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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가난한 여성 노동자와 지체장애자의 잔혹사 <파란입이 달린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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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파란입이 달린 얼굴>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 포스터.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마트에서 일하는 서영(장리우 분), 고객한테 거짓말로 홍보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 원무과에서 병원비 독촉을 심하게 받고 병실로 간 그녀는 엄마에게 이제 그만 사라져버리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기와 오빠가 편할 것 같다고 말이다. 무표정, 무감정, 무책임...


서영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지체장애가 있는 오빠 영준(진용욱 분)이 있다. 그는 봉제공장에서 나름 건실하게 일을 하고 집에서는 나름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든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서영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스님에게로 가 도움을 청한다. 어디 일할만 한 데 없냐고. 


스님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구두도 신고 다니는 땡중이다. 서영에게 제법 괜찮은 일을 소개시켜주는 것을 보니 속세와도 인연이 깊어 보인다. 아마도 서영과는 일반적인 관계 이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새로운 일터에서 서영은 우여곡절 끝에 잘 적응해 나가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진다. 오빠 영준도 어려운 회사 사정 와중에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일이 터진다. 


잔혹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의 한 장면.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은 잔혹하다. 한 가지만 지녀도 살아가기 너무나도 힘든 이 세상에, 가난에 찌들어 사는 여성 노동자와 지체장애인 남매라니. 서영이 무표정에 무감정에 무책임한 얼굴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까. 우리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답답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녀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사회적 통념상 더 다양한 일자리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테다.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뺨을 맞고 해고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무표정과 무감정과 무책임한 모습을 보고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을까. 


영화는 특유의 미장센, 주로 '정지'의 장면을 통해 무표정과 무감정과 무책임을 극대화 시키고, 그럼으로써 그녀가 이 세상의 압박에 탈진하고 포기했다는 느낌에 더해 일종의 여자다움을 거부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녀가 결코 적극적이지는 않은 바, 소극적 거부 내지는 동적 거부라고 할 수 있겠다. 


가난, 노동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의 한 장면.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영화는 계속해서 가난과 노동의 문제로 나아간다.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가난의 되물림. 그녀로 하여금 엄마에게 몹쓸 말을 하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이 바로 이 가난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가난 위에 층층이 덧쒸워진, 계속 덧쒸워질 빚의 무게다. 그건 평생 가도 절대 가난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근근이 생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낙인이다. 


그래서 서영은 오직 돈을 위한 노동에 매달릴 뿐이다. 다른 무엇도 필요없다. 단순히 일하고 돈을 버는 것만이 노동의 전부는 아닐진대. 노동도 삶의 일부, 절대 노동이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될 때, 눈 앞의 생존이 모든 것일 때, 노동은 그저 돈일 뿐이다. 서영에게도 그러하다. 


비단 서영에게만 그럴까. 노동에서 삶의 활력을 찾고 노동을 통해 삶을 정진시키는 게, 거기에 시간과 정신을 쏟는 게 가당키나 할까. 노동의 본질을 알고 노동자의 권리를 알고 일터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게 하는 게 그들을 위한 것일까. 모르겠다. 그러면 일터에서 쫓겨나 생존을 영위할 수 없게 될 여지가 다분한데... 그게 옳은 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들에게 그런 부담을 주기 싫은 마음도 공존한다. 


장애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의 한 장면. ⓒ영화배급협동조합 씨네소파


장애는 이 영화가 몸소 보여주는 가장 임팩트 있는 문제이자 실상이자 개념이다. 다름 아닌 서영의 오빠 영준을 통해 보여주는데, 그는 일터에서 가장 신망높고 일 잘하고 책임감 있다. 서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체장애를 지니고 있는 바, 혼자의 힘으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다수 존재한다.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고 동료와 함께 가지 않는 이상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없으며 무엇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실현 가능한 꿈과 이상을 현실로 옮길 수가 없다. 그에겐 충분한 실력이 있지만, 충분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지쳐버린 서영과 다르게 몸부터 지쳐버린 영준이다. 


우리는, 이 사회는 장애에 무심하다. 우리나라에 지체장애인만 100만 명이 넘지만, 그들 모두가 소외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도움이 필요할까? 물론 직간접적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인식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이 '그들'에서만 그치지 않고 '우리'라고 생각하는 것. 


비단 장애뿐만 아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문제의 주인들, 여성, 가난, 노동 모두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나누는 것 같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모두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맞고 그들은 틀리다는 정서 하에 같은 공간을 영위한다는 것, 너무 불필요한 게 아닐까. 모두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른 것처럼, 그저 다름을 인정하면 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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