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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전쟁의 참상에서 후대에게 전하는 절절하고 진솔한 편지 <사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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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사마에게>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2010~11년에 걸쳐 아랍권 민주화 운동이 폭풍처럼 불어닥쳤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며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개중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오래 계속되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시리아'이다. 시작은, 여타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2011년 1월 말경의 '시리아 민주화 운동'이었다. 장장 40여 년 동안 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아사드 가문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이후 아사드 정권의 강경 대응과 함께 다양한 원인이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국제 사회도 개입하면서 '시리아 내전'으로 치달았다. 말 그대로 정부군과 반군과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으로 옮겨간 다양한 역사적 사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시리아 내전 또한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알기가 힘들어졌다. 와중에 애꿎은 이들만 피해를 보기 마련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의 최전선, '알레포'에서 대학을 나오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전쟁으로 휩쓸려 버린 어린 감독 와드 알-카팁이 딸 사마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와 다름 아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폭격이 이는 전장의 도시에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고 의사 남편과 함께 시민들을 돌보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5년 후 알레포에서 쫓겨나갈 수밖에 없을 때까지의 기록이다. 


폐허의 도시를 지키는 이들, 참상에서 태어난 '사마'


2011년, 와드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알레포 대학교 학생이었다. 그녀는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은 채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걸 영상으로 남기려 했다. 시리아 민주화 운동의 희망찬 시작도 담았다.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정부의 강경 대응이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어나갔다. 많은 이가 도시를 떠났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친구 함자와 결혼해 뜻을 굳건히 했다. 


연일 폭격이 이어졌다. 자유를 지키는 것도, 도시를 지키는 것도 힘들었다. 자신 한 몸 지키기도 힘들었지만, 와드는 함자와 함께 무너진 병원을 다시 세우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했다. 와중에 천사같은 딸 사마가 태어났다. 이런 세상에, 이런 곳에서 태어나게 해서 한없이 미안했지만 그녀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고 그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은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까지 손 써볼 시간도 없이 죽었다. 그들은 사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도 언제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었던 것이다.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고 치가 떨렸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실존적으로 싸움을 계속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16년 코앞까지 다가온 정부군의 무차별 공격에 그들도 알레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군 소속이라 할 순 없겠지만, 반 정부군의 중요인물인 그들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들의 딸 사마의 운명은?


일찍이 보기 힘든, 전쟁의 진면목


작품은 일찍이 보기 힘들었던 전쟁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 영화가 나왔고, 그중 대부분이 '리얼리즘'에 천착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참상을 가장 참혹한 형식으로 보여주려 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리얼이 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다큐멘터리적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다큐멘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작품은 전쟁의 한가운데를 여과없이 내보인다. 


그렇다고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려는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나아가, 전쟁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려는 목적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비록 감독이 반독재·반정부군의 편에 서 있는 건 맞지만 말이다. 이 작품이 진정 전하려는 건 인도적인 차원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딸로 대변되는 후대에게 진솔한 편지인 것이다. 우리가 목숨을 담보로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고. 


독재 정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여긴 우리(국민) 땅이지, 너희(정부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아사드 가문) 땅이 아니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총과 포에 총과 포로 대응할 순 없지만 온몸으로 버티며 만방에 보이고 있다. 그런 한편, 사마에게는 사람이 태어나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 주려 하는 것 같다. 누리기 위해 행하고, 행하기 위해 누리는 것. 올바른 길을 알고 올바른 길로 가려는 건 너무나도 어렵고 힘겹고 두렵지만, 썪어 빠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인간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부터도 그런데, 우리에겐 미래의 나를 포함한 인류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그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도리는 무엇인가


작품을 보다 보면, '인도(人道)' 즉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시리아 내전의 복잡다단한 성격에서 기인해 너무 정치적 면모를 띄면 안 되겠다는 전략적 선택에 의한 처리일지 모르겠으나, 작품의 시선이 초반 민주화 운동에의 정치적 목소리와 행동 실천에서 점차 인도적 차원의 참상 그리고 삶과 죽음의 차원으로 변한다. 영화 내외적으로, 시선의 올바른 변화라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특히 내전에서 옳고 그름이 흐려질 때 시선이 가 닿아야 할 건 반드시 '인간'이어야만 한다. 스페인 내전이나 베트남 전쟁 관련 콘텐츠들이 점차 인간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그 이유이다. 시리아 내전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사마에게>는 훗날 깨닫게 될지 모를 흐름을 아주 빨리 포착해냈다. 감독의 남편 함자와 감독은 함께 병원을 세워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은 채 모든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고 치료했다. 그 과정을 감독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아 목숨 걸고 지켜냈고 말이다. 그곳에서 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리는 게 그녀의 의무였다.


전쟁 콘텐츠가 결국 가닿아야 할 최후의 목적지는 '반전(反戰)'일 테다. 이런 비(非)인간적인 작태가 반드시 없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끔찍함과 무서움으로 전쟁을 멀리하고 인간의 숭고함을 가까이 하며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게 무엇인지 실질적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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