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리뷰]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미디어캐슬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 '포스트 하야오'라 불리는 두 명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 있다. 1960년대생 호소다 마모루와 1970년대생 신카이 마코토가 그들이다. 마모루는 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터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와 장편 데뷔를 조금 늦게 했지만 크나큰 성공을 거둔 반면, 마코토는 동인활동을 하고 게임회사에도 취직하는 등 비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터 경력을 쌓아오다 장편 데뷔를 빠르게 했다. 마모루가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데뷔한 반면, 마코토는 2004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데뷔한 것이다.
이 둘은 약속이나 한듯 3년마다 한 편씩을 들고 오는데, 하여 절대 겹칠 일이 없다. 우리는 3년을 주기로 1년을 거르고 2년 연속으로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감독의 오리지널을 굳이 비교하자면, 단편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마모루가 작품에서 마코토가 흥행성에서 앞선다고 하겠다. 마모루는 그의 모든 오리지널을 시체스영화제 최우수 애니상 또는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소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타왔다.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2위를, <날씨의 아이>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11위를 마크했다.
마코토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너의 이름은.>을 지난 2016년에 발표한 만큼 3년이 지난 올해 2019년에 차기작이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는 7월 19일에 개봉해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한국엔 사정상 개봉이 여의치 않았다. 개봉 연기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고, 당분간 개봉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와중에 개봉을 강행했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 하나로, 경색 국면을 뚫고 개봉해 보고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도쿄의 폭우, '맑음 소녀' 히나
가출해 도쿄로 상경한 소년 호다카, 하필 그때부터 역사상 유례없는 빗줄기가 도시를 강타한다. 막무가내로 숙식을 해결하며 일자리를 찾지만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마지 못해 찾아간 곳은 상경하는 배 위에서 위험에 빠졌던 그를 도와주고 그에게 밥을 얻어먹었던 청년 스가. 그는 도시전설을 취재하고 기사를 써서 잡지 K&A를 펴냈는데, 호다카는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약간의 돈을 받고 일을 하기로 한다.
취재하던 와중, 상경한 직후 힘들 때 패스트푸드 점에서 그에게 햄버거 서비스로 행복을 주었던 히나를 다시 만나 위기에 빠진 그녀를 구한다. 그녀는 알바에서 잘려 돈벌이가 필요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K&A에서 찾고자 했던 도시전설 중 하나인 '맑음 소녀'라는 게 아닌가. 그녀는 비록 일정 시간과 장소뿐이었지만 기도를 하면 비를 그치고 햇빛을 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끝날 줄 모르고 내리는 비 덕분에 그들은 알바를 시작한다. 돈도 많이 벌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는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는 법, 쏟아지는 비의 양은 점점 더 엄청나지고 도무지 기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히나는 계속 되는 기도 알바로 몸에 설명할 수 없는 이상이 생기고, 호도카는 우연히 주워선 위기에 빠진 히나를 구할 때 썼던 총이 문제가 되어 경찰에게 쫓긴다. 한편, 스카는 맑음 소녀가 사실은 날씨의 무녀일지 모르며 그녀의 희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폭우를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지는데...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훌륭한 작화와 OST
<날씨의 아이>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일본의 자연재해에의 두려운 문제 제기가 주 배경으로 작용하는 와중에 도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미성년자 소년과 소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동일본 대지진의 문제 제기를 주요 동력으로 삼아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전한 전작 <너의 이름은.>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여전한 건, 작화와 OST다. 누구도 이에 이견은 없을 듯한데, 실제 도쿄를 그대로 가져다놓되 그림으로서만 가능한 최상의 컨디션을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빛의 마술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만큼의 압도적 영상미를 전한다. 그것 하나만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감상하는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몸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이번 작품에는 '비'가 주요 소재인 만큼 비를 그려내는 데 절대적 공력을 쏟아부은 걸로 보인다. 그야말로 빛과 비 작화의 최전선이자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OST가 작화를 뒤따른다. 좋게 말하면 몸에 전율이 오게 만드는 나쁘게 말하면 오글거리게 만드는 OST들이 작품을 휘감고 있다. 대체로 후자보단 전자가 보다 많았는데, 웅장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빛의 작화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겠다. 즉, <날씨의 아이>는 다분히 신카이 마코토 팬을 위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것도 <너의 이름은.> 이전의 팬들. 작화와 OST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면에서 예전으로 후퇴 또는 돌아간 느낌이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문제, 그리고...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있을까',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OST 속 한 어구이다. 세상의 멸망을 짊어진 소녀와 소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 소년은 다행히(?) 선택할 수 있다. 소녀를 살리는 사랑, 세상을 살리는 희생. 소년은 당연히 사랑을 선택한다. 한편, 영화 속 다양한 어른들은 당연한듯 희생을 선택한다. 아니, 선택이라고 할 만한 고민조차 없이 희생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무능하고 한심한 어른들과 불쌍하고 대견한 아이들을 대조시켜 보여주며,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문제는, 희생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소녀'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초중반까진 '맑음 소녀'라고 해맑게 포장해놨지만, 후반부에 그녀가 곧 '날씨의 무녀'라는 암시를 해놓은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런 설정은 상당한 무리수이다. 또한, 호도카가 비록 우연일지라도 총을 지니고 다닌 것도 모자라 쏘기까지 했다는 점도 상당한 무리수라고 본다. 아무리 다분히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선보였다 하더라도, 다분히 현실 기반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하여, <날씨의 아이>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맥락상 개연성이 부족하고, 장면 장면에 큰 힘을 쏟은 만큼 장면과 장면을 잇는 데엔 그만큼의 힘을 쏟지 않았다. 대중적 서사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만의 특이점보다는 본래의 실력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본다. 캐릭터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애니메이션 하면 캐릭터가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선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작품 또한 캐릭터가 별로인데, 본래의 실력이 그러한 것 같다.
<날씨의 아이>는 호불호가 명백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경색 국면에서 영화 자체로만 호불호를 따지는 것 자체가 감독과 작품을 향한 신뢰가 엄청나다는 증거가 되겠지만, 다음 작품까지 이어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를 두고 언제까지 다분히 애니메이션 영상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빛의 마술사' '작화의 신' 등과 같은 수식어만 붙일 것인가. 스토리나 캐릭터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영상 콘텐츠의 기본이자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신카이 마코토의 3년 후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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