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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때 그 시절'의 남녀가 아닌, 그때 그 시절의 '남녀' <유열의 음악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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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자비에 돌란, 봉준호, 켄 로치 등 거장의 최신 작품들을 비롯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레미제라블>,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나는 집에 있었지만>도 기대가 되고 <결혼 이야기> <더 킹: 헨리 5세>를 비롯한 넷플릭스 작품들도 기대를 모은다. 와중에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해 많은 한국영화들이 상영된다. 


알 만한 한국영화들은 주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를 통해 상영되는데, <엑시트> <극한직업> <미성년> <강변호텔> <유열의 음악앨범> 등이 눈에 띈다. 물론 우리가 이 영화제에서 보다 눈여겨봐야 할 한국영화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들일 것이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고 책임질 영화들 말이다. 다만 이번에 살펴보고 들여다볼 영화는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에 시작해 2007년까지 계속된 KBS cool FM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을 모티브로 한 감성멜로이다. 레트로(복고풍)를 한껏 자극하는 감성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거시적 시대상과 미시적 개인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차리리 <응답하라> 시리즈를 다시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수와 현우의 만남과 이별


1994년 10월 1일 KBS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앨범'이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새롭게 시작된다. 가족 같은 종업원 언니 은자와 함께 엄마가 남겨준 빵집을 꾸려가는 21살 미수, 우연히 찾아왔다가 곧 아르바이트로 함께 하게 되는 현우. 둘은 설레는 감정을 갖고 기억에 남을 만한 나날들을 보내지만, 어느 날 현우가 친구들과 함께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3년이 지난 1997년, 미수는 빵집 문을 닫고 인쇄공장 사무직으로 취직해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한편 현우도 먼 길을 돌아왔지만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며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우연히 문 닫은 빵집 앞에서 재회한다. 여전히 설레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던 미수와 현우, 하지만 다음 날 현우는 군대에 입대하고 우연 아닌 필연의 재회를 위해 미수가 연락처를 전하지만 실수로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다. 


현우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재회하는 미수와 현우, 시간은 어느덧 흐르고 흘러 2000년대가 되었다. 재회가 계속되는 그들의 만남의 시간은 또 얼마나 짧을 것이며, 이별이 계속되는 그들의 헤어짐의 시간은 또 얼마나 길 것인지. 부디 헤어지지 말고 좋은 만남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그들을 또 떼어놓을 것만 같다. 


감성과 스토리


<유열의 음악앨범>은 <해피엔드> <은교> <4등> 등으로 이름 높은 정지우 감독과 김고은, 정해인 투톱 주연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대표되는 1990~2000년대 레트로 감성으로 많이 회자되었던 것에 비해, 많은 인기를 끌진 못했다. 비평적으론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에겐 외면받아 손익분기점을 한참 못 미친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왜 이런 간극이 있었을까?


영화는 주지했다시피 3년 차로 만남과 이별을 계속하는 두 남녀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에,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가 각각의 다른 스토리들을 이어주며 지탱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정작 각각의 짧은 스토리들은 자체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성인 것이다. 하여, 영화를 감성과 전체적 감각으로 대한 이들은 만족했을 테고 스토리와 디테일한 감정으로 대한 이들은 불만족했을 테다. 


분명 영화의 전체를 훑는 감성은 훌륭했다. 지금은 보기 힘들거나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그때 그 시절을 상징하는 것들이 너무 튀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 듯했다. 특이점을 갖는 감성에 통속적인 대중가요가 흐르며 '누구나'의 멜로가 되었다. 무난한 걸 찾기 힘든 시대에 감히 도전장을 낸 무난한 감성멜로인 것이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지금 이 시대의 레트로 성향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벌새>도 1994년을 그리지만 그때 그 시절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무엇보다 영화에 맞닿게 그려냈다. 반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적어도 그때 그 시절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와닿지 않았던 게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주인공 두 남녀의 재회와 이별의 모습이, 그때 그 시절만의 어쩔 수 없는 점 때문이 아니라 우연으로 점철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그때 그 시절만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건 전체적 감성을 받아들일 땐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구체적 스토리라인에선 단점으로 작용했다. 


'시대'의 남녀 아닌 시대의 '남녀'


우리는 살아가며 매시간, 매일, 매주, 매달, 매년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참으로 많은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 시간들은 조금만 지나면 다 잊힌다. 기억에 선명히 남는 건 특별하거나 특이한 몇몇 순간들뿐이고 대부분은 추억이라는 이름 하에 뭉뚱그려서 남아 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고 하는 청춘, 10대 20대 30대 말이다. 


영화는 74년생 두 남녀의 1994~2005년을 담았으니 20~30대겠고 2019년 현재로선 40대 중반이겠다. 그분들에게조차 이 영화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가장 힘든 시절의 이야기처럼 비춰질 요량이 크다 하겠다. 영화가 그 '시대'의 두 남녀가 아니라 그 시대의 '두 남녀'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도 힘들거니와 긴 이별 끝에 짧은 만남만을 계속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안타깝지만 한편 정지우 감독의 다음 멜로가 기다려진다. 차라리 이 영화에서 레트로를 걷고 그때 그 시절이 아닌 지금을 배경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우연에 의한 재회와 이별이 계속되며 결국 그 모양새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거라면 말이다. 사랑에 절대 필연도 절대 우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과 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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