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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직후 독일을 뒤흔든 암살 사건의 막전막후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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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 포스터. ⓒ넷플릭스



1991년 4월 1일 늦은 밤, 통일된 독일 하의 뒤셀도르프에서 독일을 뒤흔들 암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신탁청장으로 구동독 지역경제 청사진을 구축 중이던 로베더가 자택 1층 거실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암살범은 자택 부근 주말농장에서 잠복해 있다가 첫 번째 총알로 로베더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두 번째 총알로 부인을 부상입혔으며 세 번째 총알은 책장에 가 꽂혔다. 


곧바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된다. 과학기법까지 동원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느 각도로 무슨 총을 쏴서 로베더를 죽였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는데 현장에 버려진 한 장의 자백서였다. 다름 아닌 독일 적군파 RAF가 남긴 장황한 자백서였다. 암살범의 정체를 명명백백하게 지명하는 증거였지만, 정작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한다. 또한 현장엔 지문도 있었다. 문제는 당시 기술로는 쉽게 밝혀내기 힘들었다. 몇 년은 소요될 것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 사건>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실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완전 범죄' 로베더 암살 사건의 막전막후를 다룬다. 독일 통일 직후의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발생한 이 사건, 우리나라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 전후로 로베더보다 더 높은 직급의 더 중요한 인물들이 자주 암살당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얽히고설킨 이해 관계 속에서 또 한 명의 고위급 인사가 암살당했구나' 하고 지나갈 수 있었던 분위기였던 것이다. 


로베더 암살, 독일 적군파? 슈타지?


다른 고위급 인사들 암살 사건은 잘 모르니 차치하고 로베더 암살 사건만을 보면, 그리 단순하게 볼 만한 사항은 아닌 것 같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의심이 다방면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작품에는 당시 로베더 암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수사 관계자들과 로베더와 정치적으로 엮였던 고위급 인사들과 암살범 집단으로 의심받았던 독일 적군파, 슈타지 출신의 사람들까지 총출동했다. 


물증 덕분에 가장 근접한 접근일 독일 적군파 RAF, 2세대 RAF 출신의 두 노인이 출현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유명한 스톡홀름 독일 대사관 테러 사건의 주동자로 감옥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진짜' 적군파였다. 그가 말하길 로베더 암살 사건 현장에 남겨 있던 자백서는 적군파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적군파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 또 어떤 수사관은 로베더 암살 사건을 주동했다고 알려진 소위 '적군파 3세대'의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적군파는 2세대까지만 존재하고 3세대는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냐는 것. 


그런가 하면, 완전 범죄인 점도 그렇고 첫 총알에 치명상을 안긴 점도 그렇고 적군파가 아닌 보다 훈련된 조직일 가능성을 들어 해체된 구동독 국가보안부 슈타지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관점도 있다. 로베더가 추진한 일로 구동독 경제가 초토화되며 그로 인한 불만의 일환으로 슈타지 잔당이 암살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의심만 있을 뿐 확실하지 않다. 


독일 통일 후 동독 경제를 집어삼키는 서독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독일 통일 후 사실상 서독이 동독의 경제를 집어삼키는 양상으로 흘러간다. 서독의 수뇌부는 어차피 동독의 경제는 오래지 않아 무너졌을 것이고 이미 무너지고 있다고 판단했고 또 변명한다. 동독도 서독만큼 잘 살 수 있다는 명분, 동독의 경제를 서독에 흡수한다는 방법, 구동독의 모든 기업을 소유한 신탁청을 발족해 보유한 모든 것을 팔아치워 버린다는 수단.


로베더는 서독의 총리와 경제부 장관에 의해 신탁청장으로 발탁된다. 그는 일찍이 경제부 차관으로 일했고 위기에 처한 거대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해 본궤도에 올려놓기도 했던 독일 정재계의 거물로, 다시 한 번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빨리 민영화를 실시하라는 윗선의 압력에 시달리고 동독 주민들에게 '동독을 팔아먹은 악마'가 되면서도 일을 해 나간다. 서독의 얼굴마담이자 동독의 핵심 타깃이었던 셈. 당시, 동독 주민들의 인터뷰를 보면 통일을 반기기는커녕 인생의 절대적인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고 또 팔려가면 직원들이 해고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에...


일이 일이다 보니 로베더는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암살 4일 전 로베더 부인이 직접 경찰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 요청을 당연히 받아들여 순찰을 강화하고 주위를 지켰다. 그럼에도 로베더는 암살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의문점 중에 하나는 그가 암살당한 1층 거실 창문이 방탄유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낄 정도이면 그 정도 대비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암살범은 로베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면식범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진짜 실세'에 의한 암살? 합리적인 음모론


작품에서는 적군파나 슈타지의 소행이 아닌 서독 내 정치조직일 가능성이 대두된다. 동시에 암살 현장에서 나온 흔적을 분석한 결과 적군파의 일원이라는 물증도 나온다. 그런데, 그는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일련의 과정으로 유추할 수 있는 건, 로베더를 희생양으로 삼아 동독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완전 범죄로 추적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조직이지 않을까 한다는 것. 


그 알 수 없는 조직은 동독의 반발이 너무 거세지기에 자칫 동독을 집어삼키는 데 차질이 일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생각으로 로베더를 제거했고, 실제로 곧바로 동독의 반발은 누그러져 시위대는 해체되었으며, 그럼에도 신탁청은 로베더의 방침을 고수해 동독의 민영화를 진행·완수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조직의 로베더 제거는 상상이지만, 뒤엣것들은 사실이다. 비록 흔하디흔한 음모론의 클리셰를 따르지만, 앞뒤가 들어맞는 시나리오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조직이 실체한다면, 당시 총리나 장관이 아닌 나라를 주물럭거릴 수 있는 '진짜 실세'의 모임이지 않았을까.


로베더 암살 사건을,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력의 소행으로 볼 것이냐 독일 통일을 서독의 동독 경제 침략으로 본 세력의 소행으로 볼 것이냐 그 모든 것 위에서 오직 자신들의 방식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 중요한 세력의 소행으로 볼 것이냐... 당사자는 죽었고 암살범은 잡히지 않았으며 판단은 자유이다. 한 가지,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을 테다. 그리고,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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