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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미국 정치계 현실을 향한 통한의 접근법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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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헌트>



영화 <헌트> 포스터. ⓒUPI 코리아



작년 8월, 굴지의 장르 전문 제작사 '블룸하우스'가 제작하고 유니버설 픽처스가 9월 말경 배급할 예정이었던 영화가 갑자기 개봉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해당 영화는, <더 헌트>라는 제목으로 미국 사회와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의도를 가지고 인간 사냥의 소재를 내보이려 했다. 원제가 <레드 스테이트(공화 계열) 대 블루 스테이트(민주 계열)>인 만큼, 미국에 뿌리 깊게 내린 공화 계열과 민주 계열 대결 양상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으로 한마디 했다. '진보적 할리우드는 엄청난 분노와 증오에 찬 최고 수준의 인종차별주의자이다. 그들은 자신을 엘리트라고 부르기 좋아하지만 그들은 엘리트가 아니다' 정확히 이 영화를 지명한 건 아니지만, 맥락상 이 영화를 두고 말한 걸로 보인다. 며칠 뒤 유니버설 픽처스는 마케팅 활동을 중지하고 곧 개봉 취소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8월 초에 있었던 텍사스주와 와이오밍주 총기난사 사건 때문에 개봉을 취소한 거라 해명했다.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개봉 취소에 관련하여 언론의 시선은 총기난사 사건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으로 향했다. 검열 논란이 일었다. 결국 올해 3월 북미에서 개봉하였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한 좋지 않은 시기 때문인지 영화 자체의 한계 때문인지 흥행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4월 한국에 상륙해 <헌트>라는 제목으로 극장, VOD 동시 개봉을 진행하였다. 흥행 여부와 별개로,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은 소재임에 분명하다. 


낯선 곳에서 깨어난 사람들을 사냥하다


비행기에 실려 영문 모를 곳으로 간 낯선 사람들, 하나같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숲속에서 깨어난다. 누군가가 큰 나무 박스를 발견하더니 열어 버린다. 안에서 돼지 한 마리가 나오더니, 온갖 무기들이 나열되어 있는 진열장을 꺼낸다. 근처 장치에서 열쇠를 꺼내선 재갈을 풀고, 진열장에서 무기를 꺼내 나눠가진다. 그에 맞춰 어디선가 총알이 빗발치고 포격이  날아들며 화살까지 쏘아댄다. 지뢰도 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죽어 나자빠진다. 인간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몇몇 이들만 간신히 살아남아 철조망을 넘어 어느 가게로 향한다. 


그곳에서 경찰에 신고하는 이들, 잡혀온 곳은 아칸소주라고 하며 각각 뉴욕주, 플로리다주, 와이오밍주에서 잡혀왔다고 한다. 이내 가게의 중년 부부는 세 사람을 살해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신한다. 다음 사냥감을 유인하여 처단하기 위함이었다. 중년 부부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사냥감들이 총을 들어 사냥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처럼, 사냥꾼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키려 사냥감을 사냥한다는 논리였다. 얼핏 말이 되지 않아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곧 '스노우볼'이라 일컬어지는, 전직 군인 크리스탈이 가게로 들어선다. 그녀는 신중히 처신하며 중년 부부를 처단한다. 그러곤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이 미친 짓거리를 시작한 원흉을 처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중간의 모든 길에 진짜 같은 가짜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잡혀 왔는지 알아내곤, 복수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미국 정치계를 향한 접근법


영화 <헌트>는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점철되어 있다. 원제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공화 계열과 민주 계열의 오래된 대결 양상, 그리고 그에 따르면서도 실상 영화를 영화로서 즐기게 하는 고어틱한 공포 액션. 메시지와 내향에 충실했던 원제에서, 장르적 요소와 외향에 충실한 제목으로 선회하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개인적으론 풍부해졌다기보다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다. 


비평이냐 흥행이냐를 두고 그나마 흥행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런 시기에 흥행을 바랄 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차라리 비평적 요소를 최대한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즉, '인간사냥'이라는 소재는 수단이자 도구로 쓰고 뿌리 깊게 박힌 정치적 대결 양상을 전면에 내세웠으면 말이다. 물론 지금의 버전으로도 위와 같은 비평적 요소를 상당히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영화 속 사냥꾼과 사냥감들이 하는 짓거리와 생각하는 바를 들어보면,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판단하기가 힘들다. 두 거대 당파만 존재하는 미국 정치계를 향한 총체적 접근법의 하나로, 정치적 회의주의를 설파하려는 것일까? 그러려면 민주 계열 사냥꾼들이, 공화 계열 사냥감들을 사냥하게 된 진짜 궁극적 이유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공화 계열 vs 민주 계열


영화는, '나쁜 놈'으로 보이는 민주 계열 사냥꾼들이 '착한 놈'으로 보이는 공화 계열 사냥감들을 사냥하는 이유를 정치적이지 않게 풀어내는 묘수를 보인다. 물론, 이 또한 흥행 요소로 작용하여 정치적으로만 비추는 비평 요소를 줄이게 한 결과일 텐데 결과적으로 나름 균형감 있게 봉합된 것 같다. 그 이유엔 정치적 요소도 들어가 있지만 디지털 사회의 작디작지만 파렴치한 문화에 대한 비판이 스며 있다. 


돈 많고 허례의식에 차 있는 엘리트로 앞에선 정의로워 보이지만 뒤에선 온갖 파렴치한 짓을 다 한다는 민주 계열의 상징을 이용해, 공화 계열 사람들이 분노에 찬 거짓 선동과 같은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이에 민주 계열 사람들이 모여 공화 계열 사람들을 상대로 소문을 실제로 만들어 버린다. 공화 계열과 민주 계열 간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역학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하여, <헌트>는 그렇고 그런 장르 영화라고 하기엔 상당한 비전이 공유되고 있는 영화이다. 이를 테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돼지라든지, 주인공 크리스탈을 '스노우볼'이라고 지칭하고 있다든지, 등장인물들이 종종 대사를 통해 말하는 것들이라는지, 역사상 최고의 정치역학적 소설이라 할 만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상당하다. 영화계의 <동물농장>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쉽게도 그정도까진 되지 못했지만, 충분히 괜찮았다고 자평할 수 있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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