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골에서 로큰롤>
<시골에서 로큰롤> 표지 ⓒ은행나무
학창 시절, 겉으로는 한없이 조용해 보였던 나는 속으로는 사실 굉장히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시험 때 반짝 공부를 해서 점수가 곧잘 나오곤 했는데, 그게 다 우리 '김경호' 형님 덕분이었다. 누구보다 시끄러운 내면을 간직한 나였기에, 시험 공부도 시끄러운 환경에서만 가능했다. 심지어 오락실에서도 시험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완벽한 소음 안에서만 완벽한 고요를 느낄 수 있었던 걸까. 지금은 많이 무뎌졌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시험 공부를 할 때면 어김 없이 김경호 형님을 찾았다. 그의 노래가 아니면 절대 시험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설령 했다고 해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10여년 간 내 시험의 수호신이었다.
시끄러운 음악이나 김경호나 생각나는 건 '록'이다. 물론 '시끄러운 음악=록'의 명제는 굉장히 편협된 생각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나도 이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록은 나에게 시끄러운 음악이다.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시끄러운 음악. 새삼스레 고마움을 전한다. 그때 그 시절, 힘든 시험 공부 시간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록과 김경호 형님. 고마워요, 김경호.
한편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음악을 대할 때도 역사적으로 대했다. 서양 클래식을 대할 때면 어김 없이 바흐, 헨델, 비발디,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등 역사적인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곤 했다. 록도 마찬가지다. 비틀스, 롤링스톤스, 더 후,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퀸 등등. 이 역시도 역사적인 밴드 또는 인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며 업적을 찬양했다. 특히 장르적으로 굉장히 협소하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마니아가 될 수 없었을지도.
그렇게 나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록을 일본의 인기 작가이자 최고의 이야기꾼 오쿠다 히데오는 엄청나게 알고 있다. 그 결과물이 <시골에서 로큰롤>(은행나무)이라는 책인데, 1959년 생인 그(오쿠다 소년)의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의 록 마니아 시절을 다룬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그야말로 록의 전성기 중의 전성기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중 비틀스를 제외한 모두가 이 시대에 활동했다. 록의 전설 중의 전설들이 동시에 활동한 시대인 것이다.
오쿠다 소년의 학창 시절은 정확히 록의 전성기와 겹친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그의 록 마니아 시절도 정확하게 겹친다. 나의 학창 시절(주요 시험 공부 시간)=김경호인 것처럼, 오쿠다 소년의 학창 시절=록 마니아 시절인 것이다. 그는 대도시도, 그냥 도시도 아닌 시골에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자랐다고 한다. 시골 사람이라 무던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지극히 반체제적이었던 그가 록에 빠지게 된 건 인지상정.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남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체제와는 반대편에 서고 싶다. 소수파로 있고 싶다. 모두가 오른쪽을 보고 있을 때 나만은 왼쪽을 보고 싶다." (본문 중에서)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던 오쿠다 소년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성적이 곤두박칠 친다. 비행 청소년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록에도 점점 빠져들었는데, 바로 이 록이 그의 위태위태한 학창 시절을 그나마 버티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확실하게 말하는데, 록 덕분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의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분위기가 다름 아닌 '록 스피릿'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오쿠다 소년의 록 마니아 시절은 여느 록 마니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라디오, LP, 앨범, 잡지, 공연에 있는 돈과 시간과 열정 그리고 없는 돈을 모조리 끌어 모아 열중했고 충성했다. 다만 그의 록 스타일은 눈에 띄게 바뀌었는데, 그야말로 록 장르의 거의 모든 걸 섭렵했다. 그 전에는 팝송, 아이돌에 매진한 적도 있고.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청춘이라면 누구나 지나갈 그리고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다.
사실 난 그런 통과의례를 지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청춘을 다 바쳐 무엇에 열중해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다. 오로지 청춘 만이 할 수 있을 텐데. 청춘이 완전히 가버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실에 굳건히 발 붙여야 할 시기에 이미 와 버렸기에 아쉽다. 그런 면에서 <시골에서 로큰롤>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함과 감성을 느끼며 힐링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쿠다 소년에게 고마웠다. 그 시절을 복원해준 오쿠다 히데오에게도 고마웠고. 지금에라도 청춘의 통과의례를 경험했으니까. 물론 소설이나 영화로 수많은 청춘들의 통과의례를 대신 경험했었다. 하지만 청춘은 영원한 것처럼 그들의 통과의례 경험이 주는 카타르시스 또한 영원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온 직후에 학부모 면담이 있었는데, 담임선생이 "오쿠다는 장래 뭐가 되고 싶지?"하고 물었다. 나는 록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지식이 부족해 어떤 직업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설명하기도 귀찮고, 옆에 어머니가 있기도 하고 해서 '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때 담임선생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야 오쿠다. 좀 더 뜻을 크게 품지 그러냐?
지금 같으면 웃음을 터뜨렸을 장면이다. 어른들이 이따금 보이는 인간미를 조금씩 접하는 것 또한 중학교 3학년인지도 모르겠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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