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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수작에 가깝게 재조명되어야 마땅할 <라이터를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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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라이터를 켜라>


영화 <라이터를 켜라> 포스터. ⓒ시네마 서비스



지금은 <시그널> <킹덤>의 작가로 이름 높은 김은희 작가의 남편으로 유명한 장항준 감독, 재작년 14년 만의 장편영화 <기억의 밤>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낸 바 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바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996년 <박봉곤 가출 사건> 각본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장항준 작가는, 2002년 <라이터를 켜라>로 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 드라마판으로 넘어가 나름의 성공을 거둔 그는 영화판에서는 감독이나 작가 아닌 특별출연과 까메오와 조단역으로 수없이 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췄는데, 지금까지도 <라이터를 켜라>가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쏟아진 조폭 코미디 영화 중 하나인 이 영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와중에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것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라이터'로 상징될 그것은, 굉장히 날것이고 일면 저렴하며 너무 직설적이라 해석하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꺼려지기도 한다.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돌진하는 허봉구.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동원예비군훈련이 있는 날, 서른 살 먹고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단돈 만 원도 없어서 몰래 훔치려다 혼나는 허봉구(김승우 분)는 점심 먹고 한가하게 낮잠을 자다가 쫓겨난다. 그리하여 오후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 다시 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남은 돈은 300원뿐, 어쩌지 못하다가 전재산을 털어 라이터를 사고는 담배를 피울 뿐이다. 


우연히 예비군훈련장에서 만난 떠벌남이 태워줘 서울역으로 향한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고는 나왔는데 라이터가 없는 게 아닌가. 다시 들어가봤더니 조폭으로 보이는 이가 라이터를 가지고 있다. 양철곤(차승원 분)은 부하 앞에서 쪽팔림을 무릎쓸 수 없어 그에게 라이터를 주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던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허봉구는 양철곤 부하에게서 기차표를 훔쳐 기차를 탄다. 


한편, 양철곤은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서는 한 칸을 점령해버리고 다른 칸에 있는 국회위원 박용갑(박영규 분)에게 가 돈을 요구한다. 검사였던 박용갑이 국회위원이 되게끔 안 보이는 곳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양철곤이었는데, 국회위원이 되고는 연락을 피하는 게 아닌가. 마지막으로 남은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허봉구는 300원짜리 라이터를 되찾기 위해 수없이 얻어터져도 계속 돌진한다. 양철곤 일당이 질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 양철곤은 기차를 점령해버려 중간에 멈추지 않게 하곤 박용갑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다 죽자는 식으로 협박한다. 하지만 박용갑은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민주투사'적 기질로 절대 굴하지 않는다. 기차를 탄 수많은 승객들의 운명은? 허봉구와 양철곤과 박용갑의 운명은?


기차에서의 인간군상


기차에서의 인간군상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영화는 이름이 있는 세 명인 허봉구와 양철곤과 박용갑의 물고 물리는 관계와 더불어 이름이 없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캐릭터 이야기를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내보인다. 기본적으로 저 세 명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유명해진 배우들이 연기한 조단역의 인간군상들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은근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 '기차'라는 한정되어 있고 칸마다 구분이 되어 있는 공간을 훌륭하게 이용한다. 라이터로 대변되는 찌질한 백수 허봉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이용만 당하고 버림 받은 조폭 보스 양철곤의 쪽팔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폭 같은 거 때려 치우고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그의 발로는, 조폭과 엮이기 싫어하는 당연한 전략적 마음과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자존심으로 이어진다. 


결국 저 세 명이 원했던 건, 또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 알량한 자존심이다. 그 하찮은 자존심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국가를 뒤흔드는 사태에 직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좌관 말마따나 크지 않은 돈이니 줘버리면 되는 것이고, 300원 짜리 라이터야 더 말 할 게 뭐 있겠으며, 또 그깟 300원 짜리 라이터를 받겠다고 죽음도 불사하리라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도 웃길 노릇이다. 


은근한 풍자와 비판


은근한 풍자와 비판이 재밌게 날카롭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그야말로 답답하기 짝이 없어 그만큼 웃기고 우리나라 남성들과 남성들이 구성하는 각 계층의 믿을 수 없을 만치 얄팍한 구성이 주는 황당함이 보면 볼수록 치욕으로 다가오는 와중에, 인간군상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어 몇 명 되지 않는 조폭의 폭압적이고 도구적인 압박에 대응하는 모습은 시원하다. 이 양가적으로 보여지는 모순적인 양상은 꽤나 이채롭고 인상적이다. 


영화 앞 부분에서 예비군훈련의 폐해를 신나게 비판하는 모습, 기차를 탄 후 인간군상들에서 유일하다시피 활약하는 여성 승객의 모습, 국회위원 한 명에 경찰청장까지 나서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 모습 등은, 일면 클리셰로 비춰질 수 있지만 적어도 적재적소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비춰졌다. 즉, 쓸 데 없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불필요한 장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라이터를 켜라>를 적어도 코미디 수작으로 생각해 단정지어 소개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분명 하찮을 수 있는 겉모양에 꽤나 체계적인 사회풍자적 요소들을 나름 적재적소에 배치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긴 하는데,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했던 시기가 시기였던 지라 지금에 와서 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감안한다는 전재 하에 수작에 가깝게 재조명될 순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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