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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춥디 추운 바람을 이겨내는 여성들의 연대 <영하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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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리뷰] <영하의 바람>


영화 <영하의 바람> 포스터. ⓒ영화사 진진



12세 소녀 영하, 엄마 은숙이 집에 새 남자를 들이며 버림 받아 친아빠한테로 보내진다. 하지만 친아빠가 은숙의 돈을 빼돌려 도망가 버리자 영하는 다시 한 번 버려진다. 오갈 데 없어진 영하는 영하로 떨어진 겨울의 모진 추위 속에서 하염없이 떨며,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영하는 태어난 죄밖에 없다. 


15세 소녀 영하, 엄마 은숙과 결혼하진 않은 새아빠 영진과 함께 산다. 그녀에겐 오랜 절친이자 외가 사촌 미진이 있다. 하지만, 뚱뚱해서일까 미진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평범한 학교 생활을 보내는 영하는 학교 밖에서는 미진과 잘 지내고 학교 안에서는 멀리서나마 미진을 챙긴다. 어느 날, 미진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그러며 미진은 친가 친척의 손에 맡겨지며 떠나게 되고 영하와 헤어진다. 


19세 소녀 영하, 별 다를 것 없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절친 미진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느낌이 진하게 든다. 그런 와중, 가족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진다. 영진이 술을 진탕 먹고 영하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사 안수를 받고자 하는 은숙은 남편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난감하고, 영진은 뭐라 할 말이 없는 처지이지만 집이 자신의 것이며, 영하는 영진과 절대 한 집에서 살 수 없는 한편 은숙에게도 기가 막힌 실망감을 받는다. 영하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19년 한국 독립영화계 흥행 홍수의 이면


영화 <영하의 바람>은 지난 10여 년간 여러 단편 영화들 연출, 각본, 편집을 도맡아 하며 평단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김유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시나리오 선에서 한국영상위원회, 부산영상위원회, 부산국제영화제 ACF 지원을 받아 탄탄한 작품성을 내보였고,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와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의 주요 수상작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화제를 뿌렸다. 


2019년은 유례없는 한국 독립영화 흥행 홍수였다. <벌새>를 필두로, <우리집> <메기> <윤희에게> 등이 최소 4만여 명에서 최대 15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비상업적 외투를 쓴 <기생충>을 향한 무한대의 관심과 기록적 흥행에서 촉발된 독립적 작품성에의 바람이 만들어낸 현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독립영화계 안에서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졌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독립영화들의 수준이 높아진 데에 비해 그만큼의 수익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매우 좋은 작품성을 지니기도 했거니와 최소한의 화제를 뿌렸지만, 채 3000명도 들지 않은 <영하의 바람>도 어둠의 영역에 해당한다 하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다뤄져야 하고 회자되어 마땅하다. 


성장과 가족


<영하의 바람>은 성장영화이면서 가족영화이면서 여성영화이다.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제목 '영하의 바람'은 주인공 영화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영하의 온도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을 헤처나갈 수밖에 없는 영하와 미진의 모습을 말하기도 한다. 그들의 바람은 다른 게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고, 친구와 떨어지기 싫은 것뿐이다. 그조차 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지만. 


성장영화라고 지칭했지만, 이 영화에서 성장은 참으로 고독하고 고약하다. 이렇게까지 성장을 해야만 하는 걸까 하고 고개를 젓기도 하고, 성장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보는 입장에서조차 차라리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 빛대어 '너무 아픈 성장은 성장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장선상에서 가족영화라고 칭했지만, 이 영화에서 가족은 참으로 지독하고 처절하다. 영하와 미진 입장에서 가족은 비록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믿을 사람 하나 없는 황량하기만 한 무통지대라고 생각되고, 은숙의 입장에서 모든 걸 걸고 다시 만든 가족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처참하게 목격한다. 그런 와중에 가족 내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 반목한다. 


여성영화라는 타이틀


이제 남은 건 여성영화라는 타이틀, 그렇다, 이 영화는 정확히 여성영화이다. 단순히 영하와 미진의 주요 두 캐릭터에 뒤이은 은숙이라는 캐릭터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산들인 반면 영진이라는 캐릭터는 문제의 근원으로 작용할 뿐 그 자체로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 상황에서 빛어진 결과를 보고 붙인 타이틀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적이고 악착같은 은숙이 가장 역할을 하며 가족을 이끌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영진이 집 하나만 믿고 있는 것인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은숙의 말만 따르는 모습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영하와 미진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 어디서나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에서 '여성영화'를 발견한 것이다. 그들의 작고 연약하지만 끈끈한 연대 말이다. 


연대는 작을 수록 약할 수록 서로를 지탱하며 빛을 발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아주 쉽게 흩어져 버리기 일쑤이다. 사람이란 힘들 때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여, 이 영화에서 영하와 미진의 연결과 연대는 위대해 보였다. 그들 간의 끈은 약해지고 휠지언정 끊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영하의 바람>의 가치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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