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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춥디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부디, 얼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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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도서] <부디, 얼지 않게끔>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표지. ⓒ자음과모음



한국소설이 짧아진, 정확히 말해 분량과 호흡이 짧아진 역사가 10여 년 된 것 같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 세기 IMF 사태의 한복판 1998년에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소설향' 시리즈로 중편 소설들을 선보인 바 있다. 독자는 책 살 돈이 없었고 출판사는 책 만들 돈이 없던 시절의 고육지책이자 혁신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흐른 후 2009년엔 민음사에서 '민음 경장편' 시리즈를 출범했는데, 당시 트위터로 대변되는 호흡 짧은 콘텐츠의 대세화에 발맞춘 결과물이었다. 앞선 소설향은 2006년에 마감했다가 2019년에 부활했고, 민음 경장편은 2012년에 마감했다가 이듬해 '오늘의 젊은 작가'로 이어졌다. 


이 두 출판사의 시리즈들 말고도 2010년대 중반 이후 경장편 혹은 중편(이하, '경장편') 시리즈는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이와 같은 소설계의 대량공급과 대량수요는 에세이계로도 넘어갔고 말이다. 모두가 다 성공했다고 할 순 당연히 없겠지만, 대세를 넘어 주류가 된 건 사실이다. 한국소설계에 장편과 단편 말고도 엄연히 경장편이 생긴 것이다. 단행본 시리즈가 생겨서 성공을 거뒀으니, 소설 단행본 시장의 밑바탕을 여전히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문학상도 추세가 바뀐 건 당연지사. 장편 자리에 경장편이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계의 주요 축 중에 하나인 자음과모음이 이를 선도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만큼, 지난 2018년에 '경장편소설상'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한참 전인 2009년엔 창간 1년 만에 '신인문학상'에 경장편 부문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여,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은 3회째까지 진행되었는데 3회 수상작 <부디, 얼지 않게끔>(자음과모음)이 '새소설' 시리즈 여덟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120mm*186mm 크기, 200여 페이지의 작디작은 책으로 말이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 줄까. 


'변온인간'이 되다


여행사로 보이는 회사 사무실, 대학생들이 베트남 사파로의 단체여행을 주문했다. 그런데 경리 직원을 일정에 포함시켜 줬으면 하는 요구가 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 본 적 없다는 송희진 주임은 할 일도 많은데 별 것 아닌 일을 처리하러 베트남까지 갈 수 없다며 화를 낸다. 어찌 타일러서 가게 되었는데, 베트남을 수시로 오갔던 담당인 내(최인경 대리)게 잘 인솔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다만 송희진은 더위를 엄청나게 잘 타는 타입이라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사파는 타 베트남 지역보다 훨씬 선선해서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최인경과 송희진은 대학생 단체를 데리고 하노이를 거쳐 사파로 갔다. 별다를 게 없었던 여정은, 그러나 최인경의 목덜미를 계속해서 주시하는 송희진 때문에 조금 삐그덕 대는 듯했다. 결국 터지고 만 최인경은 송희진에게 쏘아부치는데,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것이었다. 송희진은 최인경이 이 더운 베트남에서 땀 한방울, 그것도 목덜미에서 나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하던 참이었다. 송희진에게 설득된 최인경, 둘은 사우나를 찾아 실험해 보고 확신한다. 최인경이 '변온인간'이 아닐까? 땀도 안 나고 온동에 따라 체온도 변하는 변온동물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둘, 최인경의 인체의 비밀은 둘 만의 비밀로 남겨 두기로 한다. 그리고 최인경은, 아니 송희진과 함께 둘은 변온동물에 대해 깊이 파기 시작한다. ('변온인간'은 찾을 수 없었다.) 최인경이 진짜 변온인간이라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고비가 시작될 터였다. 뭔가를 변화시킬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럴 기회가 마지막일지 몰랐다. 최인경, 그리고 송희진은 최인경의 실체를 확인하고 최인경을 살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최인경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 여성의 '연대'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거의 전부를 이루는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을 말하기에 앞서, '작가의 말'을 빌려 작년 10월과 11월 잇따라 세상을 떠난 故 설리와 故 구하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직후 말 못할 자극적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건 그들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조금의 침체기를 겪)던 젊은 여성 아이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둘이 소문난 절친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그들이 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진지하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고인을 대하진 못했을 테다. 아니,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랬을까? 강민영 작가는 이 소설을 그들을 위해 썼고 그들 덕분에 쓸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겉만 보고 판단하며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리와 구하라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그랬고, 소설 속 송희진을 향한 사내 직원들의 시선이 그랬다. 유난히 더위를 견디지 못해 일반적인 회사 차림이 아닌 제멋대로의 차림으로 다니고, 까딸스럽고 성마른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혹은 못하는) 송희진은 그러나 실상 말도 정도 많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최인경은 송희진을 두고 오가는 말에 말을 보태지 않았는데, 그런 최인경의 행동에 송희진은 고마움을 느꼈다. 


드러나지 않은 조심스러울 뿐인 행동을 '연대'의 표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건 송희진의 재능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송희진은 '이상한 인간' 최인경을 두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며 그녀를 돌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비주류끼리의 반란연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경우엔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끼리 인간적으로 끌려 인간적인 연대를 이룬 것이라 보는 게 맞겠다. 그런가 하면, 최인경은 얼핏 송희진한테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인류 최초'의 변온인간이 되어 앞날을 알 수 없을 때, 송희진이 차근차근 앞날을 대비해 보자며 도와 주지 않는가. 하지만, 들여다보면 최인경 또한 송희진을 챙기고 돌보고 보살피고 있었다. 


'봄'이 찾아오기를


소설은, 제목부터 소재까지 한없이 추위에 가깝다. 아무래도 추위로 향하기 때문일 테다. 봄에서 시작해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에 다다르며, 더위를 심하게 타는 송희진은 점점 괜찮아지지만 '변온인간' 최인경은 온몸의 시신경 하나하나까지 추위를 완전히 받아들인다. '변온동물'을 검색해 보면 '변온동물의 겨울 나기'가 연관검색어에 뜨는데,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 최인경 또한 겨울 나기가 시급하다. 즉, 무방비 상태의 기나긴 동면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훑는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의 추운 외피는 한없이 따뜻한 내피 덕분에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이 균형은 소설 내에서도 역시 느껴지는 바,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송희진과 추위를 못 견디는 최인경의 조합이 그러하다. 또한 둘의 성격과 능력 등은 서로를 향하고 또 채워 주되 서로를 자기 식대로 재단하고 제어하려 하지 않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렇다고 미지근한 것도 아닌, '따뜻하게 건강한 관계'인 것이다. 세상에 많은 관계의 방정식이 있을 텐데, 이 두 젊은 여성의 관계처럼만 성립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계절에 상관 없이 겨울을 살아가듯 몸과 마음이 시리지 않을까 싶다. 경제·정치·사회·문화·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문제 아닌 분야를 찾기 힘들다. 무차별적인 전방위 압박으로, 우리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흔들리고 있다. 내실을 닦으며 미래를 준비할 새도 없이, 현실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것이다. 마치,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고 외부의 온도에 의해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처럼 말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변온인간 최인경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송희진의 존재가 그립고 또 고마웠다. 언젠가 나를 도왔을 그 존재,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돕고 있을 그 존재가.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송희진이 되어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어졌다. 따뜻한 연대로 그와 나 그리고 우리를 모두 포근하게 하고 싶었다. 이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은 그런 바람을 내게 줬다. 소설은 춥디추운 겨울에 끝난다. 하지만, 소설의 시작이 봄이듯 곧 따뜻한 봄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