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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엎친 데 덮친 격, 한정된 공간의 다섯 사람의 핏빛 스릴러 <팡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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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팡파레>


영화 <팡파레> 포스터. ⓒ인디스토리



7년 전, 그러니까 2013년 <가시꽃>이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뒤늦은 속죄와 단죄에 대한 날 것의 이야기로, 당시 한국 독립영화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으로 이어지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굴곡지고 안타까운 삶의 형태가 이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었다. 자그마치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제1회 들꽃영화상 신인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을 비롯해, 국내외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무서운 신인 감독의 출현을 알렸다. 


이듬해 이돈구 감독은 김영애, 송일국, 도지원 등을 내세운 <현기증>으로 흥행과는 별개로 비평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가시꽃>과 <현기증> 둘다 파괴적이고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들이 그 여파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흔들리는 상황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현기증> 이후 자그마치 6년 만에 신작을 들고 관객을 찾은 이돈구 감독, <팡파레>는 어떤 작품일까. 작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가시꽃>의 들꽃영화상 수상과 겹치는 면이 있다. 


영화 <팡파레>는 이돈구 감독이 연출과 각본은 물론 제작과 편집까지 도맡아 했다. 흔치 않은 모양새이자 능력의 모습인데, 온전히 모든 걸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 미장센, 분위기, 스토리라인 등에서 장르적 색채가 강한 스릴러로,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캐릭터들의 부딪힘과 얽히고설킴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연한 사건과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과연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핼러윈 데이의 늦은 밤 어느 바, 파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갔지만 아직 파티의 여흥이 가시지 않은 때 젊은 여자 J가 들어온다. 사장은 문을 닫고 바 안을 청소하고 J는 혼자 핸드폰을 깨작거리고 있던 사이, 어느 젊은 남자가 또 다른 젊은 남자를 등에 엎고 급히 문을 두드린다. 미심쩍어 보이지만 급해 보이는 모습에 문을 열어주는 J, 하지만 혹시나 하니 역시나 두 젊은 남자는 곧 J를 습격한다. 좀도둑질을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곤 2층으로 올라간 남자, 사장을 발견하고는 몸싸움을 벌인 끝에 칼로 찌르고 만다. 


사장을 칼로 찌는 이는 동생 희태, 같이 온 형 강태는 희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 그는 '아는 형'이자 마약을 운반해 주는 거래처이기도 한 조폭 쎈을 부른다. 막상 와서 보니까 J라는 목격자도 있고 죽은 사람이 바 사장이기도 해 쎈으로서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강태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을 받아들인다. 강태는 쎈 또한 이 사건의 목격자라며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고 시체만 잘 수습해 주면 그동안 숨겨 둔 막대한 양의 마약을 건네주겠다고 한 것이다. 


쎈은 시체를 흔적도 없이 처리하기 위해 잘 아는 시체 처리사 백구를 부른다. 백구 또한 와서 보니까 목격자도 있고 시체 처리를 의뢰한 이가 쎈이 아닌 것에 격분한다. 하지만 그 또한 쎈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을 받아들인다. 이제 시체만 잘 처리하고 강태가 돈만 잘 지불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J가 한 마디 던진다. "이 사람 사장 아니구요, 제가 사장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 검사였어요." 그 파장으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데... 과연 이 다섯 사람은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다섯 주인공의 정확하고도 완벽한 케미


영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인원의 등장인물들이 이끈다. 주조단역을 모두 합해도 20명이 되지 않을 것 같고, 극을 오롯이 이끄는 이들은 불과 5명뿐이다. 그에 따라 공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정적이다. 1, 2층을 둔 바에서만 사건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영화 같지 않고 연극 같다. 연극이라 하면 무엇보다 캐릭터가 중요할 터, 이 영화 또한 캐릭터가 가장 돋보인다. 


5명의 주요 캐릭터가 모두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어느 한 명만 빠져도 극이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어느 한 명만 더해도 극이 재밌지 않을 것이다. 정확하고도 완벽하게 '케미'를 이룬다. 작품을 이루는 주요 장면, 작품을 나아가게 하는 주요 장면, 작품을 극적이게 하는 주요 장면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두 캐릭터가 불꽃 튀기게 대치한다. 각각 그들만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때그때 형성되기도 한다.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스토리라인에 한정된 인원과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못 지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간이 갈수록 설정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감독도 잘 알고 있는 듯, 점입가경 식의 사건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시간의 틈이 짧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집중하게 되는 내러티브를 창조해 내보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캐릭터의 활용 방법도 한몫했을 테다. 주요 캐릭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 차를 두고 한 명씩 등장해 포커싱을 주어 주위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캐릭터에 집중시켰다. 그러다 보니, 몇 부에 나누어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날 것'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겉모양과 다르게,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완벽하게 직조된 구조적 영화라고 생각된다. 


'전복' 또는 '역전'의 메시지


이 영화를 영화적 또는 연출적 기술로만 들여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기술 구조적 연출 방식과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전복' 또는 '역전'의 메시지라고 해야 할까. 주지했듯 그동안 한국 독립영화의 한 맥을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 피해자가 된 가해자'의 이야기가 형성했다면, 이 영화는 조금 비틀어 '강자가 된 약자, 약자가 된 강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장르적으로 표나지 않게 세련되게 표현해 낸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시작점에선 도둑질을 하고 J를 습격해 묶여 있는 강태와 희태가 강자였다면, 희태가 살인을 저지른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강자가 한 명씩 늘어난다. 강태와 희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한다. 묶여 있는 J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J의 한 마디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J와 강태와 희태가 상황적으로 강자가 된다. 쎈과 백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작가주의적' 독립영화 측면에서 보면 퇴보했다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보는 이들에겐 훨씬 많은 재미를 주는 건 분명하다. 문학도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르적 다양성을 내포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다. <팡파레>는 한국 독립영화가 시대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를 이끌고 만들어 가는 모양새를 구축하는 데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아니, 차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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