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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 <나이브스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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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나이브스 아웃>


영화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라이언 존슨 감독, 70년대생의 젊은 감독으로 일찌감치 2000년대에 훌륭한 장편 데뷔식을 치렀다. 이후에도 장르에 천착한 작품을 내놓던 그는, 2010년과 2012년 미국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히는 <브레이킹 배드> 시즌 3과 5에 참여했다. 그러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2017년에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혹독한 블록버스터 데뷔식을 치렀다. 


그에겐 장르물을 세련되게 직조할 재능이 있었고, 미스터리물로 장편 데뷔를 했던 만큼 관심 또한 많았다. 평소 미스터리 탐정물에 지극히 천착하고 탐닉했다고 하는데, 실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2019년 후반기 북미 개봉작 중 <포드 V 페라리>와 더불어, 평단과 대중 할 것 없이 호평일색임에도 상응하는 폭발적 흥행을 하진 못한 작품 <나이브스 아웃>이다. 상징적인 1억 달러 돌파는 이뤄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이 영화가 호평일색이었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은 한편 왜 흥행을 하지 못했는지도 역시 아주 잘 알 것 같다. 기막힌 캐스팅은 차치하고서라도 시종일관 빈 곳 없이 꽉 차고 알찬 스토리가 영화를 접한 모든 이들을 잡아 끌 것이다. 반면, 영화로 이끄는 힘은 부족할 수 있다. 미스터리 탐정물 영화 흥행의 역사가 방증하지 않는가. 물론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임에는 분명하다. 


대저택에서 사망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85세 생일을 맞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할런 트롬비는 모든 가족을 불러 대저택에서 파티를 연다. 손자 랜섬과의 다툼이 있었다곤 하지만 별 탈 없이 끝난 파티, 하지만 할런은 다음 날 목의 자상에 따른 과다출혈로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장례식을 치른 일주일 후 추도식을 위해 모인 가족들에게 경찰과 사립탐정 블랑이 들이닥친다. 자살이 아닌 범죄사건일 수 있다며 가족들 하나하나를 심문한다. 


가족들 모두 뭔가 이상하다. 경찰과 블랑의 심문에, 문제 될 소지가 있지만 중요한 할런과의 대화를 숨기는 게 아닌가. 하나같이 돈에 관련된 것이다. 합리적 의심으로, 가족 중 누군가가 돈 때문에 할런을 살해 또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겠다 싶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 외로 범인이 금방 밝혀진다. 다름 아닌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로, 그녀는 거짓말을 생각만 해도 토를 하는 질환을 앓고 있었다. 


원래는 경찰과 블랑이 거짓말을 못하니 믿음이 가고 가족처럼 지냈지만 가족은 아니니 유산이나 돈을 탐낼 이유도 없는 마르타를 데리고 다니며 저택과 가족을 탐문했는데, 유언장 낭독식에서 가족 중 누구도 아닌 마르타가 모든 유산을 받게 되며 가족들에게 온갖 욕과 시달림을 받아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녀가 도망치게 도운 이가 있으니, 할런의 개망나니 손자 랜섬이다. 그녀는 범죄 사실을 그에게 털어놓고 이상한 동행을 하며, 랜섬이 유언을 그대로 집행하게 도우는 대신 랜섬에게 랜섬 몫의 유산을 주기로 한다. 이 동행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스토리, 반전, 분위기까지 완벽에 가깝게 내보이다


영화는 정통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완벽에 가깝게 내보인다. 이런 말을 굳이 왜 하는고 하니, <나이브스 아웃>은 흔치 않게도 원작이나 실화를 모티브로 재탄생시킨 작품이 아니라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한 원작을 옮긴 영화들도 해내지 못한 걸 이 영화는 해냈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 이 감독이 범상치 않은 이유이다. 


이 영화가 해낸 건, 빈틈 없이 짜맞춘 스토리와 알면서도 당하는 반전과 추리 작품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전하는 사회 비판적 메세지까지 거의 모든 것이다. 스토리는 추리 과정과 다름 아니다. 사립탐정 블랑의 위주로 세밀하게 펼쳐지는 추리 이면에는 심문 당하는 이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추리 하면 으레 생각나는 반전도 깔끔하다. 마지막에 모든 걸 뒤엎는 반전의 시대도, 시종일관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시대도 갔다. 수준이 한껏 높아진 지금은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의 반석 위에 깨달음과 통찰이 오가는 반전의 시대인데, 이 영화가 보기 좋게 해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의 시선을 합리적으로 여기저기 향하게 만드는 데 도가 튼 느낌이다. 


분위기야말로 추리 콘텐츠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설정과 매우 맞닿아 있다. 대저택에서 벌어진 가족의 절대적 가장에게 벌어진 석연치 않은 죽음이라는 설정이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하겠다. 심상치 않은 캐릭터들도 한몫하는데, 여지없이 돈으로 똘똘 뭉친 가족들과 돈에는 관심없는 듯한 개망나니와 모든 가족들의 신뢰 또는 무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외부인까지 말이다. 


가족과 욕망과 돈, 그리고 불법체류자의 현실


추리 콘텐츠가 대망의 빛을 발하는 부분은 의외로 메시지에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누구나 느꼈을 만한 가족과 욕망과 돈이라는 명백한 키워드가 있다. 천륜으로 이어진 가족, 각각의 욕망은 다를 테지만, 하나같이 시선이 향하는 건 돈이다. 사실, 영화의 시작과 끝도 이 키워드들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얹혀지는 건, 얹혀져야 하는 건 당대의 현실이다. 


영화는 지금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인 불법체류자의 현실을 다룬다.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는 남미 어딘가의 출신으로, 가족 전체가 불법체류 중이다. 영화 중반도 되지 않아 이미 마르타가 범인이라는 걸 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스토리에서는 그녀가 거짓말을 못하는 설정 때문이라고 하지만, 메시지에서는 그녀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작중 인물들 중 그녀가 파라과이 출신인지 우루과이 출신인지 에콰도르 출신인지 브라질 출신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녀가 라틴계 남미 사람인 것만 알 뿐 나머진 상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할런이 자살 아닌 타살 가능성이 높다고 결정되고 나서도 사실상 그녀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해버린다. 이는 그녀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여 그녀가 할런의 모든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황당, 당황, 분노를 금치 못하지만 보는 이는 통쾌하다. 부정(正)되었던 존재의 합당한 부상(上)은 항상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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