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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1026 사건 리메이크... 역사를 우리 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 <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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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쇼박스



1979년 10월 26일 저녁,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이 박통(이성민 분)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분)을 암살한다. 부하들도 경호원들을 제압해 장악에 성공한다. 시간은 40일 전 미국으로 돌아간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분)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박통의 실체를 까발리며 전 세계 특히 한국에 큰 충격을 안긴다. 청문회도 청문회였지만, 진짜 문제는 박용각의 회고록이었다. 기록으로 남긴 박통의 실체 말이다.


김규평이 긴급히 파견되어 박용각을 만나 회고록을 회수한다. 하지만, 박용각의 말에 김규평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명실상부 자타공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의 2인자이지만, 박통의 스위스 비밀계좌의 실체를 알고 직접 관리하는 '진짜 2인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규평, 청와대에선 곽상천이 박통을 신처럼 생각하며 기어오르고 미국 대사는 박통의 스위스 비밀계좌 실체를 캐어 폭로하겠다며 협박하며 전국적으로 반(反) 박통 시위가 불을 붙고 있다. 와중에 급기야 박용각의 회고록이 발간된다. 


박통이 자신을 멀리하는 듯, 박용각의 말이 계속 생각나, 괴로워하는 김규평. 박통은 그에게 묻는다. 이제 내려와야 하느냐고, 언제 내려왔으면 좋겠냐고. 이에 그는 언제나 박통 곁을 지키겠다는 대답을 할 뿐이다. 하지만 쉬워 보이진 않는다. 박용각에서 시작된 코리아게이트의 파장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박용각은 역으로 김규평에게 제안한다. 함께 박통을 끌어내리자고 말이다. 김규평은 선택해야 했다. 박용각인가, 박통인가. 박통인가, 박용각인가. 


실화 사건에 미시적이고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지난 2015년 <내부자들>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 우민호 감독의 2020년 첫번째 웰메이드 한국영화 기대작이다. 그는 2010년과 2012년에 김명민을 내세운 두 편으로 적절히 성공과 실패를 오가고, <내부자들>로 1000만 명 가까이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후 <마약왕>으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망하고 말았다. 그의 롤러코스터 필모를 보면 <남산의 부장들>은 <내부자들>처럼 흥행과 비평 양면의 성공을 예상할 수 있다. 


영화는 동아일보에서 30여 년간 기자로 일했던 김충식 현 가천대학교 부총장이 1990년부터 2년 여간 동아일보에 연재해 책으로 내놓아 베스트셀러가 된 <남산의 부장들>을 원작으로 한다. 책은 제목처럼 남산의 부장들, 즉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장들 이야기를 전한다. 반면, 영화는 각색을 거쳐 축약되고 변경되어 박정희 시절의 마지막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이야기를 전한다. 


당연한듯 1026 사건을 메인으로 내세웠는데, 그 의미와 논란의 영향력이 타 사건들과의 비교를 불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사건의 파급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영화적 상상력이 사건의 핵심과 주위를 파고들어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 상상력에 사건의 거시적이고 사회 역사적 의미 대신 미시적이고 개인적 의미를 부여했다. 


대사건의 이면, 한낱 개인의 욕망


1026 사건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직접 죽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참모총장을 데리고 남산이 아닌 육군본부로 향해 체포당하고 만 역사적 유턴의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재판에서의 최후진술에 따르면 거사의 이유가 민주주의에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충실하게 이 사건을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사건에 관계된 이들 모두가 거기서 거기인 쓸모 없는 인간군상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시선. 


<남산의 부장들>은 어떨까. 박통을 두고 세 명이 전 정보부장 박용각과 현 정보부장 김규평과 현 경호실장 곽상천이 엎치락뒤치락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양새이다. 거기엔 대국적이고 거시적인 정치 소양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욕망이 자리잡았다. 한 나라의 역사를 뒤흔들고 뒤엎을 만한 대사건의 이면에 한낱 개인의 치졸하기까지 한 욕망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는 상상력 어린 사실이 흥미로운 한편 씁쓸하다. 


영화는 씁쓸함보다 흥미로움이 보다 크게 작용하게 하였다. 전체적인 기조는 김규평이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행한 여러 선택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 또한 박용각이나 곽성천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의 하수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통이야말로 욕망의 하수인이 아닌 화신이다. 그는 지극히 하찮은 욕망을 발산하는 데 있어 2인자 부장들을 철저히 이용해 마치 대국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절대적 1인자의 욕망 앞에 2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헤어나올 수 없는 충성경쟁뿐이다. 


인물 지향의 개인적 이야기


영화에서 눈여겨 볼 건, 사건 아닌 인물이다. 즉, 영화가 다루는 사건 아닌 사건을 다루는 영화 자체인 것이다. 영화의 상상력이 향하는 곳은 의외로 사건이 아닌 인물이기에, 특히 김규평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박통을 향한 흔들림 없던 눈빛이 박용각의 말과 곽상천의 행동과 비서실장의 부추김으로 흔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고조되며, 결국 박통 때문에 폭발한다. 어떻게 보면, 충성경쟁도 아닌 권력다툼도 아닌 어린애들끼리 치고박는 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기도 한다. 몇몇 친구들이서 한 명을 왕따시키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는 사건의 이면을 설득력 있는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작업은 오로지 픽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기본이 픽션이라고 한다면, 영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영화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아주 잘 해내었다고 생각한다. '사건' 정황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가 아닌 '인간'이라면 아무렴 "그랬겠다"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이런 식의 리메이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역사를 바꾼 주요한 사건들의, 인물 지향의 개인적인 이야기 말이다. 결국 역사는 인간의,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는 인간이 쏙 빠지고 대신 사건과 인간에의 상징이 자리를 대신한다. 하여, 우리들의 역사가 아닌 그들만의 역사가 되고 만다. 역사를 우리들 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다 하찮고 의미 없이 계획 없이 명분 없이 저질러버린 역사의 진면목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남산의 부장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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