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포드 V 페라리>
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1990년대 중반 데뷔해 난다긴다 하는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작업해온 제임스 맨골드 감독, 그의 작품은 <헤비> <앙코르> <나잇 & 데이> <로건>과 같이 대부분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지만 <더 울버린>처럼 길이남을 망작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었다. 3년 정도를 주기로 꾸준히 괜찮은 영화를 내놓는 건 명백한 바, 여지없이 2019년에도 우린 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3년 정도 후면 다시 한 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포드 V 페라리>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필모에 걸맞게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최고의 투톱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바, 많은 영화제에 초청되며 평단의 지지를 받았고 기어이 북미 1억 불을 넘기고 전 세계적으로도 2억 불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에서도 100만 명을 넘기며 상징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흥행요소가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던지라, 오로지 영화의 힘으로 이루어낸 흥행이라 하겠다.
영화는 1960년대 '르망 24시'에 출전하는 포드사의 GT40를 둘러싼 이야기를 전한다. 르망 24시란, 프랑스 르망에서 열리는 세계 3대 레이스 대회 중 하나로 말그대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가장 많은 랩을 돈 자동차가 우승한다. 당시 최고의 팀은 페라리였는데, 포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판매를 역변하기 위해 페라리처럼 '승리하는 자동차'로 변하고자 전직 챔피언 캐롤 셸비를 섭외하고 셸비는 켄 마일스를 섭외한다.
포드의 르망 24시 우승을 위하여
1959년,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캐롤 셸비(맷 데이면 분)는 심장질환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시간이 지나 1960년대, 셸비는 레이싱 디렉터로 드라이버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와 함께 로컬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다. 하지만,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던 마일스가 최악의 판매 수완으로 세금 체납이 되어 정비소가 넘어가자 레이스를 접고 생계에 전념한다.
한편, 포드사는 전례 없는 판매 부진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방법을 가지고 오라는 회장의 말에 마케팅 총괄 리 아이아코카는 레이싱 대회 르망 24시의 절대 패자 페라리의 섹시, 강함, 승리 공식을 포드에 입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방법을 일환으로 페라리 인수를 진행하지만, 엔초 페라리의 막판 뒤집기로 철회된다. 큰 한 방을 먹은 회장은 르망 24시 출전에 이어 페라리를 이길 것을 천명한다.
아이아코카는 셸비를 찾아가고 셸비는 마일스를 찾아간다. 마일스는 큰 액수를 받으며 받아들이고, 셸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입김 센 부사장 레오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드라이버를 내세우려 마일스를 내치려 한다. 계속되는 우여곡절, 셸비와 마일스는 수많은 역경을 뚫고 르망 24시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그들의 르망 24시 우승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셸비와 마일스
<포드 V 페라리>는 얼핏 포드로 대변되는 미국 근현대사 자본주의의 승리를 보여주려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페라리로 대변되는 유럽 장인 정신을 돈으로 매수 혹은 깔아뭉개버리려는 포드의 의도를 두 주인공 셸비와 마일스가 충실히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중점을 철저히 셸비와 마일스 두 개인에게 둠으로써 진정한 적은 페라리가 아닌 포드 고위층이라고 말하고 있다.
1960년대 르망 24시는 페라리의 우승으로 시작해 1965년까지 6년간 절대적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F1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레이싱 대회인 만큼 우승이 상징하는 바 또한 절대적이었다.(참고로 1970~90년대까지 포르쉐가, 2000~10년대까지 아우디가 절대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누구나 선망해마지 않는다는 사실이 방증하는 이 대회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공장양산식 자동차 회사 포드는 당연히 이 대회에 출전해본 경험조차 없기에 그 영향력을 잘 몰랐는데, 아이아코카가 일깨워준 것이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레이싱 디렉터 셸비를 데려왔고 그가 믿어마지 않는 드라이버 마일스도 참여시켰다. 문제는, 포드사 자신에게 내제되어 있는 절대적 자부심과 돈이면 다 된다는 대량생산체제 포디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들은 셸비와 마일스 레이싱팀을 그저 부품의 하나로 여겼다. 셸비와 마일스는 자신들을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로 여겼고 말이다.
하여, 셸비와 마일스는 뚫고 가야 할 역경들이 많았다. 셸비로선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당대 최고의 페라리보다 빠르고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고, 마일스로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세세한 일들을 처리하는 동시에 세계 최고의 레이싱을 펼쳐야 했으며, 셸비와 마일스로선 포드의 꽉 막힌 고위층을 어르고 달래는 한편 강하게도 대해서 본인들만의 스타일로 레이스에 임해야 했다.
레이싱 영화의 이정표가 되다
우린 잘 알고 있다. 1966년부터 4년간 포드 GT40가 르망 24시를 점령했다고 말이다.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드는 르망 24시에서 우승한 적이 없으니, 당시는 포드뿐만 아니라 르망 24시를 비롯 모든 레이싱 대회의 신화로 남아 있다. 그만큼 포드의 도전은 매우 인상깊게 그리고 흐믓하게 또는 착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은 때론 어쩔 수 없이 약자의 편을 들게 마련이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 치졸한 이면에 치를 떨지 모른다. 포디즘으로 대변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중추였던 포드사가, 적어도 1960년대 중반 르망 24시의 위대한 도전에 있어서만큼은 인간적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때 역시도 그들은 포디즘의 신봉자 또는 노예로서 사람을 부품으로 대했고 돈이야말로 부품을 움직일 수 있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페라리에 대적하면서도 포드에 대적한 셸비와 마일스야말로 위대한 도전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들은 그들 자체였지 '포드'의 셸비와 마일스가 아니었다.
영화는 천천히 우직하게 단계를 밟아 서사를 진행한다. 셸비와 마일스와 포드와 페라리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퍼즐들을 내보이며 각개약진을 해보이면서 한편으론 서로 얽히고설키게 끊임없이 자리를 마련한다. 그 모습이 조금은 지루해질 만한 타이밍이 도래할 때면 여지없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자동차들과 긴박함 넘치는 레이싱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스토리와 영상의 조화가 완벽한 것이리라. 거기에 두 주인공, 특히 연기의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가 확 끌어들이게 하여 중심을 잡는다.
레이싱 대회가 갖는 영광과 인기에 비해 레이싱 영화가 만들어지는 횟수나 인기는 많지 않다. 단순하게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테고, 잘 만들어도 흥행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차라리 수십 년 전에 더 자주 만들어지고 더 좋은 레이싱 영화들이 나왔다. 최근이래야 2013년에 나온 <러시: 더 라이벌> 정도가 있으려나? 와중에 나온 <포드 V 페라리>는 하나의 이정표이자 절대적 큰 산이 될 요량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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