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욕창>
영화 <욕창> 포스터. ⓒ필름다빈
퇴직 공무원 창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길순을 집에서 돌보고 있다. 그 둘을 모두 챙기는 이가 있으니 수옥이다. 조선족 불법체류자 수옥은 월 200만 원을 받으며, 창식을 대신해 길순을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병든 노모 길순을 모시는 중년 부부 창식과 수옥인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순의 등 아래 부분에 욕창이 생긴다. 창식은 큰 아들 문수와 막내 딸 지수에게 알린다.
지수가 와서 엄마의 욕창을 들여다보았더니 자못 심각한 상태였다. 수옥에게 크게 나무라고 돌아간다. 반면 문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수옥은 일요일마다 길순의 옷을 잘 차려 입고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수옥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던 창식은, 그녀를 미행하기에 이른다. 알고 보니 그녀는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식은 수옥에게 무뚝뚝하게 굴기 시작한다.
수옥의 뒤를 밟고 돌아온 창식은 피인지 똥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칠갑이 되어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오열한다. 다음 날 그는 사소한 이유로 수옥을 나무라고는 뺨을 때리고 쫓아낸다. 큰 며느리와 막내 딸이 집으로 와 대책을 논의한다. 길순이 요양시설로 가길 바라는 그들, 하지만 창식은 극구 반대한다. 결국 수옥을 다시 집으로 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곧 수옥의 불법체류자 문제가 터지고, 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족의 곪은 상처도 터져 버린다. 그들에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이 시대 평범한 가족들의 고민
영화 <욕창>은 생각하면 할수록 들여다보면 볼수록 살 떨리게 두렵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사는 이 시대 평범한 가족들을 적확하게 그려냈다. 제목 하나 기가 막히게 지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욕창'이 단순히 다쳐서 나는 상처가 아닌 한 곳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 장애가 생겨 조직이 괴사되어 생기는 궤양이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에 생기는 문제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데 적합하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심혜정 감독은, 독문학을 전공하고 엄마의 삶을 살다가 40세를 목전에 두고 늦깎이 미술학도가 되었지만 쉽지 않아 실험 작업을 하며 영상·사운드 쪽에서 길을 찾았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를 찾았다가 페르소나가 될 김도영 배우를 만났다고 한다. <욕창>에서 지수 역으로 분한 그는 20여 년간 크고 작은 영화에서 단조주연으로 활동해 오다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장편 연출 데뷔를 했다.
감독 본인이 오랫동안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며 돌봄 노동을 했고 2013년 다큐멘터리 <아라비아인과 낙타>로 돌봄 노동에 단면을 심도 있게 비춘 바 있는 심혜정 감독, 그 경험과 감정을 살려 <욕창> 작업을 했을 터다. 덕분에 우린, 내가 속한 가족의 면면을 다시 돌아보게 됨과 정체되어 있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돌봄 노동'의 모습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욕망과 갈등과 대립의 가족
영화엔 많은 인물이 출현하진 않는다. 직접적 당사자라고 할 만한 이는, 창식과 수옥과 지수 그리고 길순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이 관계도에서 무엇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영화는 '욕창'을 시발점으로 하여 이들 각각의 욕망을 끄집어 내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을 보여준다. 영화적인 걱정은 접어두고, 영화 밖에서 대면하게 될지 모를 우리를 걱정해야 하겠다.
창식은 병든 길순을 두고 수옥에게 남모를 연정을 품고 있다. 수옥은 불법체류자로 불안에 떨면서도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창식의 집안인을 책임지고 병든 길순을 보살피며 먹고 자고 돈을 받고 있다. 지수는 막내 딸임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문수는 아버지가 미국에 가 있는 둘째 아들 용수에게만 퍼주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가 하면, 지수에겐 자신을 돌 보듯 하는 남편과 딸이 있다. 그녀는 집이 불편하고 일터인 목공소가 편한 듯하다.
수옥의 불법체류자 문제가 터져 위장결혼이 필요하다 하니 나가야겠다고 하자, 창식이 자신과 결혼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로선 병든 아내를 돌보기 위해 그녀와 이혼하고 수옥과 결혼하려 한 것이다. 가족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갖는다. 자식들은 창식과 수옥의 결혼을 반대하며, 길순은 요양시설로 보내고 창식은 실버타운으로 갈 것을 제안한다.
가족들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묵혀두고 말하지 못했던 욕망을 꺼내며 갈등의 불을 지피고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각자의 크고 작은 속사정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들 또한 상처 받는다. 봉합되어 지지도 아물지도 못할 것 같다. 영화는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실을 보여주듯 긴장된 가슴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게 한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 가닿는 문제의 근원
<욕창>을 가족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끝내면 섭섭할 수 있다. 들여다보면 또 다른 생각거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문제에 크게 일조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자신 또한 문제의 발화점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일가족 누구도 하지 못하는 두 가지 일을 나름대로 해내고 있다. 길순을 돌보고, 창식을 돌보고. 창식을 포함해, 자식들 모두 돈으로 참으로 엄청난 일을 대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식들 중 유일하게 막내 딸 지수만이 매우 일요일마다 와서 부모님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수옥을 포함해 '왜 여자들만 돌봄 노동을 하는가' 하는 물음에 가닿게 된다. 큰아들 문수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큰며느리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병든 아내 길순을 돌보는 건 창식의 일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게 섬뜩하지만 현실적이라고 한다면, 창식이 아내를 외면한 채 수옥에게 마음이 가닿고 또 표현하는 건 불쾌하기만 할 뿐이다.
이 가족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길순이 아프지 않았으면 괜찮았을까, 수옥을 들여놓지 않았으면 괜찮았을까, 문수에게도 둘째만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면 괜찮았을까, 지수로 하여금 자식이 자신 하나뿐인 것인가 하는 마음을 들지 않게 잘 했으면 괜찮았을까. 이 모든 걸 하면서 하지 않았으면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조건 다른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가족이라면 반드시 그랬을 테다.
문제는, 바람과 불만이 욕망으로 변해 가는 와중에 가족들끼리 서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 상당 부분은 가장인 창식으로 향했을 터, 가부장제의 원제까지 가야 문제의 근원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욕창'은 겉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듯, 가부장제 하의 가족도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근원을 맞딱뜨린 후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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