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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차별과 혐오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사랑과 연대 <셰이프 오브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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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알폰소 쿠아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더불어 멕시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이다. 그는 명성에 비해 많은 영화를 연출하진 않았는데, 대표작 <헬보이> <판의 미로> <퍼시픽 림> 등으로 그만의 공고한 판타지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러면서도 현실과 밀접하게 또는 현실의 이면을 그려내어 비평적으로 많은 찬사와 함께 대중적으로는 마니아층을 공고히 했다. 


그는 2008년 <헬보이 2> 이후 5년 여 동안 연출이 아닌 주로 제작에 전념했는데, 이후 <호빗> 시리즈의 각본을 책임지고는 다시 연출에 살짝 발을 담군 모양새다. 굳이 언급하지 않고 필모만 훑어도 드러나는 그의 천재성은, 이번에 작심하고 제작 원안, 각본 연출을 모두 섭렵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다시 한 번 만개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제74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영예의 황금사자상, 제75회 글든글러브 2관왕을 위시한 수많은 국제 영화제를 휩쓸었다. 그리고 제90회 아카데미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다관왕을 노리고 있다. 최소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이상의 수상이 점쳐진다.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많은 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모두 볼 만한 영화 내지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순 없지만 차고 넘칠 여건은 마련한 셈. 


수많은 것들을 완벽히 다루는 솜씨


수많은 것들을 완벽히 다루는 솜씨.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960년대 중반, 세계를 반으로 가르는 냉전 시대 한복판 미국의 항공우주센터 비밀실험실에서 일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 그녀는 언어장애를 지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를 집에서는 이웃집의 가난한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가, 일터에서는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가 함께 한다. 


어느 날, 비밀실험실로 물고기 형상의 괴생명체가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와 함께 온다. '그것'은 아마존에서 잡아왔는데 원주민들이 신처럼 떠받든다고 한다. 엘라이자는 누구도, 심지어 보안책임자도 함부로 가까이 하지 못하는 그것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점차 사랑을 키워간다. 


그 모습을 보게된 호프스테들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 분)는 그것에게 지능뿐만 아니라 교감과 소통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스트릭랜드는 그 능력들을 높이사 해부하여 러시아와의 우주 전쟁에 이용하려고 한다. 당시 미국은 우주선에 개를 실어 날려서 조롱을 받고 있었다. 이에 엘라이자는 그것을 항공우주센터 비밀실험실에서 탈출시키려 하는데... 과연 성공할까? 성공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냉전시대라는 불통·부교감의 상징, 1960년대 절정의 미국적 낭만, 냉전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미국 항공우주센터의 백인 엘리트와 청소부(언어장애인과 흑인)의 대립, 언어장애인과 괴생명체 간의 사랑, 소외·차별당하는 이들 간의 연대를 복합적으로 다루면서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 드라마는 물론 시대극과 정치극까지 아우르는 광폭 행보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혐오의 시대, 사랑의 모양


혐오의 시대, 사랑의 모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단연 중심은 '사랑'이다. 제목과 부제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랑의 모양'. 사랑은 물과 같다. 그 어떤 모양으로도 변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것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변하는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언어장애를 가진 엘라이자와 괴생명체 그것의 사랑은 일면 판타지적이고 정상처럼 보이지 않지만, 물의 성질을 가진 '사랑' 하에서는 당연하고 일반적인 모양이다. 


영화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낭만어린 재즈풍의 선율, 흑백 TV에서 보이는 1960년대 미국의 대표적 콘텐츠, 뮤지컬스러운 엘라이자와 자일스의 동작, 시각을 지배하는 진한 원색의 집 안팎의 모습들은 엘라이자의 사랑을 암시한다. 그녀의 사랑이 어떤 모양이든 사랑 그 자체를 응원하는 것 같다. 50년 전 낭만의 한 부분이다.


가난한 화가 자일스의 당시로서는 특별한 사랑의 모양도 한 부분이다. 그는 파이집 주인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 파이는 정말 맛이 없지만 엘라이자를 데리고 그곳을 찾는 이유다. 그리고 스트릭랜드가 있다. 그는 두 아들과 예쁜 아내를 둔 엘리트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 하지만 그는 집에서 무표정한 로봇 같다. 아내와 성관계를 가질 때에는 아내 입을 막아버리고 소리조차 내지 않게 한다.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사랑의 모양새가 당대 낭만의 표면과 이면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런 예전 낭만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려내었다. 사랑은커녕 혐오로 물들고 있는 지금 이때에 꼭 필요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차별과 소외의 시대, 연대의 모양


차별과 소외의 시대, 연대의 모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는 소외의 '연대'를 말한다. 여기엔 수많은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언어장애를 지닌 엘라이자, 동성애 성향의 자일스, 흑인 젤다, 러시아 스파이 호프스테들러 박사, 그리고 비인간 괴생명체 그것. 소외된 이들끼리 뭉치는 건 얼핏 당연하고 또 쉬워보이지만 절대 불가능에 가깝다. 소외된 이들끼리 뭉쳐보았자 할 수 있는 건 없다시피 하고, 많은 소외된 이들이 다른 길을 통해 비소외에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래서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의 소외의 연대는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요소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단순히 괴생명체와의 사랑이 판타지적 요소의 전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사랑과 더불어 연대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스트릭랜드라는 백인남성우월주의자, 엘리트주의자의 상징, 공공의적이라는 존재 덕분이다. 그는 냉전이 낳은 정석적 괴물, 오직 연대만이 괴물의 마수를 피할 수 있다. 


여전히 차별이 만연한 차별과 소외의 시대에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출중하다. 사랑이 감성이 낳은 것이라면, 연대는 이성이 낳았다. 감성만으로는 물질적 나아감에 한계가 있고, 이성만으로는 진정한 공감과 협력에 한계가 있다. 사랑과 연대, 감성과 이성의 합이야말로 함께 나아감에 있어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위대한 게 사실 별 게 아니다. 무시하고 지나쳐도 될 것의 성질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우리 주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누구나 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위대한 것이라는 게. 사랑도 연대도 위대하다고 하는 것들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행하고 있거니와 행하고 있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이제 그 둘을 함께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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