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언더 더 실버레이크>(Under the Silver Lake)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다. 다른 요소들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면 효율적일지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글과 그림과 영상 등을 포함한 모든 콘텐츠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유념할 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매몰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자칫 콘텐츠 자체가 아무 의미 없이 되어버릴 수 있다. 종종 그런 콘텐츠를 목격한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2대 스파이더맨으로 잘 알려진 앤드류 가필드를 원탑 전면에 내세운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가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너무 많은 메시지를 전하려다 보니 영화 자체가 아무 의미 없이 되어버렸거나, 혹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풍부하다 못해 넘칠 듯한 메시지들을 한껏 즐길 수 있거나.
영화엔 앤드류 가필드 외에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로 유명한 라일리 코프도 주연급으로 분하는데, 그녀는 극 영화 데뷔 10년이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매직 마이크> <매드맥스> <아메리칸 허니> <로건 럭키> <살인마 잭의 집> 등 장르를 불문하고 주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편,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감독, 5년 전 호불호 확실한 호러 영화 <팔로우>로 이름을 알린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이다. 그는 장르의 관습과 법칙을 빗겨가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거나 혹은 천척하는 것밖에 못하는 것 같다.
청년 백수 샘의 기이한 여정
미국 LA, 청년 백수 샘(앤드류 가필드 분)은 집세가 밀려 5일 뒤에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서도 느긋하게 이웃집 여인들을 훔쳐보며 지낸다. 할부금을 못낸 차도 언제 뻿길지 모른다. 어느 날 우연히 이웃집 사라와 썸을 탄다. 그런데 하룻밤 새 그녀가 사라진 게 아닌가? 그런가 하면, 동네에 개 도살자가 출몰했다지 않나 할리우드의 대부호 제퍼슨 세븐스가 실종되었다고 하질 않나.
샘은 사라진 사라의 방으로 들어가 박스를 발견한다. 곧 인기척이 들리자 박스를 놓고 나오는데, 어떤 여자가 들어오더니 박스를 가져간다. 샘은 그녀의 뒤를 쫓으며 사라진 사라를 찾는 수사를 시작한다. 그는 참으로 다양하고 특이한 경험을 이어간다. 예수와 드라큘라의 신부들이 공연하는 파티장에 가고, '언더 더 실버레이크'를 연재한 작가를 만나며, 자신을 노숙자 왕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사내와 동행하기도 하고, 제퍼슨 세븐스의 딸인 밀리센트 세븐스와 조우하기도 한다.
과정에서 그가 알고 깨닫게 되는 건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이면과 진실이다. 모든 것들에 다 기호와 상징이 숨겨져 있고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건 우리가 아닌 전적으로 그(들)의 의해서라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심취한 샘에겐 가히 충격적으로 와닿을 수 있을 만한 뉴스였다. 여하튼, 샘은 사라를 찾을 수 있을까? 사라가 하룻밤 새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실버레이크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만의 도시이자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최전선 LA
샘이 사라를 찾을지, 사라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지, 실버레이크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한 건 영화의 초반에서일 뿐이다. 영화의 서사는 점점 '산'으로 가는데, 영화가 샘의 두서 없는 수사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라진 사라를 찾는다면 목적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어느덧 그 목적은 수단이나 도구라는 말로는 모자라는 핑계가 되어버린다.
감독이 지난 2018년 칸 영화제에서 밝혔듯 "LA 언덕 대저택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가 <언더 더 실버레이크>가 던지는 물음이자 극중에서 샘이 우왕좌왕 좌충우돌 찾아다니는 실체이다.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그들'만의 도시이자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최전선 LA 말이다.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내보였지만, 영화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했고 러닝타임은 길어졌으며 보는 이는 중반도 되지 않아 인내심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주지했다시피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자그마치 황금종려상을 다퉜는데, 쟁쟁한 경쟁작들을 살짝만 들춰도 <어느 가족> <가버나움> <버닝> <블랙클랜스맨> <레토> <콜드 워> 등이 눈에 띈다.
나쁘거나 혹은 괜찮거나
이 영화를 아무 생각 없이 또는 단단히 무장한 채 각오하고서 보는 것 모두 추천드리지 않지만, 일말의 옹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액션도, 판타지도, 드라마도, 스릴러도, 로맨스도, 미스터리도 아닌 것이 모든 장르를 포함하거나 또는 아무런 장르도 아니거나. 모든 장르를 포함했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다시 없을 망작이다. 아니, 망작이라기보다 괴상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아무런 장르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장르 비틀기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의해 학습되고 그래서 예측할 수 있는 관습을 철저히 빗겨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후자라고 생각하기엔 허술하고 민망한 부분이 참으로 많다. 개연성을 학습해서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연성에만 기댄 서사라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왜 기존의 관습을 따르다 못해 천착하기까지 했는지. 샘은 우연히 찾아간 이들한테서 어김없이 음모론과 진실과 겉멋 든 수사를 잔뜩 듣는다. 거기에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수 포진되어 있는데, 대도시 LA의 거대하고 소름끼치는 이면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민망하다. 더욱이 당당히 제목이자 LA를 대변하는 실버레이크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소소한 재미는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따라 하려는 것인지 대중문화 코드는 꾸준히 내보이고, 알프레드 히치콕을 따라 하려는 것인지 곳곳의 장면과 설정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으며, 댄 브라운과 움베르토 에코를 따라 하려는 것인지 온갖 기호와 상징으로 범벅을 해놓았다. 따라 하려는 것인지, 존경해서 오마주 하려는 것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듯하다. 그것들을 '재미'로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높디 높은 산이다.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과 무엇이 있을지 궁금한 사람만이 최소한의 관심을 가진 채 힘겹게 산을 오를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거나 올라도 중도포기할 테다. 참으로 많은 이들을 실망의 도가니에 빠뜨릴 것이다. 한편, 극소수의 사람들에겐 매력적으로 비출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으니 그들에게조차 괜찮게 비추는 건 극히 어려울 것이다. 혹시 정상에 올라 충만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오로지 과정에 충실 또 충실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결말을 논하는 건 안 될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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