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좀비랜드>
영화 <좀비랜드> 포스터. ⓒ 소니픽처스
좀비영화는 끝없이 나온다. 공포물로서, 액션물로서, 드라마로서, 코미디로서, 심지어 로맨스로서, 좀비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장르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016년 <부산행>을 시작으로(물론 그전에도 소소하게 좀비영화를 만든 한국 영화계이다) 작년 <창궐>과 올해 <기묘한 가족>이 나왔는 바, 좀비영화의 원조 미국에는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좀비영화들이 선보여왔다.
주지했던 것처럼 장르도 참으로 다양한데 공포 스릴러 액션물 <새벽의 저주> <28일 후>, 코미디물 <새벽의 황당한 저주>, 액션물 <레지던트 이블>, 드라마 <월드워Z> <나는 전설이다>, 로맨스 <웜 바디스> 등이 대표적이다. 무조건 좀비가 나와 좀비를 죽이든 좀비한테 죽든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포와 액션이 결합되어 있긴 하다.
와중에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 뭐라 단정짓기 힘든 좀비영화가 하나 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코미디 좀비영화 쌍벽으로 칭송받고 있는 <좀비랜드>가 그 영화인데,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좀비영화를 향한 오마주가 영화를 뒤덮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좀비랜드>는 좀비영화에 대한 패러디와 함께 반(反)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좀비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겨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좀비)영화이길래?
좀비랜드에 남겨진 4인
좀비랜드에 남겨진 그들. 영화 <좀비랜드>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
원인 모를 전염병 창궐로 '좀비랜드'가 되어버린 미국, 콜럼버스(제시 아이젠버그 분)는 자신만의 서바이벌 가이드를 세워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아니, 생존하고 있다. 어느 날 도로 한복판을 가벼운 짐으로 겨우 횡단하고 있는 그에게 무식하게 생긴 차가 돌진한다. 차에서 내리는 텔러해시(우디 해럴슨 분), 서로 죽일듯 총을 겨눈 그들은 곧 함께 차를 타고 동부로 향한다.
식료품점에 들르는 그들, 어디서 갑자기 콜럼버스 또래의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위치타(엠마 스톤 분), 여동생 리틀 락(아비게일 브레슬린 분)이 좀비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으니 총으로 죽여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매는 사기꾼, 콜럼버스와 텔러해시의 총을 탈취한 것도 모자라 차도 탈취해 도망간다. 그들은 새로운 차를 찾아야 한다.
더 좋은 차와 더 많은 총을 발견한 그들, 신나게 달려가는데 자매가 탈취해 도망간 차에 'HELP'가 써 있는 게 아닌가. 함정인 줄 인지하고 조심스레 행동하지만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4인은 함께 동부가 아닌 서부의 LA로 향한다. 자매가 가고자 했던 곳이다. 그들은 함께 LA 할리우드에 있는 빌 머레이 집에 쳐들어가 살아 있는 빌 머레이를 만나는 등 친해지는가 싶었는데, 다음 날 깨어보니 자매는 도망가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녀들도 그녀들만의 생존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던 것. 이 좀비랜드에 인간은 그들 4명밖에 없는 것 같은데,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쉬어가는 좀비영화
좀비영화 계보의 '쉬어가는 페이지'. 영화 <좀비랜드>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
영화는 곳곳에서 빵빵 터져 큰 웃음과 큰 쾌감을 선사하지만 기본적으로 적당한 코미디와 액션을 동반한, 성장로드무비인 듯하다. '좀비영화' 하면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장면이나 메시지나 생각할 거리는 나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어쩔 수 없고 당연하기까지 한 잔인함은 동반되지만 말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온몸이 반응해야만 하는 긴장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살아남은 몇몇의 인간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군상 역시 찾을 수 없다. 반면, 도망은 치지만 숨지는 않는 시원시원한 액션과 대놓고 웃음을 유발하려는 게 아니라서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었던 점이 크게 와닿는다.
특히, 중반과 후반의 특정 씬들은 그동안 좀비영화를 볼 때 움츠러진 어깨를 쫙 펴게 해주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좀비영화의 계보를 쫙 나열한다면, 이 영화는 번외편 격 '쉬어가는 페이지'로 따로 빼지 않을까. 아니. 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좀비영화가 사실 좀비가 아닌 인간이 주인공이지만, 이 영화는 좀비도 인간도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4명이 주인공이겠지만, 주인공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모일 4인. 우디 애럴슨, 아비게일 브레슬린, 제시 아이젠버그, 엠마 스톤
<좀비랜드 2>로 다시 뭉칠 4인방. 영화 <좀비랜드>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
올해 10월 <좀비랜드 2> 개봉이 확정되어 감독 이하 4명의 주연들이 모두 다시 출연한다고 한다. 북미에서는 정확히 10년 만의 조우, 반년이나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기대되는 어쩔 수가 없다. 그건 비단 이 영화 자체를 향한 믿음뿐만이 아닌 것이, 감독 이하 주연들 모두가 이 영화를 전후해 엄청난 이름값을 얻었다는 점이다.
4명의 주연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우디 해럴슨은 1990년대 걸작들을 통해 이름을 날렸고, 2000년대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한 것에 비해 좋은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좀비랜드> 이후 2010년대 큰 영화들에 누구보다 많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가장 나이가 적은 아비게일 브레슬린은 일찍이 2006년작 <미스 미틀 선샤인>으로 이름을 떨친 바 있는데 이후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진 못하다. 한편, 루벤 플레셔 감독은 <베놈>을 연출하며 이른바 메이저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리고, <좀비랜드>가 낳은 두 히어로, 히로인 '제시 아이젠버그'와 '엠마 스톤'이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이후 <소셜 네트워크>로 소위 '대박'을 치더니 <나우 유 씨 미> 시리즈로 메이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DC 히어로물에 진출해 '폭망'한 케이스다. 지금은 작은 영화들로 절치부심 중이다. 엠마 스톤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승승장구 <이지 A> <헬프> <버드맨> <라라랜드> <빌리 진 킹> <더 페이버릿> 등 그녀가 출연한 수많은 영화들이 호평과 흥행에 성공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크루즈 패밀리> 시리즈에도 출연해 메이저에서의 이름값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이 영화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정식 개봉되지 않았던 게 매우 이상하다. 북미에서 <좀비랜드>와 같은 해 개봉해 크게 성공했지만 한국엔 정식 개봉되지 않았던 <행오버>를 생각나게 한다. 한편 기존의 좀비영화와 완연히 다른 면모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 <좀비랜드 2>는 절대 개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디작았던 영화 사이즈가 커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작은 사이즈와 영화가 지향했던 B급 감성과 영화가 보여줬던 좀비영화에 대한 사심 가득 패러디와 반대 성향은 그대로이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10년 전 멤버가 고스란히 다시 모인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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