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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통과의례'에 해당되는 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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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있게 그려낸 십 대의 처참한 통과의례 <소녀가 소녀에게> 2020.02.03
  •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그리고 제대한 나 <아기와 나> 2017.12.13
  • 고마워요 김경호, 고마워요 오쿠다 히데오 <시골에서 로큰롤>(6) 2015.11.02

공감 있게 그려낸 십 대의 처참한 통과의례 <소녀가 소녀에게>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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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소녀가 소녀에게>


영화 <소녀가 소녀에게> 포스터. ⓒ디오시네마



여고생 미유리, 몇몇 동급생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해 칼로 손목을 그어 죽으려 한다. 그 순간 손목 위에 나타난 누에, 미유리는 깨달은 게 있는지 자살시도를 중단하고 누에에게로 관심을 돌린다. 그녀는 누에에게 츠무기라는 이름을 붙여 함께 한다.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친구 츠무기는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에 의해 버림 받는다. 다시 혼자가 된 미유리 앞에 묘령의 소녀가 나타난다. 


다음 날 학교, 학생 한 명이 전학왔는데 전날 미유리를 도와준 소녀였다. 이름도 신기하게 토미타 츠무기, 미유리가 누에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또다시 괴롭힘을 당하곤 화장실에서 자살시도를 하려다가 나온 미유리는, 복도의 누에 실을 따라 간다. 다다른 곳에서 츠무기가 칼로 손목을 그더니 누에 실을 뽑는 게 아닌가. 놀라 도망친 미유리, 다시 한 번 자살시도를 하는데 뒤따라온 츠무기가 막는다. 


츠무기한테서 위로 받는 미유리, 누에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다음 날 학교, 미유리와 츠무기는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토미타 츠무기가 누에 츠무기의 현신인 듯하다. 그들은 함께 할 것을 맹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츠무기 덕분에 몰라보게 예뻐진 미유리,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둘만 오키나와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한다. 그 이후 츠무기가 조금씩 멀어지는 듯하다. 지각을 자주하고 미유리, 친구들과 조금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츠무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미유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훌륭한 합작품


<소녀가 소녀에게>는 신인 감독 에다 유카와 신인 배우 호시 모에카, 모토라 세리나가 함께 한 일본 독립영화이다. 1994년생으로 이 영화를 제작한 2017년에는 불과 20대 초반의 나이였거니와 두 주연배우는 더 어렸기로서니, 합심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새삼 대단해 보인다. 해외 영화제에서 제법 소개되었고 일본 개봉 직후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월 9일에 개봉하였고 감독이 내한하여 이례적으로 다음 날 10일과 다다음 날 11일에 GV를 가졌다. GV에 따르면, 영화는 에다 유카 감독 본인의 14살 때 체험을 기반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극중 미유리처럼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불안장애의 일종인 선택적 무언증(함구증)에 걸려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에다 유카 감독은 배우로, 사진작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데 <소녀가 소녀에게>에 지대하고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배우가 화면에 어떻게 잡힐지 잘 알고, 조명과 빛 모두를 잘 활용할 수 있었을 테다. 본인의 경험에서 오는 진심 어린 대사와 함께, 영화라는 영상 이미지의 총합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특장점을 잘 살려냈다. 의외로 볼 만한 구석이 많은 영화이다. 


십 대만의 감수성을 세밀하게 표현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영화는 전반적으로 몽환적이되 초반엔 흐리멍텅하고 중반 이후엔 빛이 주는 자연스러운 화려함이 발휘되었다. 미유리가 혼자였을 때의 성격과 외모가 츠무기를 만나 변화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환경도 자연스럽게 변화시켰을 테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 이미지의 압권적 장면이 몇몇 있다. 아무 생각 하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초중반에 집중되어 있는데, 미유리와 츠무기가 함께 하는 순간들이다. 나무와 꽃과 풀이 만연한 곳에서 햇빛 찬란한 순간의 자연광을 있는 그대로 가져와 두 주인공을 함께 돋보이게 한다. 그 순간 그들이야말로 세상과 삶의 주인공이다. 그런가 하면, 내부에서는 독특한 화면분할로 신선함을 자극한다. 여고생의 톡톡함을 강조 아닌 부각시키는 데 만점활약하였다. 


하여, 영화는 세밀하기 그지없다. 십 대만이 가지는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나무랄 데가 없었다. 현실과 꿈과 판타지를 구분하기 힘든 편집으로 이어나가는 방법론이 빛을 발했다. 비록 개봉하는 데 의의가 있을 정도겠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도 개봉할 수 있었던 건 십 대만의 감수성이 일본에만 통용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하겠다. 누구나 한 번쯤 거쳤을 십 대의 통과의례를 이 영화가 공감 있게 그려낸 것이다. 


빈 껍데기만 남은 누에, 그리고 학생


<소녀가 소녀에게>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누에'의 존재이다. 인간을 위해 실을 뽑아내는 데에만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누에, 대부분 누에고치 속에서 산 채로 삶아 죽임을 당한다. 혹시라도 살게 되어 나방이 되어도 팔과 다리에 근육이 없어 날지 못하며 통각이 없기 때문에 이틀 만에 죽고 만다. 아프지도 무섭지도 괴롭지도 않은 무통각의 생명체, 미유리와 츠무기가 동경하는 대상이자 모든 인간이 동경하는 대상일 테다.


극중에서 누에는 츠무기로 현신한 존재로 표현되지만, 미유리와 츠무기라는 여고생 나아가 아직 세상에 나가지 못한 모든 십 대들을 상징한다. 츠무기는 말한다. 우리들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일 뿐,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학창시절에서 역시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걸 할 수도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라는 말일 것이다. 통곡의 누에(학창) 시절을 지나 나방(어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 더욱 뼈아프다. 


죽음까지 각오한 미유리가 사실은 너무나도 살고 싶어했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다. 그녀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춘기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로 많은 경험을 하며 어른이 된다며 누구나 있는 마음의 병을 받아들이라고 말할 뿐이고 엄마는 집 근처나 통학 가능한 대학에 가는 게 좋겠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다. 오로지 츠무기만이 그녀를 알아주었고 그녀의 진심을 끌어냈으며 그녀 곁에 있었다. 츠무기라는 소녀는 미유리라는 소녀에겐 삶의 모든 것이었을 테다. 반면, 미유리는 츠무기에게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 슬픈 내막을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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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누에, 빈 껍데기, 소녀가 소녀에게, 십 대, 에다 유카, 일본영화, 통과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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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그리고 제대한 나 <아기와 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2.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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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기와 나>


이제 갓 제대한 도일 앞에 있는 건 아기 예준, 그리고 아내가 될 순영. 갑자기 순영이 사라졌다? ⓒCGV아트하우스



군대 전역을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온 도일, 엄마와 아내가 될 순영과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아기 예준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고아 출신인 순영이 엄마와 모녀지간처럼 지내는 건 좋은데, 합세해서 날라오는 잔소리는 듣기 힘들다. 도일은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가장인 것이다. 


엄마와 순영이 일을 나간 사이 예준이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예준이의 혈액형이 자신과 순영 사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일은 이 사실을 순영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하지만, 운은 뗀다. 다음날 갑자기 순영이 사라졌다. 전화도 안 되는 건 물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까지 모른댄다. 


아는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 예준이를 하루이틀씩 맡기고 도일은 순영을 찾아 삼만리를 감행한다. 순영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게 되고, 마음은 조금씩 차가워진다. 예준이를 보는 스킬은 늘어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이대로 계속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도 한다. 도일은 순영이를 찾을 수 있을까? 예준이는?


아기를 통해 성장해가는 나


세상에 갓 나온 아기, 역시 세상에 갓 나온 얼마전까지 군인이었던 나. 이 조합은? ⓒCGV아트하우스



영화 <아기와 나>는 단편영화계에서 인정 받은 손태겸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엄마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그리고 역시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조합이 의미심장하고 또 자못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10여 년 전쯤 나온 장근석 주연의 아기와의 명량동거를 다룬 영화 <아기와 나>, 20여 년 전쯤 나온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이 아기인 동생을 돌보며 일어나는 그린 애니메이션 <아기와 나>가 자연스레 생각나기에, 말 그대로 세상에 아기와 나뿐만 남은 암울한 와중에 현실을 헤쳐나가는 코믹&드라마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화는 아기와 '함께'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기보다 아기를 '통해'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이제 갓 군대를 전역한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을 자신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 아니, 그건 엄혹한 게 아니다. 세상에 나온 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지만, 그 이후부턴 수많은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현실은 그 선택과 결과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최악의 상황,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한 결혼, 출산, 육아의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 ⓒCGV아트하우스



영화의 포커스는, 감독의 시선은 도일에게로 맞춰져 있다. 특히 제목과 조금 맞지 않는듯한, 그래서 으레 그러려니 했던 식상한 기대와는 달리, 도일이 사라진 순영을 찾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물론 그 사이에, 그 와중에 예준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결국 도일은 예준이를 택하게 될 거라는 결말이 눈에 선하고 말이다. 


흔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직접 길러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까. 그만큼 결혼과 출산과 육아가 인간에게 가장 무게감 있게 다가오고 가장 막중한 부담감으로 짓눌려 오거니와 가장 처절하게 힘든 순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어른이 되는 방법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영화는 그 힘든 통과의례를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어른아이 한 명이 어떻게 헤처나갈 것인지 함께 기대하고 절망하고 응원하고 답답해 하며 보여준다. 확실한 감정이입을 선사하는 동시에, 절대 주인공처럼은 되기 싫거니와 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선사한다. 


아기가 없더라도 살아가기 힘든 막막한 현실, 앞날이 창창한 청춘이기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이기에 무섭지 않은 게 없기도 하다. 그 옆에 아기란 차라리 판타지의 영역이다. 자신을 버리고 아기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진정 아기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손에서 떠나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또다른 냉혹한 현실 앞에서 치를 떨며 무릎을 꿇는다.


수작은 아닐지언정 기대감은 들게 한다


기대감을 들게 하는 게 수작이라고 인정받는 것보다 좋을지도? ⓒCGV아트하우스



저예산 독립영화 중에 유난히 수작이라고 평가맞는 것들이 많다. 지극히 감각적이고 시대와 소통하는 작가와 연출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일 테다. <아기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길이남을 수작, 한 해 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수작 독립영화라 말할 순 없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감독이나 배우들에게 기대감을 들게 한다. 수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이 길이남을 명작 한 작품만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반해, 이들은 앞으로도 자주 또는 종종 모습을 드러내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것 같은 기대를 주는 것이다. 그런 기대감을 가장 확실하게 심어준 장면이 마지막 장면인데, 그 프로페셔널한 롱테이크가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 길이남을 큰일로 세상을 이제 막 경험한 이들의 마지막 장면은, 그 뒤에 이어질 수없이 많은 질곡들을 암시한다.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큰일을 저질렀고 누군가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간신히 저지할 수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엄청난 압박이었는데, 실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배운 게 많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간다. 겪고 겪고 또 겪으면서. 그 와중에 뭐라도 얻으면 좋으련만 대부분 남는 건 상처 뿐이다. 그래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건, 그 자체가 성장의 일면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수작(秀作)이 아니라도 좋다. 이 영화는 나에게 손수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해보지 못할 경험을 건네준 수작(手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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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성장, 아기와 나, 청춘, 통과의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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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김경호, 고마워요 오쿠다 히데오 <시골에서 로큰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11.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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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골에서 로큰롤>


<시골에서 로큰롤> 표지 ⓒ은행나무


학창 시절, 겉으로는 한없이 조용해 보였던 나는 속으로는 사실 굉장히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시험 때 반짝 공부를 해서 점수가 곧잘 나오곤 했는데, 그게 다 우리 '김경호' 형님 덕분이었다. 누구보다 시끄러운 내면을 간직한 나였기에, 시험 공부도 시끄러운 환경에서만 가능했다. 심지어 오락실에서도 시험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완벽한 소음 안에서만 완벽한 고요를 느낄 수 있었던 걸까. 지금은 많이 무뎌졌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시험 공부를 할 때면 어김 없이 김경호 형님을 찾았다. 그의 노래가 아니면 절대 시험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설령 했다고 해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10여년 간 내 시험의 수호신이었다. 


시끄러운 음악이나 김경호나 생각나는 건 '록'이다. 물론 '시끄러운 음악=록'의 명제는 굉장히 편협된 생각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나도 이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록은 나에게 시끄러운 음악이다.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시끄러운 음악. 새삼스레 고마움을 전한다. 그때 그 시절, 힘든 시험 공부 시간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록과 김경호 형님. 고마워요, 김경호. 


한편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음악을 대할 때도 역사적으로 대했다. 서양 클래식을 대할 때면 어김 없이 바흐, 헨델, 비발디,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등 역사적인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곤 했다. 록도 마찬가지다. 비틀스, 롤링스톤스, 더 후,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퀸 등등. 이 역시도 역사적인 밴드 또는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업적을 찬양했다. 특히 장르적으로 굉장히 협소하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마니아가 될 수 없었을지도. 


그렇게 나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록을 일본의 인기 작가이자 최고의 이야기꾼 오쿠다 히데오는 엄청나게 알고 있다. 그 결과물이 <시골에서 로큰롤>(은행나무)이라는 책인데, 1959년 생인 그(오쿠다 소년)의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의 록 마니아 시절을 다룬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그야말로 록의 전성기 중의 전성기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중 비틀스를 제외한 모두가 이 시대에 활동했다. 록의 전설 중의 전설들이 동시에 활동한 시대인 것이다. 


오쿠다 소년의 학창 시절은 정확히 록의 전성기와 겹친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그의 록 마니아 시절도 정확하게 겹친다. 나의 학창 시절(주요 시험 공부 시간)=김경호인 것처럼, 오쿠다 소년의 학창 시절=록 마니아 시절인 것이다. 그는 대도시도, 그냥 도시도 아닌 시골에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자랐다고 한다. 시골 사람이라 무던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지극히 반체제적이었던 그가 록에 빠지게 된 건 인지상정.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체제와는 반대편에 서고 싶다. 소수파로 있고 싶다. 모두가 오른쪽을 보고 있을 때 나만은 왼쪽을 보고 싶다." (본문 중에서)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던 오쿠다 소년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곤두박칠 친다. 비행 청소년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록에도 점점 빠져들었는데, 바로 이 록이 그의 위태위태한 학창 시절을 그나마 버티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확실하게 말하는데, 록 덕분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의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분위기가 다름 아닌 '록 스피릿'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오쿠다 소년의 록 마니아 시절은 여느 록 마니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라디오, LP, 앨범, 잡지, 공연에 있는 돈과 시간과 열정 그리고 없는 돈을 모조리 끌어 모아 열중했고 충성했다. 다만 그의 록 스타일은 눈에 띄게 바뀌었는데, 그야말로 록 장르의 거의 모든 걸 섭렵했다. 그 전에는 팝송, 아이돌에 매진한 적도 있고.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청춘이라면 누구나 지나갈 그리고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다. 


사실 난 그런 통과의례를 지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청춘을 다 바쳐 무엇에 열중해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청춘 만이 할 수 있을 텐데. 청춘이 완전히 가버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실에 굳건히 발 붙여야 할 시기에 이미 와 버렸기에 아쉽다. 그런 면에서 <시골에서 로큰롤>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함과 감성을 느끼며 힐링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쿠다 소년에게 고마웠다. 그 시절을 복원해준 오쿠다 히데오에게도 고마웠고. 지금에라도 청춘의 통과의례를 경험했으니까. 물론 소설이나 영화로 수많은 청춘들의 통과의례를 대신 경험했었다. 하지만 청춘은 영원한 것처럼 그들의 통과의례 경험이 주는 카타르시스 또한 영원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온 직후에 학부모 면담이 있었는데, 담임선생이 "오쿠다는 장래 뭐가 되고 싶지?"하고 물었다. 나는 록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지식이 부족해 어떤 직업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설명하기도 귀찮고, 옆에 어머니가 있기도 하고 해서 '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때 담임선생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야 오쿠다. 좀 더 뜻을 크게 품지 그러냐?

지금 같으면 웃음을 터뜨렸을 장면이다. 어른들이 이따금 보이는 인간미를 조금씩 접하는 것 또한 중학교 3학년인지도 모르겠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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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김경호, 록스타, 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청춘, 통과의례
  • BlogIcon 空空(공공)
    2015.11.02 09:44 신고

    저는 포크송,칸트리 음악,발라드를 좋아합니다 ㅎㅎ

    • BlogIcon singenv
      2015.11.08 16:19 신고

      흠, 저도 음악 취향 폭을 좀 넓혀야 하는데 말이에요~

  • BlogIcon 조아하자
    2015.11.03 00:51 신고

    제가 좋아하는 가수님도 김경호씨 노래 꽤 잘 부르더군요... 그런 노래 들으면 멋있음...

    • BlogIcon singenv
      2015.11.08 16:19 신고

      ㅎㅎㅎ

  • BlogIcon 에디모라
    2015.11.03 09:45 신고

    이 포스팅을 읽으면서 저는 재즈를 동경했지만 힙합에 빠졌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 ^^

    고맙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1.08 16:22 신고

      저도 그렇게 하나에 완전히 빠졌던 시절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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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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