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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40대 네 친구의 녹록치 않은 삶, '그래도 괜찮아' <클래스메이트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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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클래스메이트 마이너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클래스메이트 마이너스> 포스터. ⓒ넷플릭스

 

2017년 대만 최고의 영화로 명성을 드높인 <대불+>,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얼굴을 비췄는데 큰 관심을 얻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만 현지에선 가히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제54회 금마장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한 바 있다. 황 신 야오 감독의 데뷔작이었는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토론토영화제를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얼굴을 비췄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황 감독은 <대불+>에서 직접 영화 속으로 뛰어들어 내레이션을 맡아 '전지적 작가(감독) 시점' 혹은 '1인칭 관찰자적 시점'의 특이하고도 특별한 연출 스타일을 선보인 바 있는데, 두 번째 영화 <클래스메이트 마이너스>에서도 이어간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지난 2월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었다. 최근 연이어 소개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표 대만 영화의 연장선상으로, 대만 영화가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에 통한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제57회 금마장에서 무려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관객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를 함께 만든 이들의 면면이 화려한데, <나의 소녀시대> 등을 제작한 예루펀 프로듀서가 제작을 맡았고 <아호, 나의 아들>로 유명한 청몽홍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와 촬영 감독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대만의 현실을 중년의 위기에 처한 40대 남성들의 별것 아닌 이야기로 보여 주려 했다고 하는데, 새삼 대만의 관객들이 대단한 것 같다. 이토록 다양한 영화들에 이토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다니 말이다. 

 

40대 네 친구의 좌충우돌

 

어느덧 40대 나이에 접어든 네 친구, 주기적으로 '라오충 버블티' 집에서 모여 카드 게임을 하며 근황을 전한다.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현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약 광고를 찍고 있는 밍톈, 일은 기똥차게 하지만 매번 승진에서 누락되고 마는 뎬펑,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사채까지 끌어다 쓴 깡통, 장례식용 종이집을 만들며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고구마. 그들의 삶이 조금씩 흔들린다. 

 

밍톈은 시장의 시정 광고를 찍다가 현 의원의 계략에 따라 얼떨결에 정계에 입문해 선거를 치르게 된다. 한순간에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그는 앞날을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까. 뎬펑은 24시간 만화방에서 불면증을 달래다가 같은 처지에 있던 여인을 만나 하룻밤새에 아이를 만들게 된다. 곧 결혼하는 그들, 하지만 뎬펑은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기에 앞날이 그저 막막할 뿐이다. 

 

깡통은 밍톈의 추천으로 동사무소 말단 직원이 된다. 호구조사를 하게 된 그는, 우연히 학창시절 짝사랑이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퀸카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는 불법 안마 시술소를 차려 일하고 있었다. 그의 앞날에 그녀는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 말을 심하게 더듬고 아픈 할머니까지 모시며 장례 관련된 일을 하는 고구마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의 말더듬을 알아 채고 또 그의 사정을 이해하는 여인을 만나 함께 살게 된다. 그의 앞날이 비로소 빛나는 걸까. 

 

블랙 코미디로 그린, 녹록치 않은 소시민의 삶

 

영화 <클래스메이트 마이너스>는 대만의 평범하기 그지 없는 40대 남자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애환'이라고 하면 슬픔과 기쁨을 아우르는 말이어서, 기쁨을 찾기가 정말 힘든 이 영화를 설명하기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에 내리막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르막만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기에 적합할 단어인 것 같다. 지금 40대는 예전 40대와 달라서 어리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게 많지 않은가.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 말이다. 

 

네 친구 모두 놀고 있지 않다, 꿈을 이루고자 돈을 벌고자 좋아하는 걸 하고자 살아가고자 열심히 일에 매진한다. 그렇지만, 꿈은 저멀리에서 도무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벌어놓은 돈은 없으며 좋아하는 걸 하는 대신 이룬 게 없고 살아가고자 할 뿐인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절망하고 좌절하며, 푸념이 늘어가고 포기하게 된다. 그렇지만 죽지 않으려면 살아갈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영화는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을 제외하곤 영화적으로 특이할 만한 구석을 찾아 보기 힘들다. 특출난 캐릭터도 없고, 극적인 사건도 없다. 성공인보다 실패자에 가까운 네 친구들이, 선거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되고 여자친구를 사귀며 첫사랑과 재회한다. 실패한 영화감독에서 정계에 입문한 밍톈 정도가 특이한데, 그조차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장기말이 된 것이라 극적일진 몰라도 여전히 성공보다 실패에 가깝다 하겠다. 녹록치 않은 소시민의 일생을 영화로 그려낸다면 딱 이렇게 그려야겠다 싶을 정도로 와닿는다. 

 

더불어 블랙 코미디 장르에 가까운 드라마이다 보니,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그야말로 소시민의 일생에 가닿아 자조하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이다. 뎬펑의 결혼식에 밍톈이 관계자들을 대거 데리고 와 마치 선거 출정식을 하듯 대대적으로 자기소개와 비전을 말하며 투표를 읍소하는 장면이 백미이고, 뎬펑이 혼자 있을 때 화면 밖 감독과 대화하며 읊조리는 자조섞인 대사들이 뼈를 때린다. 

 

'잘살고 있어, 괜찮아, 나쁘지 않아'라는 위로

 

"내가 결혼을 했네, 애도 있고. 가진 건 몸뚱어리뿐이야. 아전은 좋은 여자야. 도대체 내 어디가 좋았는지 몰라. 난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집 한 칸 마련해서, 작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며 주차 자리도 있으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 내가 아전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난 인생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 공부 열심히 하고 취업해서 사랑하는 사람 만나 결혼하고... 나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데 잘되는 일이 없냐."

 

극중에서 화면 밖 감독과 대화하는 뎬평의 말이 와닿는다.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기도 한데, 결혼과 아이라는 기쁨과 설렘과 기대감보다 훨씬 앞서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걱정과 초조함 등이 그대로 전해진다. 삶의 중간의 시작점인 40대에 이르러 몸과 마음을 지나 뼛속 깊이까지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일까, '누군가만' 거치는 통과의례일까. 영화는 보편적인 통과의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든 제목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클래스메이트', 즉 같은 반 친구. '마이너스', 극중에서 깡통이 30년 동안 짝사랑했던 학창 시절 퀸카의 별명이다. 영화는 인생이 그렇다고, 학창 시절 퀸카도 불법 마사지사가 될 수도 있다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도 최선을 다해 살아와서 그 자리에 있고 계속 잘살아 보려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다. 역변한 그녀의 인생을 두고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거니와 동정하며 눈물 흘릴 수 없다. 

 

아무래도 황 신 야오 감독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빗대서 만든 듯한 이야기, 공감이 갔다. 나만 이런 생각을 갖고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아닌 대만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보편적 위로까지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조언을 얻기보다 지금 잘살고 있어, 괜찮아, 나쁘지 않아 하는 소소한 말을 전해 듣고 싶다. 이 영화가 그 역할을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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