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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심리적 불안감이 짙게 깔린 해양 재난 스릴러 <딥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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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딥워터>


영화 <딥워터>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찬란



올해 여름은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다. 종종 더웠지만 대체로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물론 장마철이 지나 8월의 한여름으로 접어들고 나서는 어떤 무시무시한 더위가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지금 선선한 만큼 다음에 무더울까 봐 겁이 난다. 여행을 떠나기도 힘든 시국이니 마음이 종잡을 수 없어지는 요즘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대리만족일 텐데, 영상물이 그 역할을 해 주곤 한다. 


대체로 한여름에 맞춰 블록버스터 액션 대작이 만들어지고 찾아온다. 우리는 그런 작품들을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2020년엔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속을 뻥 뚫어주며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블록버스터 액션 대작이 말이다. 대신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북유럽 스웨덴에서 찾아온 <딥워터>도 그중 하나이다. 


<딥워터>는 제목 그대로 주로 물속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을 그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여름이 아닌 한겨울이다. 듣고 보니 괜찮은 게, 한여름에 한여름 배경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보다 한여름에 한겨울 배경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게 대리만족이라는 개념에선 더 어울리지 않는가 싶다. 더군다나 보기만 해도 추워지는 북유럽의 한겨울 아닌가. 모든 걸 떠나서 흥미가 가는 요소인 건 분명하다. 


절체절명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어린 시절 물에 빠진 여동생 투바를 구해내지 못해 엄마한테 존재 가치를 논하며 혼난 게 몇 십 년 동안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이다, 그녀는 이혼 위기에 처한 집을 떠나 엄마, 투바와 함께 여행을 간다.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그 해안으로 말이다. 한편, 잠수부로 일하는 투바는 여행을 오기 직전 거대 유람선 프로펠러 청소 일을 하다 프로펠러 오작동으로 죽다 살아왔다. 


심한 감기에 걸린 듯 엄마는 함께하지 못하고 두 자매만 왔다. 함께 물속 깊이 잠수해 엄마와의 옛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을 탐방하기도 하는데, 배 다른 자매인 이다와 투바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었다. 엄마가 이다 아닌 투바하고만 추억을 남겼던 것이다. 이다로서는 가정 불화에서 거리를 두고자 힐링 여행을 와서 트라우마를 맞딱뜨린 것도 모자라 엄마와 투바와의 거리감까지 느끼게 되고 말았다. 


그러던 차 해안가 절벽에서 돌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거암이 투바를 덮친다. 물속 깊이 추락한 투바, 침착한 투바의 안내와 지시로 이다는 겨우 투바를 찾아낸다. 자그마치 수심 33미터, 이다는 우선 얼마 없는 공기통을 바꾸고자 지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떨어진 돌들이 공기통을 놔둔 곳을 덮치고 말았다. 꼬이기 시작하는 이다, 점차 심리적 안정감을 잃어가는데... 아무리 프로 잠수부에 침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투바이지만 정작 그녀는 물속 깊이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자매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해양 재난? 심리 스릴러?


영화 <딥워터>는 해양 재난 심리 스릴러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하다. 다만, 해양 재난으로선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를 내보이고 있는 데 반해 그만큼 중요한 심리 스릴러는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진 못한 것 같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시피 한 해안가에서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거암에 깔린 동생을 구하고자 여러모로 심리적 불안정을 안고 있는 언니가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라도 충분히 있을 만한 재난 상황이기에 심히 감정 이입이 도출된다. 거암에 깔린 이로서 또는 거암에 깔린 이를 구하고자 하는 이로서 말이다. 누구라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해도 살아나가기 힘들고 또 구하기 힘들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름답기 짝이 없는 설원을 배경으로, 순도 100% 무서운 자연의 힘과 대면한 인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특별할 수밖에 없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건 물론 해양 재난만은 아니다. 오히려 심리 스릴러가 영화의 중심에 가깝다. 원제가 'Deep Water'가 아니라 'Breaking Surface'인 것만 봐도 유추해 볼 수 있듯, 이다의 마음속에 있던 심리적 불안정이 한순간에 폭발해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과 그 마지막까지를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하겠다. <딥워터>는 해양 재난 장르에 천착한, 우리나라에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답답함과 갑갑함과 분노까지 느끼는 이유


하여, 영화를 보면서 이다의 행동에 한없는 답답함과 갑갑함과 분노까지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분히 감독이 의도한 바였을 테고, 영화는 그 의도한 바를 충분하고도 넘치게 표현해 냈다. 자연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절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때에도 거짓말처럼 거대한 실수를 하며 일을 그르치려 한다.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부르고...


들여다보면 이다의 어리바리한 모습과 계속되는 실수는 능력이 아닌 심리 때문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투바가 거암에 깔려 물속 깊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상황이 아닌, 오랫동안 계속된 트라우마와 이혼 위기의 가정과 엄마 그리고 투바를 향한 말 못할 질투심 같은 것들이 한데 뭉쳐 한 번에 그녀의 마음에 들이닥쳤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보고 이렇게까지 생각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데 있다. 설령 가닿았다 해도 남는 건 엉뚱하게도 심리적 안정감에 따른 '가족애'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가족애를 말하고자 이렇게 극한 상황에까지 돌려돌려 보여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표면의 해양 재난에 천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듯하다. 적당히 수준의 킬링타임용으로 한여름에 나쁘지 않은 정도 아니겠는가 말이다. 


80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많은 걸 표현해 내는 건 힘들었을 테다. 한편 짧은 러닝타임은 여름용 킬링타임 영화로 좋은 신호인데,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놔두고 장점을 살려 영화를 나름으로 즐기면 어떨까 싶다. 다만, 영화를 보며 너무 답답하고 갑갑해서 분노까지 느낄 때 그 이면의 심리적 불안정을 생각한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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