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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야구밖에 없는 '그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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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야구소녀>


영화 <야구소녀> 포스터. ⓒ 싸이더스



'이주영'이라는 배우를 KBS 드라마 스페셜 2019 <집우집주>라는 제목의 단막극에서 처음 보았다. 연기력과 생김새와 목소리까지 인상적이었는데, 얼마 후 영화 <메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아니, 눈에 띄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와 영화는 하루를 차이로 방영되었고 개봉하였다. 이후 그녀의 필모를 되짚어 보니 여기저기에서 자주 봤던 게 확실했다. 


2016년 <춘몽>, 2017년 <꿈의 제인>, 2018년 <협상> 그리고 2019년 <메기>까지 주로 메이저급 독립영화에서 주요 캐릭터로 얼굴을 비췄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녀를 2019년에야 '발견'하게 된 것이리라. 그녀에게 2020년은, 2019년에 이어 또 다른 도약의 해라 할 만하다. 그동안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오늘의 탐정> 등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비추다 <이태원 클라쓰>로 크게 빛을 본 것이다. 


그리고 영화 <야구소녀>로 다시 한 번 독립영화계의 '원톱'임을 확실히 했다. 앞으론 그녀를 메이저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야구소녀>는 그녀만의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 하겠다. 20년 만에 탄생한 여자 고교야구 선수 '주수인'으로 분해, 남자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야구라는 운동 종목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홀로 이끌어가다시피 했다. 끌리는 스토리와 그에 걸맞는 캐릭터가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예측은 가지만 어떻게 던질지는 궁금하다. 


야구밖에 없는 '그녀',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


백송고교 야구팀, 주수인은 졸업반이지만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지명받는 데 실패했고, 단 한 명 그녀와 함께 어릴 때부터 함께 야구를 해 온 이정호만 지명받았을 뿐이다. 그녀는 최고 구속 134km에 볼회전력이 일품인 천재 야구'소녀'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그녀만큼 던질 수 있는 '여자'는 전 세계에서도 몇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프로의 발밑에 다가가기도 힘들다. 


야구팀에 새로 부임해 온 코치 최진태, 그는 프로 출신도 아니고 코치 경력도 없지만 감독의 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도 실력은 있었던 듯 주수인을 전담한다. 처음엔 감독의 말마따나 본인의 생각에 따라 주수인으로 하여금 프로야구선수를 포기하게 하려 했지만, 주수인의 진심과 일말의 희망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녀가 시속 134km라는 '빠른' 구속을 자랑하지만 프로에는 턱 없이 모자랐기에, 그녀의 강점인 볼회전력을 살려 '너클볼'을 개발한다. 


프로의 지명은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트라이아웃이라는 구단 개별 입단테스트를 받게끔 하려 한다. 물론 그 또한 너무나도 높은 벽임엔 틀림없지만 말이다. 그녀는 최진태 코치의 전담마크로 특훈에 들어간다. 한편, 그녀에겐 무능하지만 자신을 응원해 주는 아빠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열심히 살지만 자신을 응원해 주지 않는 엄마가 있다. 야구밖에 없는 그녀가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엄마의 현실에 기반한 잔소리와 걱정과 협박이 날아든다. 그녀는 과연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소수자로서의 여성 성장 스포츠 드라마


1904년 한국 땅에 처음 야구가 도입되고 1915년 최초의 대회가 열리고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되며, 한국 야구의 역사가 100년 이상 흐르면서 여자가 프로 선수로 뛴 적은 한 번도 없다. 엄연히 여자야구 국가대표팀도 존재하지만, 프로팀은커녕 실업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팀과 리그만 존재한다. 농구나 배구처럼 프로여자팀과 리그가 존재하거나 축구처럼 실업팀이 존재하는 타 구기 종목과 달리 여전히 보수적이기 짝이 없다고 하겠다. 


실제로, 1999년 안향미 선수가 대통령배 전국고교 야구대회에 출전해 여자로서는 '처음' 공식 대회 출전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영화 <야구소녀>가 바로 안향미 선수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 속 '20년 만에 탄생한 여자 고교야구 선수'라는 타이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라인과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는 소녀. 


프로야구 선수는, 되고자 하는 모든 이의 꿈이지만 되고자 하는 거의 모든 이가 도달하지 못한다. 일례로 작년 전국 초중고 야구선수 수는 8000여 명, 그중 프로야구 선수로 뛸 수 있는 수는 200여 명으로 4%에 불과하다. 그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여자'로서 프로야구 선수가 될 가능성은 한없이 0%로 수반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면 보다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지 않을까 싶다. 


하여, <야구소녀>는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고 모두 알맞다. 스포츠 영화로 보아도, 여성 영화로 보아도, 성장 영화로 보아도, 소수자 영화로 보아도, 드라마 영화로 보아도 좋은 것이다. 영화엔 최소한의 박진감과 감동이, 극적인 요소와 응원하게 만드는 연기와, 생각할 거리와 변화구 없이 직구로 승부하는 연출력이 두루두루 보인다. 개인적으론, 소수자로서의 여성 성장 스포츠 드라마라고 생각하며 보았다. 


빈 구석이 있지만 응원하게 되는 영화


아직까지 남자만의 전유물이라 할 만한 프로야구로의 짐념 자체가 여자에겐 소수자로서의 차별을 뚫고 나아가려는 의지로 보인다. 영화는 '환경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시선이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라는 시선을 전제한다. 여자는 야구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아닌, 기본적으로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뿌리지 못하면 프로야구 투수로 두각되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 것이다. '여자'로선 특출나게 빠른 속구를 뿌리는 주수인이지만 그래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기해하지만, 그대로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빛을 발하는 게 '강속구'에서 '너클볼'로의 전환이다. 성장으로서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강속구는 명백히 그녀의 장점이지만, 그녀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데는 장점이 아닌 단점이 되고 만다. 하여, 그녀'만'의 장점이라 할 만한 볼회전력을 살린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을 불러내어, 자신이 되게 하는 건 정녕 어려운 일이 아닌가.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신체와 자기확신으로 이뤄낼 거라 믿으며 응원하게 된다. 비록 영화 속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스토리와 메시지와 연기력, 그리고 연출력에 비해 영화 자체는 빈 구석이 종종 눈에 띈다. 주수인의 여성으로서 스포츠 선수로서의 성장에 있어 부모님이 자못 큰 역할을 하는데 그 방향성이 잘못 되었다기 보다 어설펐다. 부모님은 이상으로서의 프로야구 선수와 대조되는 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는데, 너무 예측가능했거니와 앞뒤를 연결하는 사연이 부족했다. 또한 주수인의 절친 이정호와 한방글은 서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거의 소모품처럼 쓰였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런가 하면 전체 스토리의 큰 분기점들 간에 이어짐이 매끄럽지 않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전개가 종종 보였다. 어리둥절하여 스토리를 따라가기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빈 구석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치명적이진 않았다. 그럴 때마다 영화가 말하고 보여주려는 바를 정확하고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다. 예측가능하지만 긍정적이고 올바른 바를 흔들림 없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건 정녕 어려울 텐데 이 영화는 해냈다. 논란의 여지 없고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는 대신, 나의 생각이 너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서 좋았다. 이 영화는 할 수 있는 최선을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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