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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우리 가족들은 이상해. 잔인한 구석이 있어." <비뚤어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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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비뚤어진 집>(Crooked House)


영화 <비뚤어진 집>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는 말년에 일본 번역가에게 본인의 10대 작품을 직접 골라 답장을 보낸다. 그녀가 쓴 80여 편의 작품 중 10편만 선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을 텐데, 이후 그 목록은 애거서를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큰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가 선정한 10편은 꼭 봐야 한다던지, 10편을 시작으로 애거서를 접한다던지, 그녀의 10편이 아닌 본인만의 10편을 정해본다던지. 


그중에서도 애거서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단 한 편이 존재할 텐데, 의외로 그녀의 최전성기인 1920~40년대의 끝자락인 1949년에 내놓은 <비뚤어진 집>이 그 작품이다. 참고로, 저 10편에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오리엔탈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누구나 알 만한 최고의 작품들이 속해 있다. 그녀는 <비뚤어진 집>을 선정하면서 '탐구하기 매우 흥미로웠던 어떤 가족에 대한 연구'라는 이유를 건넸다.


지난 2017년 애거서의 10편 목록에 속한 두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하나는 <오리엔탈 특급 살인>으로 그야말로 대단한 캐스팅으로 주목을 모았지만 평작 수준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흥행했고 후속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도 당해년도에 상륙해 외국 평작 치곤 나쁘지 않은 흥행을 달성했다. 다른 하나가 바로 <비뚤어진 집>으로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평작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탈리아에서 최초 선보이고 본고장인 영국에선 극장에 달렸지만 북미에선 인터넷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한국에 2년 만에 상륙했다. 


이상한 가족들


영화는 어떤 여성이 어떤 남성에게 주사를 놓아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스 출신의 이민자로 레스토랑과 호텔 사업으로 큰 돈을 만지며 명사가 된다. 일찍 부인과 사별한 그는 젊은 미국인 브랜다와 재혼한다. 그런 그가 하룻밤새 죽었고, 장손녀 소피아가 집안 내 사람에 의한 타살을 의심하며 연인이었던 사립탐정 찰스 헤이워드에게 수사 의뢰를 한다. 사인은 에세린, 당뇨병 환자였던 애리스티드에게 누군가가 인슐린이 아닌 에세린을 주사했다는 것이었다. 


찰스는 곧 레오니데스 저택으로 향해 수사를 진행한다. 가족들을 한 명 한 명 만나기 시작한다. 애리스티드 입장에서 처제 에디스, 손녀 조세핀, 손자 유스터스, 아들 필립과 로저, 며느리 마그다와 클레멘시, 가정교사 브라운과 유모, 그리고 둘째 부인 브렌다. 소피아가 찰스에게 건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 가족들은 이상해. 잔인한 구석이 있어. 잔인함의 면면도 서로 달라. 그게 너무 불안해." 


변호사를 통해 재산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상속된다는 내용의 최종 유언장을 확인하는 찰스, 모든 가족이 지켜보는 와중에 서명을 했다지만 정작 서명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재산 상속의 주요 수혜자는 브렌다가 되는 것이었다. 사건의 초점이 안 그래도 가족들 대부분의 시기와 질투 대상이었던 브렌다로 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의 전말은 또 다른 유언장의 존재와 사고와 살인이 잇따르면서 전혀 생각할 수 없던 국면으로 치닫는데...


추리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재미


영화 <비뚤어진 집>은 훌륭하기 그지없는 원작을 평작 수준으로 각색해 내보인 작품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팬들은 환호할 일이지만, 왜 2년 만에 한국에 상륙해 극장에서 선보이는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전형적인 넷플릭스 해외 배급용 작품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만의 미덕이 존재할 테니 들여다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겠다. 


가장 먼저 굳이 하나의 미덕을 대라고 하면, 배우들에 있다. 가족을 이루는 수많은 배우들이 저마다 캐릭터에 맞게 완벽에 가까운 성향을 선보이는 와중에, 주인공 격인 이디스 역의 글렌 클로즈와 브렌다 역의 크리스티나 헨드릭스와 마그다 역의 질리언 앤더슨이 눈에 띈다. 그들의 개성이 그나마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런가 하면 찰스 역의 맥스 아이언스와 소피아 역의 스테파니 마티니도 튀지 않고 제 몫을 해낸다. 


아무래도 찰스와 함께 가족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추리와 수사를 하게 된다. 사실 그는 후반부까지 제대로 된 추리와 수사는커녕 이리저리 흔들리고 갈피를 못 잡고 중심 없이 어리바리할 뿐이다. 하여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추리에 뛰어들게 하는데, 정황상 브렌다로 시선이 몰리지만 가족 모두가 용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통속인 듯도 하다. 브렌다를 제외한 모두가 말을 맞추고 찰스를 속인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물론 이는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즉, 의외로 직접 참여하는 재미도 있다. 


막대한 부와 집단 사이코패스화


<비뚤어진 집>의 원제는 'Crooked House'이다. 겉으로 내보이기에 '비뚤어진 집'이라는 제목이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실상은 집 보다는 '가족'이 비뚤어진 보다는 '뒤틀린'이 정확하다 하겠다. 집 자체가 비뚤어진 게 아니고 가족들이 뒤틀린 것이니까. 하지만 '뒤틀린 가족'이라고 하면 너무 다 내보이는 듯하니 한꺼풀 더해 '비뚤어진 집'이라고 명명할 것일 테다. 


이 레오니데스 가족은 뒤틀려 있다. 다름 아닌 애리스티 드가 쌓은 막대한 부 때문이다. 그는 그 돈을 못난 아들들을 위해 전적으로 쓰지 않았는데 아들들은 심히 못마땅해왔던 것이다. 며느리들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손자 유스터스의 말을 들어 보면 애리스티드의 또 다른 모습이 그려진다. "가족들의 인생을 쥐고 통제하는 괴물같은 사람이었죠. 가학증에 자만으로 똘똘 뭉친. 당연한 결과예요." 손녀 조세핀의 대답도 걸작이다. 할아버지를 잃어 슬프겠냐는 찰스의 말에 "그다지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발레를 못하게 하셨거든요. 소질이 없대요."


모두가 선망해 마지 않는 대저택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뒤틀린 심사는, 아무나 가질 수 없겠지만 정작 그런 환경을 가지게 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무시무시한 감정일 듯하다. 여러 요인들로 인해 집단적으로 사이코패스화되는 것이다. 원작은 기가 막힌 분위기 조성과 개성 어린 캐릭터 조성과 예상 못한 전개 및 반전으로 이를 훌륭하게 표현해냈지만, 영화는 그에 비해 전체적으로 상당히 루즈했다. 사건과 사고와 반전 등이 다분히 '신사적'이었던 것도 한몫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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