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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최고의 천재 영웅 슈퍼스타에서 배신자 악마로의 기막힌 추락 <디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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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디에고>


다큐멘터리 영화 <디에고> 포스터. ⓒ워터홀컴퍼니(주)



전설 또는 레전드라 일컬어지는 스포츠 스타 중 여전히 현역에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현역이라 함은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나 감독 등으로 경기를 함께 하는 이라 말할 수 있을 텐데,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내기 힘들다. 대부분, 현역 실무직에서 물러나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것이다. 와중에,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감독으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설이 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선수로서의 현역에선 일찍 물러나 30대 중반부터 감독 생활을 했는데, 빛을 보진 못한 케이스이다. 아예 빛을 볼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일까, 지난 2017년부터 하위권 팀들을 도맡고 있다. 그는 어딜 가든, 어느 팀을 맡든, 여전히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다. 2018년 당시 멕시코 2부 리그 도나도스 데 시날로아를 맡은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날로아의 마라도나>로 만들어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현역 시절부터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던 극단의 단어들 '신'과 '악마', '영웅'과 '배신자' 등이 지금도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여기 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천재 3부작 중 마지막 <디에고>이다. 그의 지난 두 작품은 <세나: F1의 신화>와 <에이미>이다. 일찍 세상을 뜬 두 명의 천재 전설에 이어, 여전히 세상을 뒤흔드는 한 명의 천재 전설을 내보이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선보인 <축구의 신: 마라도나> 이후 10여 년만에 나온 마라도나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 역시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특징이 고스란히 내보여지는데, 오로지 옛 영상 자료와 얼굴 없는 현 목소리로만 구성했다. 자료로만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 것이다. 


'디에고'와 '마라도나'


다큐멘터리 <디에고>는 '디에고'로서의 마라도나와 '마라도나'로서의 디에고를 모두 보여주려 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디에고는 빈민가 출신의 수줍음 많고 다정한 남자인 반면 마라도나는 최고의 축구 선수로 미디어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슈퍼스타이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이라면 디에고였을 테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그는 마라도나였다. 


마라도나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증명하듯 일찍이 10대 중반에 충격적인 프로 데뷔로 아르헨티나를 뒤흔들었다. 10대 후반에는 세계 청소년 월드컵에서 원맨쇼로 나라를 우승시키고 본인은 최우수선수로 뽑혔는데, 약관 20세부터는 이미 남미의 왕이었다. 당연한 수순인듯 그가 향한 곳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당연한듯 당시 최고 이적료를 경신한다. 


기대에 호응하듯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질병으로 고생하고 악질적인 태클로 선수생활 자체가 끝장날 위기에 처한다. 몇 개월의 피나는 재활 후 돌아온 그는, 여전한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여전한 악질적 태클로도 고생한다. 결국 참지 못한 마라도나는,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세리아 A는 당대 최고의 리그로 유벤투스, 인테르, AC 밀란 등 유럽을 호령하는 클럽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리그 우승 한 번 없는 하위권의 그렇고 그랬던 팀 나폴리. 마라도나 신화가 시작되어 끝난 곳, <디에고>가 천착한 때와 장소이기도 하다. 


마라도나의 삶이 곧 그의 나폴리 시절


작품은 보여준다. 마라도나의 삶이 곧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이라고 말이다. 1984년 이적 후, 1986~87 시즌부터 믿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축구는 축구장 위의 11명과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 그리고 팬들이 함께 하는 거라고 하지만, 마라도나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모든 관심과 기대가 그에게 쏠렸고, 그는 '무대' 위에서 완벽히 소화해냈다. 나폴리는 1986~87 시즌 사상 최초의 1부 리그 우승을 일구고 다음 해와 다다음 해에는 준우승 그리고 1989~90 시즌 다시 우승을 차지한다. 1988~89 시즌에는 전무후무한 유럽대항전 UEFA컵을 따냈다. 


자타공인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 나폴리의 퍼포먼스는 100% 마라도나에 의한 것이리라. 더 위대한 건, 나폴리 사람들이 마라도나를 말 그대로 '신'으로 추앙했던 건, 축구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의 그의 인기이다. 나폴리라는 축구클럽은 제처두고서라도, 나폴리라는 도시 자체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천대받고 또 꺼려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입성해 축구 열기를 수직 상승시켰고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도시를 하나로 묶어 사회, 경제, 문화를 풍성하게 했으니, 마라도나는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하나 복권을 맞은 것과 다름 아니었다. 


신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추락할 운명이라고 했던가, 마라도나에게도 추락의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높이 올랐던 만큼 추락의 강도와 속도도 매우 강하고 빨랐다. <디에고>는 그 순간을 1990년 준결승전이라고 전한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절정기 마라도나의 당연한 원맨쇼에 힘입어 우승했었는데, 이번 이탈리아에서도 다시 한 번 높이 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준결승전 상대가 하필 이탈리아에 장소는 나폴리... 운명의 장난인 건지, 누군가의 소행인 건지. 


나폴리는 격정에 휩싸인다. 나폴리에서의 마라도나는 말 그대로 신, 하지만 이탈리아인에게 축구는 역시 말 그대로 신이기에 이탈리아 대표님의 승리와 높은 곳으로의 행보는 당연한 것이었다. 결과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승리. 이후 거짓말처럼 이탈리아 전역의 마라도나를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는 한순간 신에서 악마가 된다. 미디어, 사법당국, 세무당국 할 것 없이 그를 향해 집중 융단폭격을 날린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듯, 마라도나는 여성편력과 마약복용 등 수많은 스캔들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의 대상인 천재의 내면


마라도나는 천진난만하면서 좋지 않은 의미로 자유분방한 악동의 이미지가 강하다. 굳이 미디어에서 그를 끌어내리고자 만들어내지 않고라도 말이다. <디에고>가 포착해 잡아낸 면모가 바로 그 부분인데, '마라도나'는 슈퍼스타의 압박감을 잘 받아낼 수 있었지만 '디에고'는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디에고로서는 모든 생각을 잊고 놀고(여자도) 마시며(마약도) 풀 수밖에 없었다.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도, 그만큼 올라갔으면 내려와도 괜찮지 않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맞는 말인데, 거리를 두고 보면 그의 삶만큼 극단의 굴곡을 지닌 삶도 없다. 그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고 뜯고 즐기는 존재이자 무조건적인 존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순히 빈민가 출신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성공 스토리가 아닌, 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악마이자 배신자로 추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라도나는 그만의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천재의 삶은 흥미의 대상으로 소비되어 외면만 보기 마련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천재가 갖는 흥미의 상()이 깨지기 때문이다. <디에고>는 과감히 천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고 철저히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그럼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성공했을까? 성공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당시 자료만으로 전했기로서니 객관적이었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괜찮은 스토리텔링까지 맛볼 수 있었으니 여한이 없었다 하겠다. 이 작품으로 비로소 마라도나 신화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 마라도나가 만들고, 마라도나 아닌 이들이 파괴시킨 신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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