오그라들지 않게 자조적이지 않게 풀어 내는 데 기가 막힌 실력을 뽐내고 있죠. 찾아보면 볼수록 디테일하고 깨알같은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캐릭터에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하면서도 또 일상이 중심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주인공 예민희씨와 주변인물들은 우리네와 1도 다르지 않은 면면을 보이거니와 그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누구나이기 때문입니다. 공감을 넘어선 감정이입까지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죠.
깔깔 거리며 속시원하게 웃기에도 꺼이꺼이 슬프게 울기에도 여의치 않은 이 작품, 애매모호할 것 같지만 그런 게 또 인생이 아닌가 생각하면 하등 이상할 게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저 피식피식 얉게 웃고 울먹울먹 희미하게 울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책은 거기까지는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 정변 지음/유노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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