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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에게 교도소는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통과의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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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예언자>

 

영화 <예언자> 포스터. ⓒ판씨네마

 

10대 때 기억이라곤 소년원을 들락거린 기억밖에 없는 19살 말리크는 성인이 되자마자 6년 형을 받아 감옥에 갇힌다. 아랍계 프랑스인, 부모님은커녕 영치금 넣어줄 사람도 없는 외톨이,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로 모르는 문맹, 할 줄 아는 거라곤 도둑질뿐. 그런 말리크에게 교도소 내 절대 강자 세자르가 접근한다. 그는 코르시카 범죄조직의 두목이다.

세자르는 이감해 온 아랍인 레예브를 죽여야 했는데 연루될 수 없으니 대행자를 찾는다. 그게 말리크다. 말리크는 저항하지만 굴복하고 결국 살인을 실행에 옮긴다. 이후부터 세자르 조직이 그의 뒤를 봐주며 그에게 말과 글도 가르치는 한편 교도소 안의 생리를 알려주고 외출을 시켜 교도소 밖에서 심부름도 시킨다. 한편 말리크에게 종종 레예브의 환영이 찾아온다.

말리크는 시간이 지나며 눈에 띄게 능숙해진 느낌이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어떤 표정과 자세로 있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젠 뭘 하고 있고 뭘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세자르는 말리크를 얽매려 하는 반면 말리크는 혼자만의 사업을 하려 하는데…

 

교도소에 던져진 현존재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가 개봉 15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했다. 아무래도 파격과 혁신 사이를 오가며 많은 이를 충격에 빠트린 문제작 <에밀리아 페레즈>의 개봉과 관심에 이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자타공인 최고작을 다시금 우리 앞에 불러온 것이리라. 그의 스타일이 정립된 작품이기도 하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하길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현존재라고 했다.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세상에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마르틴이 그랬다. 정신 차려 보니 성인 그리고 교도소. 그가 해야 할 일, 하게 될 일은 세상 모든 이가 하는 일과 동일하다. 교도소 안이라고 다를 게 없다.

개별성과 고유성을 인지한 채 실존하고자 노력한다. 생존뿐만 아니라 내가 나이기 위해 생각과 행동하는 것이다. 나아가 내가 왜 존재하고 어떻게 존재할 건지 고민한다. 그리고 자신,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 관계의 도구까지 염려한다. 나와 상대와 세계를 고민하는 걸 멈추지 않는 것이다.

 

성장, 차별, 범죄의 연쇄화까지

 

영화는 말리크의 성장을 중점으로 다루는 한편 이민자 차별 문제, 교도소 안팎으로 이어지는 범죄의 연쇄화 등을 다룬다. 특히 코르시카인과 아랍인 사이의 반목이 심한데, 코르시카인은 과거 아랍의 지배를 받았던 한편 프랑스에서 분리되려 하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지역에서 온 아랍인은 프랑스에서 인정받길 원한다.

그런가 하면 교화가 목적인 교도소가 시행하는 교육과 인권 의식 함양의 이면이 엿보인다. 교도관 위에 군림하는 절대 세력이 사실상 교도소 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가운데 교도소 밖까지 영향력을 끼치니 범죄가 교도소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교도소라는 게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곳인가?

그런 면에서 말리크는 교도소가 갖는 모든 면을 아주 잘 이용한 경우다. 비록 교화되진 못했을 망정 교육을 받고 교정을 받았다. 하여 삶의 기본을 깨우쳤고 생존 기술을 터득했으며 정치의 참맛까지 맛봤다. 그 모든 걸 교도소에서 습득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말리크가 던져진 세계는 교도소였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금의 내가 나일 수 있게끔

 

말리크에게 세자르는 아버지였을까.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장본인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존재. 말리크에게 레예브는 통과의례였을까. 나의 디테일을 결정하지만 때론 너무나도 아픈 첫 경험이라 두고두고 찾아오니 말이다. 말리크에게 리야드는 스승이었을까. 그에게 말과 글을 가르쳐 주며 삶의 기본을 깨우치게 했으니까.

말리크는 교도소에서 아버지와 스승을 만나고 통과의례를 겪었다. 누군들 태어나 한 번쯤 겪어야 하지만 못하기도 하니, 말리크가 바로 그런 경우라 교도소에서나마 겪어야 했다. 세상이 그래도 작동을 하고 있다는 표시일까, 세상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시일까. 앞엣것은 말리크의 입장에서 볼 때, 뒤엣것은 거시적으로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내가 나일 수 있게끔 무엇이 또 누가 영향을 줬을지 말이다. 사람 자체가 영향을 준 경우, 사람은 수단이 되어 말과 행동이 임팩트를 준 경우, 한 사람의 모든 게 속속들이 살과 뼈가 된 경우 등 수많은 이가 크고 작은 영향을 줬을 테다. 그렇게 사람은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물론 그 영향들을 갈무리해 내 것으로 만들어 적재적소에 써먹는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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