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완급 조절 하난 기가 막힌 태국산 복합장르영화 <신과 나: 100일간의 거래>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신과 나: 100일간의 거래>


영화 <신과 나: 100일간의 거래> 포스터.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와이드 릴리즈(주)



시체안치소에서 눈을 뜬 '나',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심정으로 밖으로 나와 헤맨다. 급기야 창밖으로 나와선 발을 헛디뎌 떨어진다. 어느 순간 공간이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더니, 창문닦이가 한 명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을 수호자라고 소개하며, 내가 '민'이라는 남자 고등학생의 몸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후 간호사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수호자는, 나에게 100일간의 시간이 있다며 그동안 민이 자살하게 이유와 민을 자살로 몰고 간 사람들을 밝혀내야 한다고 한다. 죽어서 환생조차 할 수 없게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곧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학교에도 다시 돌아간다. 학교에는 독감이 심하게 걸렸었다고 거짓말하기로 한다. 그런데, 가족들이 좀 이상하다. 엄마만 유일하게 친절하게 민을 챙기고 걱정하고 위한다. 반면, 아빠는 뭔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건 확실하고, 형 '멘'은 말투나 행동이나 분위기를 비춰볼 때 민을 싫어하는 것 같다. 민의 자살 이유가 형일까?


학교에 가니 여자 선배 '파이'가 민의 공부를 도와준다. 그녀는 올림피아드반 수재인 듯, 민과는 단순히 튜터와 제자 사이 이상인 것 같다. 사귀는 사이까진 아닌 듯하지만 썸을 타는 사이 이상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친한 여자 사람 친구도 있다. 외톨이였던 것 같은 민의 많지 않은 친구들이다. 시간은 성실히 가는 와중에 나는 민의 몸에서 즐기고 있는데, 다시 수호자와의 거래를 생각해 낸다. 사물함을 들여다보고는 친구의 말을 듣고 중요한 단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노트북의 행방을 찾으려 한다. 근데, 민의 노트북을 멘이 가져간 게 아닌가? 노트북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대체 누구일까? 예상의 인물일까, 예상 밖 인물일까.


태국 공포영화 거장 팍품 웡품 감독의 역량


태국에서 건너온 판타지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신과 나: 100일간의 거래>(이하, '신과 나')는,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느껴 보기 힘든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언급했듯, 최소 4가지 장르에 발을 걸쳐 있는데 완급 조절이 수준급이다. 분위기 조여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다가도 어느새 풀어주다 못해 즐겁게까지 만드는 것이다. 


감독의 역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이가 2000년대 중반 태국영화 박스오피스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던 <셔터> <샴>의 공동 감독 중 하나인 팍품 웡품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해 왔는데, <신과 나>를 통해 처음으로 단독 연출에 데뷔한 그다. 


그동안 계속해서 공포 장르에 천착해 온 팍품 웡품 감독은, 지난 2017년 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이름을 알린 바 있는 <배드 지니어스>의 네 주인공 중 한 명인 팻 역의 티라돈 수파펀핀요와 함께 판타지 미스터리 그리고 로맨스로까지 발을 넓혔다. 다만,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장르에서 오는 재미를 만끽할 수도 있고 다양한 장르를 억지로 보여 주려 하는 데서 오는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복합장르영화에서 성장영화로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실로 다양한 장르가 복합된 복합장르영화가 아닌 성장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시작해 판타지와 로맨스의 과정을 거쳐, 결국 성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복잡다단하게 한창 성장하는 시기의 주인공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세상의 다양한 맛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 말이다. 


그중 의외로 '사랑'의 빈도가 크다. 학교에서 민이 가장 가까이하고 또 계속 함께하고 싶어하는 파이, 가정에서 민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엄마.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외톨이였던 민의 곁을 지켜 주었던 그들인데, 그들의 배신이 민에게 크나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그들 나름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민은 거기까지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고 깜냥도 되지 않았다. 


하여 이 영화에서 장르적 미덕을 찾는다면, 판타지도 미스터리도 스릴러도 아닌 로맨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이 가장 세심하게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거니와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건, 로맨스를 기반한 약간의 복합장르를 지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복합장르라서 영화 자체에 다가 가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라는 기대감


만들어진 영화의 장르적 미덕이 로맨스라면, 아쉬움을 담아 '만약'의 미덕을 찾자면 영화 초반의 미스터리 스릴러적 요소들이다. 민을 죽음을 몰고 간 이유와 사람들을 밝히는 과정에서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고 긴장감 어리게 단서들을 찾아 내는 모습 말이다. 차라리 완급 조절을 하지 말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하에 계속해서 단서들을 찾아 냈다면, 그러면서 러닝타임도 훨씬 줄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장르영화의 대국이라고 평해도 과함이 없는 태국에서 관객들 눈에 띄고 인기를 얻으려면 이 정도까진 해야 하는가 싶기도 한 영화였는데, 결론적으로 과히 나쁘진 않았다. 왠지 태국 영화가 기다려지는 지점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있지 않을까. 이 영화가 비록 그 시발점이 되지 못할지라도 연결고리 정도로는 충분히 작용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