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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인문학적 통찰력 충만한, 아버지 혹은 내면으로의 여정 <애드 아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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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애드 아스트라>(Ad Astra)


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칸 영화제 단골손님 제임스 그레이 감독, 지난 2013년 <이민자>로 오랜만에 칸에 귀환했을 때 '씨네21'과 한 인터뷰를 들여다보자. 맨 마지막에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생각하고 있는지의 질문에 SF영화를 구상하고 있다고 답한다. 실제로 그는 차기작으로 SF가 아닌 어드벤쳐영화 <잃어버린 도시 Z>를 내놓았지만, 차차기작으로 SF영화를 들고 온다. 


인터뷰는 '우주에서 진행되는 매우 리얼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제임스 그레이의 답변으로 끝난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애드 아스트라>는 그의 구상을 영화로 옮긴 실제물이다. SF우주영화의 현재는 2013년 <그래비티>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후 매해 메이지급 SF우주영화가 한 편 이상씩 나왔다. <인터스텔라> <마션> <패신져스> <라이프> <퍼스트맨> 그리고 <애드 아스트라>까지. 


현재 SF우주영화의 특징은 거시적이고 광활한 서사 대신 미시적이고 협소한 여정이다. 물론 우주라는 것 자체가 미시적이고 협소할 수가 없겠지만, 역으로 거시와 광활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걸 시사한다. <애드 아스트라>는 SF우주영화의 현재를 상징한다고 단언할 정도로, 기본 장착된 우주적 외향에 개인으로 끊임없이 천착하는 내향을 지녔다. 다음의 어떤 SF우주영화라고 이런 식으로 더 잘 만들긴 힘들 것이다. 


아버지 찾아 떠나는 머나먼 길


미군 소속 우주비행사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 분)는 우주 안테나에서 작업을 수행하다 예측할 수 없는 이상 현상 때문에 지구로 추락해 죽다 살아난다. 우주사령부는 로이를 불러 1급 기밀사항을 전하며 임무를 맡긴다. 수십 년 전 지적 생명체를 찾는 '리마 프로젝트' 수행 차 해왕성으로 떠났다가 실종된 아버지 클리포드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것과 지구는 물론 우주를 위험에 빠트릴 이상 현상 '써지'가 다름 아닌 클리포드가 벌인 실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이는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 해왕성에 있는 아버지와 교신해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또 써지 현상의 배후 조종을 하지 않게 설득해야 하는 임무를 진행한다. 역사상 모든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멀리 향했던 위대한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아버지로 두고 당연히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뤄 최고가 된 로이는, 아버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른다. 


아버지와의 교신 중 개인 감정을 드러낸 로이는 미션에서 빠지게 되고, 망연자실한 와중 화성의 책임자 중 한 명이 전해주는 리마 프로젝트와 클리포드에 관한 또 다른 1급 기밀사항을 보고 해왕성으로 향한다. 해왕성행 로켓에서 뜻하지 않게 큰 문제에 봉착한 로이지만, 아버지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절대적 바람으로 홀로 머나먼 길을 떠난다. 로이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클리포드와 리마 프로젝트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엔 어떤 게 도사리고 있을까? 우주는 써지에서 벗어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경이로운 일상으로의 초대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우리를 경이로운 일상으로 초대한다. SF우주영화 하면 떠올릴 스펙터클하고 장엄한 우주서사보다 일상적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일상적인 우주를 보여준다. 근미래의 우리가 우주를 생각하고 대하고 행하는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자연스럽게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하여 지금의 우리로선 경이롭기만 한 우주가 극중에서는 대수롭지 않다. 


로이의 직업특성상 그리고 성격특성상 그래 보일지 모르겠다. 그는 우주비행사로 합당함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심박수 80 이하의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문명을 향한 환멸의 자세를 취한다. 차분함을 유지해 비로소 벗어날 때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러니. 그의 눈에 비치는 우주적 일상이 곧 관객인 우리가 보게 되는 일상적 우주인 만큼, 환멸로 가득찬 황량한 그곳이 경이롭게만 보일리 만무하다. 


다르게 말하면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6년 전 자신감을 비추고 바람을 한껏 고무시킨 '리얼한 우주'가 <애드 아스트라>를 통해 눈앞에 나타난 것일 테다. 미래지향적 최첨단 계획도시 같은 우주가 아닌 지금 우리가 두 발 붙이고 사는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주,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린 경이롭지만 미래의 그들에겐 진짜 우주 모습이다. 


영화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만큼 거시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다. 영화는 로이라는 한 개인의 내면과 여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데 천착하기에, 그의 내면과 여정은 처참할지 몰라도 그를 둘러싼 외면은 그렇지 않다. 다만, 로이의 여정에 필수불가격적으로 수반되는 죽음들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단면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면으로의 여정


극중 로이의 내면과 여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로이가 임무를 맡아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해왕성으로 떠나는 여정을 로이가 내면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여정과 동일시 했다고 본다. 그곳에 이성의 끈을 놓고 괴물이 되어버린 최고이자 최전방의 문명인이었던 우주비행사 과학자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로이 또한 아버지처럼 인간과 문명에 등을 돌려버린 채 살아온 지난날이 존재한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며 그 실체에 도달하고는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와 함께 과학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찾아 헤맬 것인가, 지구로 돌아와 현실에 두 발 붙이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갈 것인가. 현재 SF우주영화들의 대부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그럴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에 담긴 철학적 명제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유치한 메시지를 전형적인 기승전결로 전달하는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한편 영화의 철학적 명제는 조지프 콘래드 소설 <어둠의 심연>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서구문명이 야만스럽다고 단정한 원시적 자연으로 향한 서구인과 그곳에 사는 원시인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 작품들 말이다. 이 작품들이 서구문명과 제국주의 나아가 민족차별주의의 야만성을 고발하고자 했다면 <애드 아스트라>는 '문명'에만 천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참 재미없는 영화일 것 같다. 괜히 어렵게 꼬아 놓은 겉멋 든 영화일 것 같다. 사실이 아니다. 스펙터클하곤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따분하지 않은 액션과 긴장감 조성하는 시퀀스가 꾸준히 이어진다. 브래드 피트 30여 년 연기 경력 최초의 SF라는 점은 그 자체로 흥미요소이다. 진중하기만 한 그의 모습이 오랜만이다. 로이의 여정은 일방통행이지만 그의 여정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철학적이다 못해 문학적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통찰력 충만한 '인문(문학, 역사, 철학)'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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