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 Z>의 한 장면. 이 장면 하나로, 이 영화는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밀리언셀러 <세계대전 Z>(맥스 브룩스 지음, 황금가지 펴냄)를 원작으로 하였고, 사전에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끼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피 튀기는 판권 경쟁을 하였으며, CG작업 때문에 개봉 일자가 연기되기까지도 한 2013년 여름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월드워 Z>.
2013년 6월 셋째~넷째 주 전 세계에 개봉하여 7월 26일 현재 전 세계 4억 6천만 불에 육박하는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500만이 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엄청난 수익임에 분명하지만, 워낙에 제작비가 많이 들었기에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처지라 할 수 있다.
'좀비 영화'에 불과한 <월드워 Z>가 이처럼 엄청난 인기를 끄는 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월드워 Z> 앞에, '좀비 영화'가 아닌 'A급 영화' 또는 최고의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A급 블록버스터가 된 B급 좀비영화
영화 <월드워 Z>. 브래드 피트는 이 좀비 영화를 A급으로 끌어올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좀비영화'하면, 앞에 B급이란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특성상 대중적인 상품이 되기에는 하자가 많기 때문에 투자를 받기 힘들고, 자연스레 저예산으로 제작이 되고 이름값 없는 배우가 출현하기 마련이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 좀비가 '뛰기' 시작했다.(대표적인 영화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 등) 기존의 느릿느릿했던 좀비가 뛰어다니며, 거기에 '액션'이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좀비영화는 '대중' 상품으로의 길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좀비 영화에 세계적인 A급 스타가 출현하지는 않았다. 유명한 좀비 영화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는 영화에 출현하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유형이다. 애초에 A급 스타가 좀비 영화에 출현하게 된 것은 <월드워 Z>가 처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이름을 걸고 직접 판권 경쟁에 뛰어들어서 기필코 따왔다니,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여기에 <월드워 Z>는 기존의 좀비 영화와 다른 차별을 둔다. 바로 '재난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의 창조이다. 기존의 좀비 영화는 주인공 또는 주인공들이 좀비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액션이나, 반대로 좀비들에 의해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죽어가는 호러가 주를 이루었다. 그 앞에 '블록버스터'란 수식어를 얻기엔 무리가 따랐다.
반면 이번 영화는 어느 누가 보아도 블록버스터이다. 그리고 재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좀비 창궐, 수십억 명의 죽음, 불명확한 원인과 이를 풀고자하는 인간, 끈끈한 가족애 등. 재난 영화의 필수 요소를 다 갖추었다. 자연스레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쏟아 올랐다. 미시적인 B급 좀비 영화에서 거시적인 재난 블록버스터로의 훌륭한 변신이다.
보는 즐거움, 하지만 곳곳에 산재하는 아쉬움들
<월드워 Z>의 한 장면. 영화는 엄청난 초반 흡입력을 선보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2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짧다고 느낄 만큼 흡입력을 자랑한다. 속도감 있는 좀비물의 장점을 잘 흡수했고, 재난 영화가 가지는 요소를 적절히 배합했으며, 이로 인해 짧은 시간 안에 화면 속으로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
특히 초반의 20여 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운 상황. 알 수 없는 공포로부터 무작정 도망가는 인간들과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정체불명의 괴물들.
넓은 광장과 좁은 골목들의 교차.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투에 뛰어드는 주인공의 미시적인 모습과, 좀비에 대한 두려움과 역겨움이 유발되게 하는 거시적인 장면. 20~30분 여분씩 끊어지는 하나의 단단한 에피소드들.
하지만 곳곳에 아쉬움이 산재해 있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는 않는다.
일단 복선이 너무 티가 난다. 거의 첫 장면부터 몇몇 복선을 깔아두는 데, 누가 보아도 이 장면이 뒤에 가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을 안다. 하나의 에피소드들은 나무랄 때가 없다. 그 20~30분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게 만든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끝나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사이, 느슨하게 풀어진 끈은 다시 조여지지 않는다. 단단한 끈과 끈을 이어주는 매무새가 너무 헐겁다.
예를 들어, 하버드 출신 바이러스 박사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던데 너무 어이없게 죽어 버린다. 너무나 중요할 때 울리는 주인공의 핸드폰 벨소리는 너무 뻔했고, 그로 인한 전투와 몇몇 군인의 죽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그 신(scene)은 필요가 없었다. 주인공이 그곳(한국 평택 기지)에 간 이유는, 그곳을 바이러스 창궐의 시작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던 미치광이 전직 CIA 요원의 말을 듣기 위해서 인 듯하다. 이 부분의 전개는 너무나 헐렁했다.
이 밖에 주인공과 그의 동료가 탄 비행기가 추락해서 그와 그의 동료만이 살아남은 것, 그들이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얼마 가지 않아 세계보건기구 연구센터가 눈앞에 나타났던 것, 결정적으로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나 운이 좋게 백신을 발견했던 것 등은 애교로 봐줘야 할 정도이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다
영화는 아직 보여줄 것이 많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후속편이 나올 것이라 보는데, 실제로 파라마운트 사는 영화의 흥행을 보고 곧바로 후속편 제작을 발표했다. 기존에 3부작으로 기획되었는데,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포기했다가 흥행을 보고 후속편을 발표했다는 후문이다.
원작의 경우, 좀비 창궐이 모두 해결된 이후 생존자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이에 반해 영화의 경우, 결말까지도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좀비 창궐의 원인은 여전히 불명확하고, 백신은 해결책이 아닌 회피책에 불과하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부분에서의 주인공의 말이, 이제야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해준다.
후속편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고, 1편에 뿌려둔 다양한 복선들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최대한 발휘해 풀어갔으면 좋겠다. 단단한 끈과 같은 에피소드들을 이어주는 매무새가 더욱 단단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가져본다.
"오마이뉴스" 2013.7.2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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