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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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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조커>


영화 <조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 DC와 마블, '마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탠리가 1960년대 '판타스틱 4'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까진 DC가 앞섰다고 한다. 영화 판권 시장 역시 슈퍼맨과 배트맨을 앞세운 DC가 앞섰다가, 2008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시작한 마블이 완전히 앞서게 되었다. DC도 뒤늦게 유니버스를 창조했지만 역부족,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본래, 마블이 캐릭터를 앞세웠다면 DC는 스토리를 앞세웠다. 그런 기조는 영화로도 이어져,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DC의 <다크나이트>가 손꼽히게 된 것이리라. 감독의 역량이 크게 좌지우지하겠지만 제작사의 입김이 없을 리 없다. 와중에 DC에겐 절대적 무기가 있으니,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조커'이다. 역설적이게도 조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신기하게도 조커 단독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 


DC가 방도를 모색할 때 아무래도 마블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수많은 캐릭터를 앞세워 거대한 연결 세계를 창조한 마블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 것 같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배우를 앞세운 영화 <조커>로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을 탄생시킨 것이다. DC가 앞으로도 별처럼 홀로 빛나는 캐릭터 영화를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별개로 <조커>는 반영구적으로 빛날 게 분명한 명작이다.


의심과 논란의 여지 없는 '연기'


고담시에서 광대로 일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노모를 모시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뇌 또는 신경 이상으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웃음발작을 일으키고, 망상증세도 심각한 수준이다. 주기적으로 약을 타 먹고 상담도 받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골의 외모로 지나가는 10대 아이들한테 무시받으며, 발작적인 웃음에는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을지언정 하나같이 뭐가 웃기냐며 의아해할 뿐이며 심지어 테러까지 일삼는다. 


영화 <조커>에서 의심과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연기'다.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과 조커, 그리고 아서 플렉이 조커로 거듭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로버트 드 니로의 머레이 프랭클린. 우선 로버트 드 니로는 35여 년 전 본인이 주연 루퍼트 펍킨 역을 맡은 영화 <코미디의 왕>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루퍼트 펍킨과 대칭된다.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웃기지 못하는 아서 플렉,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기회를 갖지 못하는 루퍼트 펍킨. 둘 다 망상증세가 심각하다. 


베니스와 칸을 접수했지만, 미국 아카데미에선 3번이나 고배를 마신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커>는 족하다. 많은 이들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최고의 조커로 '히스 레저'를 떠올리겠지만, 만들어진 조커와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 자레드 레토의 조커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조커들은 광기와 혼란과 악의 개념 하에 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에겐 슬픔과 아픔과 공허까지 있다. 태반이 웃음발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조커 하면 떠올리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웃음의 슬픈 기원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하염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한숨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 <조커>의 모든 것을 직조했다. 


흠잡을 데 없는 '연출'


10대들한테 밟히고 광고판까지 박살나고선 실의에 빠져 있는 아서에게 광대 동료가 총을 건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쏴버리라고. 집에서 혼자 폼을 잡으며 시늉하다가 쏘아 보니 당황스럽고 무서운 게 아닌가. 그런데 하필 총을 아동병원에 가지고 갈 게 뭐람. 그 일로 아서는 회사에서 잘린다. 여자 한 명을 희롱하는 술 취한 3명의 남자들과 지하철 한 칸에 같이 탄 아서, 웃음발작이 터지고 그들에게 밟힌다. 곧 총성이 울리고 3명이 죽는다. 아서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이후 토마스 웨인 시장 후보가 죽은 3명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하고 고담시는 폭풍전야에 빠진다. 


영화 <조커>의 연출을 맡은 이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다. 그가 누구인가. <행오버> 시리즈로 할리우드 막장 코미디의 대표 자리를 꿰찬 이가 아닌가. 연출 필모를 3편을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이후 2000~2010년대에 내놓은 9편을 모두 코미디로 채운다. 그야말로 코미디에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조커>를 연출한다니?


DC의 후광으로 대대적인 관심과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받을 테지만, 작품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러웠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DC에서 내놓은 <조커>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테다. 뚜껑을 열어보니, 개봉도 하기 전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코믹스 최초 3대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에 이은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예상치 못한 이변이자 예상했을 쾌거이다. 


영화는 흠잡을 데가 없다. 개인과 사회라는 씨줄과 날줄로 종횡으로 엮어 탄생 신화를 써내려갔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어구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 때문에 괴물이 탄생했다는 일방향식 서사에, 조커 이전 아서 플렉이라는 지극한 개인적 서사를 얹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입체감을 얻었다. 


<조커>에 있는 것들


우발적인 살인 이후 표정과 행동이 바뀌는 아서, 대담해지고 일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 말마따나 항상 웃으며 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웃음발작 때문에 행복한 적이 없었던 아서, 그에게 살인이라는 건 무례한 세상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가멸찬 외침이 되었고 당하고만 살았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향한 위로도 되었다. 이후 그는 광대라는 가면 뒤가 아닌 그 자신 광대가 되어 진짜 웃음과 함께 한다. 


영화 <조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깨달음은 차라리 <다크 나이트>에게서 받았고, 뇌리에 영원히 남을 듯한 모습은 히스 레저의 조커에게 남아 있으며, 기 막히게 창조된 세상은 DC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에 보다 확실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조커>에는 무엇이 있는가. 


코미디의 대가가 재창조한 완벽한 코미디 세상 고담시, 미친 도시이자 코미디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자 미쳐 가고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 인생을 산 아서 플렉, 토마스 웨인을 위시한 기득권층을 적으로 둔 대중들과 조롱의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을 적으로 둔 아서 플렉의 조우. 개인, 대중, 사회가 맞물리는 지점을 '조커'라는 상징과 은유의 꼭짓점으로 모이게 하는 과정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진행된다. 고담시, 웨인 부자, 아캄 정신병원 등 영화 <배트맨> 시리즈과 조우하는 요소들도 모두 조커로 모이는 것이다. 영화 <조커>에는 조커가 있다. 


신경을 긁는 불쾌함과 세상을 바꿀 이의 탄생을 직시하게끔 만드는 웅장함이 일품인 음악과 화려하진 않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최적의 워킹을 선보이는 카메라, 그리고 아서 플렉의 어두침침한 집 내부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색의 옷에서 조커를 상징하는 화려한 색감의 옷과 초록 머리 그리고 빨간 입술 등이 항상 뒤를 받친다. 이보다 더 조커와 조커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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