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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LA 다운타운의 맨얼굴, 그 날 것의 매력 <탠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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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탠저린>


영화 <탠저린> 포스터. ⓒ미로스페이스



'자유롭게 사고하며 인디영화들을 장려·육성한다'라는 취지로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축이 되어 시작된 '선댄스 영화제'. 선댄스는 다름 아닌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선댄스 키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영화제에는 당연히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 출품되지만, 그중 많은 영화들이 명작 반열에 오르고 많은 감독들이 명감독 반열에 오른다. 


한국에 개봉 3년 만에 상륙한 션 베이커의 <탠저린> 또한 2015년 당시 선댄스가 낳은 핫이슈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곧 개봉할 션 베이커의 역대급 걸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늦으나마 개봉했을 게 분명하지만, 그 때문이 아니라고서라도 이 영화는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작품이다. 


한편, 션 베이커는 많은 선댄스 출신 선배 명감독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탠저린>을 뛰어넘어, 평단을 완벽하게 지배하다시피 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의 차후 필모그래피에 크나큰 족적을 남기며 그로 하여금 대중까지도 사로잡을 진정한 명감독 반열에 오르게끔 할 것이 분명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크리스토퍼 놀란, 마크 웹 등의 선댄스 선배들처럼 말이다. 


LA 다운타운


LA 다운타운. 영화 <탠저린>의 한 장면. ⓒ미로스페이스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 분)와 알렉산드라(마이아 테일러 분)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넛 타임에서 오랜만에 만난다. 신디가 28일 만에 출소했기 때문인데, 그 자리에서 알렉산드라에게서 남자친구이자 포주인 체스터가 '진짜 여자'와 바람을 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신디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 바람 피운 진짜 여자를 찾는다.


신디와 알렉산드라는 LA 다운타운을 주름잡는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들이다. 그들은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벌어 살아가는데, 알렉산드라는 술집에서 공연을 준비하며 홍보를 한다. 신디보다는 건전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트랜스젠더 성매매만을 즐기는 택시운전사 라즈믹의 이야기도 동시에 펼쳐진다. 


신디는 알렉산드라가 말한 D자로 시작하는 그 여자를 찾아 체스터와 대면시키려 하고, 알렉산드라는 그런 일에는 휘말리고 싶지 않고 다만 공연을 하고 싶어 하며, 라즈믹은 돌아온 알렉산드라는 성에 차지 않는지 어떻게든 신디를 찾아 일을 처리하고 싶다. 모든 이들이 도넛 타임에 모인다. 그들은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주변부의 맨얼굴


주변부의 맨얼굴. 영화 <탠저린>의 한 장면. ⓒ미로스페이스



LA 다운타운은 화려한 한편 화사하고 평화로운 외양을 지녔다.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서양'의 동네 말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도로와 집들, 생동감과 아련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신디의 부산한듯 경쾌한 발걸음과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듯한 배경 음악이 한데 어울려 생동감에 불을 지핀다. 


그 생동감은 신디를 통해 LA 다운타운의 맨얼굴, 속살을 파고든다. 그녀가 가는 모든 곳은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대도시 LA의 모습들이다. 하지만 엄연히 그곳도 그 모습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주변부라 칭하지만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건 신디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라나 라즈믹도 마찬가지다. 아니, LA 다운타운도 그렇다. 


션 베이커는 <탠저린> 이전에도 이후에도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 않게 비칠 게 분명한 주변부의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변부를 예쁘게 꾸미고 잘 포장해 중심부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어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곳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럴 때 그곳은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게 될지 모르지만, 중심부의 이면 또는 맨얼굴 정도로 인식될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엄연히 하나의 세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저기가 여기를 업신여길 필요도, 여기가 저리를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날 것의 매력


날 것의 매력. 영화 <탠저린>의 한 장면. ⓒ미로스페이스



영화는 벗겨도 벗겨도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왠만한 배우들이 소화하기 힘들 몸 파는 두 트랜스젠더 역을 길거리 캐스팅으로 완벽히 해결 했고, 내용상 투자 자체가 힘들어 아이폰5S로 모든 촬영을 소화함으로써 오히려 더 생동감 있는 연출을 시행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단호한 거부감이 들게 분명한 캐릭터들이 다양한 종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적을 행했다. 


여기엔 그 어떤 어줍잖은 공감, 위로, 감동, 연민 따위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막장 중에 막장으로 치달을 뿐이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막장인 그들의 인생이 막장 아닌 해피라면 그거야말로 참으로 어설프고 어줍잖게 되지 않겠는가. 그저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이리도 어렵다.


우린 제조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온갖 영양소가 풍부하고 먹기 좋게 포장된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날 것도 분명 필요하다. 그 어떤 것도 첨가되지 않는 순수의 결정체가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탠저린>은 <저수지의 개들> <트레인스포팅> 등이 생각나게 한다. 아니, 그보다 훨씬 조미료를 덜 쳤지만 훨씬 맛있는 날 것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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