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포스터. ⓒ넷플릭스
불과 얼마전인 2020년 5월, 국내 첫 '냉동인간'이 나왔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크리오러스'와 국내에 냉동인간 서비스를 론칭한 '크리오아시아'라는 업체를 통해 체세포 보존 형태가 아닌 전신 냉동 보존 형태였다. 해당자는 경기도에 사는 80대 여성으로, 숨진 직후 영하 20도로 냉동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급파했다고 한다. 국내에는 아직 냉동인간 보존에 대한 법적·행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러시아로 보내 그곳에서 전신 냉동 보존 처리가 시행되었다. 1억 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고 한다.
5년 전인 2015년, 태국의 어느 과학자 가족이 크나큰 결단을 내린다. 정확히는 가족의 가장 사하똔 박사의 결단으로, 뇌암으로 죽은 2살 배기 딸 아인즈를 전신 냉동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태국 굴지의 대학인 쭐라롱꼰 대학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사하똔 박사는, 과학자의 시선과 딸을 보낼 수 없는 마음과 진보하는 과학의 미래를 믿으며 가족을 설득하고 주위의 반대를 무릎쓰며 전 세계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딘 채 진행한다. 아시아에선 최초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례라고 한다.
아인즈를 전신 냉동 보존하기로 한 태국 과학자 가족의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로 만들어졌다. 아시아 최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불교가 약 95%를 차지하는 절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행한 냉동인간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었을 것이고,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채 한시간 반도 안 되는 러닝타임으로 짧다면 짧을 작품은, 굉장히 과학적인 동시에 굉장히 뭉클하고 생각도 많이 하게 한다.
낯설지만은 않은 '냉동인간'
냉동인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수많은 매체에서, 수십 년 전부터 익히 봐 왔던 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억나는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대표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로 그 자신이 빙하에 갇혔다가 살아돌아왔고 빌런 '윈터 솔저'가 70여 년간 냉동과 해동을 거치며 암살자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1979년 시작된 <에일리언> 시리즈에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우주 여행 시 승무원들은 냉동수면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넘어와, 세계 최초의 냉동인간은 자그마치 55여 년 전인 1967년 암으로 숨진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생물냉동학재단 설립자 제임스 베드포드였다. 그의 인체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에 보관되어 있다. '알코르'는 1972년 설립된 재단으로 <희망을 얼리다>에서 사하똔 박사가 딸 아인즈의 전신 냉동 보존을 맡긴 곳이기도 하다.
현재 기술에서 전신 냉동 보존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 그대로 전신을 있는 그대로 냉동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를 모두 제거하고 피를 모두 뽑아낸 뒤 부동액으로 채워넣은 방법이다. 하여, 지금으로선 보존은 할지언정 되살릴 방법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터, 사하똔 박사가 거는 기대는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다. 과학은 계속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과학자'의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은 계속 변화해 왔다. 나라와 부족의 문화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묘지 매장이 당연했지만, 화장 후 재를 뿌리기도 하고 이제는 봉안당에 안치시키는 게 익숙해졌다. 작품을 보며, 머지 않아 냉동 보존이 시신을 모시는 주요 방법의 하나라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으로선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먼훗날 언젠가 다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할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본인 또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보게 된다고 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과학자' 또는 '과학자 가족'의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한다는 사하똔 박사와 가족들. 감정을 싹 거두고 이성적으로만 다가가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냉동인간 보존. 그렇지만, 어떻게 감정 없이 이성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하똔 박사의 아내를 보고 있자면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냉동인간 보존술에 대해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남편의 과학자적인 시선과 과학에의 믿음(물론 그 또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과 달리 아내가 냉동인간 보존을 대하는 것에는 아이를 한없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이성과 감성의 슬프고도 고귀한 조화이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 빌런으로서의 '미친 과학자'가 종종 나온다. 엄청난 지식과 빙퉁그러진 신념 그리고 가슴 아픈 사연이 뒤섞여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 과학자 말이다. 이 작품에서 사하똔 박사의 첫째 아들 매트릭스가 아빠를 '미친 과학자'라고 칭하는 게 그리 위화감이 들지 않는 이유다. 이를테면, 딸의 암세포를 가져와 배양해 치료약을 만들려고 하는 행동 말이다. 과학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딸을 향한 끔찍한 사랑이 빚어 낸, 출중한 실력을 지닌 과학자의 미친 이야기. 다행이도(?), 그는 거기서 멈췄다.
인생에서 그만큼의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매트릭스, 즉 오랜 시간 혼자였다가 생긴 여동생 아인즈를 향한 사랑이 그녀의 죽음으로 과학적 동기가 되어 아빠를 뒤이어 과학자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아인즈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학적이지만 한편 종교적이면서도 미신적인 믿음. 그야말로 아빠의 이성과 엄마의 감성을 조화롭게 이어받았다.
신기하다, 불교는 내세를 믿을진대 이들 과학자 가족 또한 내세를 믿는 불교신자이다. 즉,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한 게 아닌가? 그들에게 집중포화식으로 쏟아진 질문, '아인즈의 영혼이 쉴 수 없게 막는 것 아니냐' '아인즈의 영혼을 가둔 게 아니냐'에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사하똔 박사는 아이의 영혼을 가둔 게 아니라고, 아이를 보낼 수 없었을 뿐이라고, 아이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답한다. 맞는 답인지, 올바른 답인지 알 순 없다, 판단할 수도 없다.
'죽음'을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자 말로 당사자에겐 씨알도 안 먹힐 공산이 크다. 당사자와 관계자에게 죽음은 슬픔과 아픔의 끝이다. 죽음과 멀리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까. 작품 속 아인즈처럼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면 말이다. 사하똔 박사와 가족들을 윤리적·종교적으로 비난할 순 있을지언정, 개인적으로 판단할 수 없거니와 인간적으로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라면? 아인즈를 냉동인간 보존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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