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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주저 앉은 찬실이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이들의 위로와 용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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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찬란



2019년은 한국 독립영화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해외 수많은 영화제에서 선을 보이고 뒤늦게 한국에 상륙해 신드롬급 관심을 얻어 흥행까지 이어진 <벌새>를 비롯 <우리집> <메기> <윤희에게>까지. 작품성은 물론 흥행성까지 갖춘 독립영화들이 이어졌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출중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따라와 주지 않은 대다수 작품들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하여, 2020년은 한국 독립영화계의 진정한 부흥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영화계 전체가 주저앉았다. 큰 영화도 버티지 못하는 마당에 작은 영화는 설 자리가 없었다. 와중에 용감하게 무모하게 혹은 전략적으로 개봉을 밀어부친 한국 독립영화들이 몇몇 있다. <기도하는 남자> <이장> <비행> 등이 2~3월에 개봉을 강행했지만, 득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찾아왔다. 제목부터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코로나 국면 한가운데에 개봉하여 자그마치 2만 명을 훌쩍 넘기는 스코어를 기록했다. 몇 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내달려도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이때, 독립영화로서 특출난 흥행 성적이다. 그만큼 영화도 좋을까? 물론이다, 전체적으로 적정선을 지키며 군데군데 보이는 포인트가 와닿는다. 한번 들여다보자. 


집도 돈도 남자도 없고 일자리까지 없어진 40대 찬실


영화 프로듀서로 지명수 감독 하고만 일해 온 이찬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녀에게 청천병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뒷산에 살리라>라는 작품을 시작하며 고사를 지내고 간략히 회식을 하는 도중 지 감독이 죽고 만 것이다. 작품은 보류되고 한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찬실, 산 중턱에 있는 집에 세 들어 살게 된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친한 여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찬실은 소피의 불어 선생님으로 소피네를 드나드는 김영에게 마음이 간다. 그도 원래 단편영화 감독으로, 돈을 벌기 위해 소피의 불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계속 생각나고 꿈에서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같이 술도 마시면서 심도 깊은 영화 이야기도 나눈다. 얘기가 통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세 들어 사는 집 주인 할머니하고도 은은하게 말이 통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지켜봐 준다. 


어느 날엔 집에 있는데 갑자기 자신을 장국영 귀신이라고 밝힌 남자가 나타난다. 예전부터 옆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찬실이를 한없이 동조해 주고 위로해 주며 힘을 주려 한다. 찬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볼 때마다 되뇌인다. 이후 뭔가 바뀐 듯한 찬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깨달은 걸까?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서는 과정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자리까지 없어진 40대 여자 찬실이가 나락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프로듀서로서 영화을 찍는 과정의 어려움과 힘듦을 그린 게 아닌, 영화조차 찍을 수 없는 일상의 지난함을 그린 게 특징적이다. 그렇게 우리네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작품 곳곳에서 영화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게 또 특징적이다. 그러며 찬실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녀야말로 복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면면들이 아름답다. 


그동안 오갈 데 없거니와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고 아픈 건 청춘의 전유물이었다. 즉, 40대 이전의 2~30대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느새 아픔과 힘듦의 영역이 40대까지 확장된 느낌이다. 그것도 이질감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2~30대도 40대의 찬실이를 보며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사회에 진입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이니까. 감정적으로 짠하지만, 이성적으로 안타깝다.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를 향한 찬사와 헌사를, 시종일관 과도하진 않지만 꾸준하게 내 보인다. 프로듀서 찬실, 감독 영, 배우 소피, 그리고 장국영까지 거의 모든 주요 캐릭터가 영화 관련자이지 않은가. 장치나 장면이나 대사를 따로 꾸며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와 닿게 한 설정이라 하겠다. 와중에 할머니 캐릭터가 중심 축으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녀의 모습 자체에서 찬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아름다워야 할 사람들 간의 연대


별 다를 게 없을지 모를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지금' 큰 의미를 가지는 건, 찬실이가 복이 많다는 진실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봐도 복은커녕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찬실이야말로, 지금의 우리들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없다'는 걸 입에 단 채 몸소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복도 없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남은 게 뭔가, 뭘 해야 하는가. 


영화는 묻고 답한다. 남은 건 사람이고, 사람들과 함께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비록 우린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꽤 오랫동안 시행하며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하여 물리적인 건 물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찬실이처럼 말이다. 그럴 땐 시간을 들여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고 가장 나중에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뒤도 옆도 위도 아래도 살피지 않고 또는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는가. 


사람들 간의 연대는 아름다워야 한다. 이후에 실용적일 수 있다. 살아가는 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러기가 힘드니 다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때마침 찾아온 이 영화가, 그래서 축복이다. 시대에 맞는 깨달음을, 거나하지 않고 소소하게 그러나 애매모호하지 않고 확실하게 건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국영의 말을 인용해 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일 듯하다.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좀 만 더 힘을 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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