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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최고의 음악 영화' 이전에 '드라마의 총집합'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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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샤인>


영화 <샤인> 포스터. ⓒ 라이크 콘텐츠



'음악 영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지만 그 양상은 시대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왔다. 공통적으로 음악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그들은 항상 고군분투하는데, 80~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토리가 부각되고 스토리 속 인간보다 환경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양상이 달라진다. 인간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잘 짜여진 스토리와 변하지 않는 환경이 주를 이룬다. 


2007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유명세가 자자한 몇 편의 음악 영화들이 나온다. 하나같이 이후 음악 영화의 공식이 된 작품들이다. <원스> <어거스트 러쉬>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가 그 작품들이다. 이듬해에는 <맘마이아!>가 나와 대성공을 거두며 뮤지컬 음악 영화의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는 2018년과 2019년에는 <보헤미안 랩소디> <로켓맨> <예스터데이> 등 전설적인 현대 음악 거장들을 다룬 음악 영화들이 줄을 이어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 수많은 음악 영화들 사이에서 고고히 빛나는 독보적 영화 한 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북미에서는 1996년, 국내에서는 이듬해에 개봉한 <샤인>이다. <샤인>은 위에서 언급한 '인간이 주인공'인 시절에 만들어진 대표급 영화라 할 수 있다.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한 인간의 온전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아주 잘 보여진 아빠와 아들 즉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다. 


'천재' 데이비드의 불행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호주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 데이비드 헬프갓은 아버지 피터로부터 엄격한 피아노 교육을 받는다. 피터는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접었고 이후에는 아버지를 가스실에서 잃었다. 피터는 개인적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투영해 오직 1등 만을 강요했으며 가족적으로 절대 헤어질 수 없는 단단한 가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던 중 작은 대회의 심사위원 로즌 선생이 데이비드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다 키우려 한다. 역시나 반대하지만 이내 뜻을 굽히는 피터. 시간이 흘러 데이비드는 큰 대회에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피터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된다. 기회는 또 찾아오는 법, 이번엔 영국왕립음악대학이다.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제안, 데이비드는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 뛰쳐나와 영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데이비드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팍스 교수 밑에서 고통스러울 정도의 노력 끝에 콩쿠르에 나가게 된다. 


데이비드가 선택한 연주곡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바람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팍스 교수의 말에 따르면 '불멸의 곡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는 곡'이다. 데이비드는 이 곡을 완벽히 연주하는데, 연주하는 도중 아버지와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목도하고, 마치고선 쓰러진다.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신세가 된 데이비드, 어느 날 빗속을 달려 당도한 바 '모비스'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교육, 심리, 관계의 미묘함이 공존하는 음악 영화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샤인>은 당해년도 거의 모든 주요 북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데이비드 헬프갓 역의 '제프리 러시'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두루두루 완벽히 연기해냈다. 익히 알려진 그의 다른 역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헥터 바르보사 선장이나 <킹스 스피치>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을 이루는 또 다른 실질적 주인공은 데이비드의 아버지 피터 헬프갓이다. 그를 통해 보여지는 빙퉁그러진 교육 방식과 가족애의 면면은, 그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한편 데이비드 헬프갓을 통해 보여지는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천재 이야기를 상당히 희석시켜준다. 덕분에 <샤인>은 영화 안에서는 데이비드 헬프갓이 보다 돋보이게 되었고 영화 밖에서는 보다 입체적이게 되었다. 


물론 피터의 교육 방식이나 가족애의 면면이 특별하다고 보긴 힘들다.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시켜 대신 이루게 하려는 것도, 가장으로서 가족이 흩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있으려 한다는 것도, 부모로서 자식을 자신의 손 안에 넣고 절대적으로 컨트롤하려는 것도, 자식이 누구보다 잘 되었으면 하지만 너무 잘 되어 날개를 활짝 피는 건 볼 수 없다는 것도 모두 클리셰의 영역에 속한다. 


다만, 이 영화가 나온 지 어언 20년이 훌쩍 지났다는 걸 감안할 때 여타 영화들에게서 클리셰를 당하면 당했지 여타 영화들한테서 클리셰를 가져오진 않았을 거라 보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 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그 안엔 교육과 심리와 관계 등의 규정 내리기 어렵지만 다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미묘함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총집합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영화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크게 세 장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데이비드가 영국왕립음악대학에 진학하기까지가 1장이라면, 그곳에서 사력을 다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2장이라고 할 수 있겠고,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하곤 쓰려져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난 후의 나날을 3장으로 보면 되겠다. 


1장이 아버지 피터와 아들 데이비드의 관계 설정이 주를 이룬다면, 2장은 '천재란 고통이 수반된다'는 명제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하겠고, 3장은 '한 인간의 인생을 규정내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한다. <샤인>은 흔히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최고의 음악 영화' 중 하나라는 드높은 타이틀도 이 앞에선 큰 의미가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몇몇 이야기들이 겹쳐진다. 오히려 그러했기에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소재로 어쩔 수 없이 모짜르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버지 레오폴트가 일찍이 아들 모짜르트의 재능을 알아채고 지극한 보살핌과 투철한 교육으로 천재성을 성장시키지만, 모짜르트가 장성하고나선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온갖 역경을 뚫고 파란만장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 한 인간의 삶을 줄기로 하여 참으로 많은 것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면서도 큰 맥락을 손상시키지 않는 솜씨를 발휘했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역시 '음악 영화'다운 솜씨로 장면과 장면 이면도 정확히 캐치하는 음악 선곡을 자랑한다. 장면과 그 이면을 캐치해서 드러내 도드라져 보이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감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그저 듣고만 있어도 좋은 그런 음악 말이다. <샤인>에서 음악과 영화는 따로 또 같이 완벽히 조우한다. 영화로서 감상해도 좋고, 음악으로서 감상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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