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리 빌보드>
영화 <쓰리 빌보드>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 에빙 외곽, 사람 발 길이 뜸한 도로 옆에 세워진 허물어져 가는 큰 광고판 세 개가 탈바꿈한다. 딸이 죽어가면서 강간을 당한 후 불에 타 돌아왔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1년이 지난 현재를 사는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가 책임자 윌러비 서장(우디 해럴슨 분)을 향해 직격타를 날린 것이다.
푸른 잔디 위에 선명히 대조되는 새빨간 바탕으로 검정색 글씨의 메시지를 세 개의 광고판에 써 놓았다. RAPED WHILE DYING(내 딸이 죽어가면서 강간을 당했는데), AND STILL NO ARREST?(그런데 범인을 아직도 못 잡았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이에 마을에서 존경받고 명성높은 윌러비 서장뿐 아니라 그를 존경해 마지 않지만 주먹이 앞서는 마마보이 경관 딕슨(샘 록웰 분)이 분개한다. 그뿐이랴? 기억하기 싫은 1년 전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는 것보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존경받는 윌러비 서장의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염려하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압박을 가한다. 밀드레드는 정녕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데...
내 딸이 죽어가면서 강간을 당했는데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쓰리 빌보드>는 블랙코미디로 명성 자자한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 블랙코미디이다. 74회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고, 75회 골든글로브에서 4관왕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90회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는 저력을 발휘했다. 영화를 이끄는 세 주연 배우의 연기는 그 명성을 훨씬 뛰어넘을 만한 것이기에 굳이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다. 한편, 영화의 저력은 세 개의 광고판에 써넣은 세 개의 문구와 맞물려 있다.
먼저 RAPED WHILE DYING, 밀드레드는 왜 그토록,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딸의 죽음에 분개하고 계속 환기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의 딸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딸이 죽던 날 집에서 그녀와 딸은 심하게 다툰다. 딸은 차를 빌려달라고 하고 엄마는 딸의 행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빌려주지 않는다. 이에 딸은 화가 나 길에서 강간을 당해 죽어버리겠다고 큰소리치고 나가버린 것이다. 엄마도 그래버리라고 소리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토록 처참한 비극의 시작, 거기에는 엄마의 딸이라는 개체 혹은 집합체로서의 인간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에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데, 그 모습이 한편으론 비극을 양산하고 한편으론 씁쓸한 웃음을 양산한다. 밀드레드가 세 개의 광고판을 만든 뒤로 그 양상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범인을 아직도 못 잡았다고?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두 번째 광고판의 AND STILL NO ARREST?는 영화의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사회적 맥락과 맞닿게 되는 지점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범인의 발뒤꿈치도 찾지 못했거니와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히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것에만 머무르는 게 아닌, 마을 사람의 무관심 그 이상의 적대시에 있다.
밀드레드가 경찰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소소하게, 대범하게, 잔인하리만치 응징하는 모습과 그들이 당하는 모습은 생각지도 못한 웃음을 유발한다. 아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경찰임에도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마마보이 딕슨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한다.
세월호 얘기를 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비록 범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잡혔지만, 그 사건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한 당시 통수권자를 향한 비판과 함께 희생당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계속 되었다. 피해자로서 당연한 권리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족들에게 되지도 않은 소리들을 참으로 많이도 했다.
돈 때문에 계속 하느냐, 이젠 지겨우니 그만해라, 좀 조용히 살자 등. 이들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도 블랙코미디의 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비극의 한 편에 웃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된건가, 윌러비 서장?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HOW COME, CHIEF WILLOUGHBY?에 와서는 블랙코미디의 절정이 보여짐과 동시에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많아진다. 밀드레드가 보기에 딸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최고 책임자는 단연 서장 윌러비. 그런데 하필 왜 그는 자기 일에 열심이고 평소 존경받는 행동을 하며 집에서도 훌륭한 가장인가.
더욱이 하필 왜 그는 암에 걸려 몇 개월 후면 세상을 떠야 하는 병자인가. 그런데 왜 요양하지 않고 서장직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소소한 의문을 제쳐두고서라도, 이 딜레마가 던지는 비극+비극은 또다른 종류의 허탈한 웃음을 유발하는 능력이 있다. 이를테면, '하, 진짜, 어떻게 그러냐' 하는 느낌이랄까.
누가 보면, 밀드레드가 조준을 이상한 곳으로 해서 상황이 점점 꼬이게 만들어 진정한 파국으로 이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속사정이야 어떻든 밀드레드에겐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경찰의 우두머리가 아닌가.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 개의 광고판과 그에 따른 각기 다른 블랙코미디의 양상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은 장인의 솜씨를 감독은 보여주었다. 그 이전에 투철하게 쓴 각본의 힘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과 각본을 마틴 맥도나가 도맡아 했다는 것. <쓰리 빌보드>로 새로운 대가의 출현을 목격했다. 그의 필모를 보니 지난 10년간 3개의 영화에 감독과 각본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더욱 가열찬 활동이 절실하다. 이제 몇 년 뒤에나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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