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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치유'에 해당되는 글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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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로 생을 마친 가족의 추모와 치유를 위한 여정 <이블린> 2019.09.17
  • 인생을 올바르고 건강하게 바꾸는 '치유' 프로그램 <돈 워리> 2019.08.02
  • 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하는 러브 스토리 <먼 훗날 우리>(1) 2019.01.14
  •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 하지만 끔찍한 현실 <툴리> 2018.11.23
  • 이토록 성스럽고 황홀하고 지적인 섹스란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2017.06.16
  •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회복하는 인간>(1) 2016.05.27
  • <일상의 인문학> 인문학은 어디 가서 배울 수 있을까요?(7) 2014.03.05

자살로 생을 마친 가족의 추모와 치유를 위한 여정 <이블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9.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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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이블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이블린> ⓒ넷플릭스



단편 다큐멘터리 <화이트 헬맷: 시리아 민방위대>로 2017 아카데미 단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올랜도 폰 아인지델 감독,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그동안 자신을 밀어붙이며 분쟁 지역에서 작업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그런 그도 차마 꺼내지 못한 주제가 동생 이블린이다. 이블린은 13년 전(영화를 제작한 2018년 기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올랜도는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고통인 그 이름 이블린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혼자, 지인, 가족들과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곤 일절 피했다고 한다. 걷는 걸 좋아했던 이블린, 올랜도는 동생들 그웨니와 로빈 그리고 다른 가족들, 지인들과 걸으면서 그동안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보기로 한다. 그동안 일절 피하고, 피하지 못했을 때도 경계를 넘진 못했던 이블린 이야기와 진실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이블린>은 올랜도 폰 아인지델 감독이 주연으로도 출연해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전에 죽은 동생 이블린이라는 산을 넘고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작품은 시작과 동시에 주요 소재와 주제와 내용을 모두 밝히며 관객으로 하여금 최대한 빨리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하였다. 하여 감정을 이입해 그들과 함께 여정을 떠나는 듯할 것이다. 


엄마와 함께


이블린의 생일이었던 날 시작된 5주 동안의 영국 횡단, 그 중심엔 첫째 올랜도와 셋째 그웨니와 넷째 로빈 그리고 둘째 이블린이 있다. 그들은 걷는 걸 좋아했던 이블린 살아생전 함께 갔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 여정은 스코틀랜드에서 엄마 베타와 함께 시작된다. 베타는 80년대 후반부터 혼자 아이 넷을 키웠다고 한다. 나름 열심히 키웠지만, 이블린이 조현병이라는 판명을 받고 자살하게 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힘들었을 그녀와 가장 먼저 여정을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 


베타는 이블린이 죽은 날로 돌아간다. 그동안 입밖으로 꺼내기는 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그때 그곳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 작품이 들여다보려는 원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의 이야기라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태풍의 눈은 고요한 것처럼, 오히려 두려움의 중심엔 두려움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듣기만 편하지 않다. 애써 담담한 듯 말하는 엄마의 이야기에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다. 과연 진실을 마주하면 치유가 되는 것인가. 


아빠와 함께


엄마와의 종주를 끝마친 삼 남매는 아빠 안드레아스와 그의 부인 조안나를 만난다. 이블린을 포함해 사 남매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지 않게 된 아빠와 이블린을 추모하는 여정을 떠나는 게 그리 어울려 보이진 않는다. 그들과 그의 기억은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이블린을 추억하면서 서로를 향한 거리를 확인하고 좁히려 노력한다. 공통의 누군가를 추억하는 건, 그때를 함께 한 사람과 장소와 시간을 되새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오직 그를 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빠 안드레아스도 엄마 베타처럼 이블린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을 탓한다. 그러며 역시 이블린이 죽은 날로 돌아간다. 삼 남매로선 한없이 가슴 미어지고 무너지는 이야기를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첫째 올랜도는 피해왔던 이야기, 셋째 그웨니는 피하고 싶지만 맴돌았던 이야기, 넷째 로빈은 알고 싶던 이야기, 보았던 모두와 듣고 있는 모두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 정신병이라는 낙인과 싸우기 위해 계속 얘기를 해야 하고, 자살과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계속 얘기해야 한다. 궁극적 치유를 위해서, 아니 조금씩 나아가기 위해서. 


지인들과 함께


가족들과의 종주 이후 삼 남매는 잉글랜드에서 지인들과 만난다. 그들은 이블린 생전 단짝 친구들로 삼 남매와도 친하다. 그들이야말로 가족들로선 알기 힘들 수 있는 이블린의 진짜 모습을 잘 알고 봐왔던 이들일 것이다. 정작 그들은 이블린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자신들이 정작 이블린의 중요한 무엇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역시 자신들을 책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의 죽음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가족들 모두 자유롭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는 것처럼 그들 또한 그래야 한다. 기억하고 추억하고 얘기하며 살아가야 한다. 


시선은 점점 올랜도를 향한다. 가족들에게 질문하고 얘기를 듣고 울음을 받아주기만 한 올랜도는, 정작 자신의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걸 정확하게 간파한 지인 레온은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받아들이곤 내보이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아프다는 걸 잘 알지만 말이다. 내가 아닌 이블린을 위한 길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제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때를 생각하고 그를 추억하고 직접 얘기해야 한다. 


다시 스코틀랜드 그리고 다시 잉글랜드. 삼 남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삼 남매끼리의 시간을 갖는다. 여정의 마지막은 그들 스스로 얘기하는 시간이다. 비로소 깨달은 게 아닐까. 다른 이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기대어 치유를 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본인의 치유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되 결국엔 본인이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모와 치유의 여정


삼 남매의 여정은 추모와 치유의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치유'가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웨니는 말한다, 이블린이 여전히 머리에서 맴돌아 떠나지 않는다고. 고통이나 상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로빈은 말한다, 이블린의 인생과 힘들었던 기억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서 고통이 덜하진 않는다고. 하지만 이블린에 대해 생각하거나 얘기하는 건 쉬워진다고. 


그들의 여정에 가족들과 지인들만 함께 했던 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죽음'을 관통하고 함께하며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누군가를 생각하고 얘기하며 더불어 이블린을 생각하고 얘기한다. 이 여정 이전까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아예 지워버렸던 것들을.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기억이 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생각하고 얘기하면 고통만이 함께 온몸을 사로잡을 그 기억들. 하지만, 어느 대화를 통해 그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 사례가 있다. 고통스럽기 그지 없지만 그때 그곳으로 몇 번이고 돌아가 그 사람 혹은 그 상황을 계속해서 정면으로 맞대면하는 것. 이왕이면 누군가와 함께. 제3자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이라면 좋다. 


죽음을 대하는 데 있어 진정한 치유는 없을지 모른다. 치유를 바라는 게 사치일지 모른다. 남은 사람에겐 나를 향한 치유의 권리가 아닌 그(들)를 향한 기억의 의무만이 있을지 모른다. 정답은 없지만, 오히려 기억 자체가 치유로 치환될지 모르겠다. 기억의 고통이 공허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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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넷플릭스 오리지널, 여정, 올랜도 폰 아인지델, 이블린, 자살, 죽음, 추모,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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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올바르고 건강하게 바꾸는 '치유' 프로그램 <돈 워리>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8. 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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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돈 워리>

 

 

영화 <돈 워리>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미국 포틀랜드의 유명 만화가 존 캘러핸(호아킨 피닉스 분), 휠체어에 앉은 채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히 충격적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걸은 날은 전날 마신 술로 잔뜩 취한 상태였기에 숙취 없이 잠에서 깼다는 것이다. 곧 그는 술을 찾아 마시고 계속 술을 찾아 헤맨다. 밤에는 파티에 가서 '언니'들이랑 놀았는데, 덱스터(잭 블랙 분)가 와서 훨씬 좋은 파티에 가자고 한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놀고는 계속 차를 타고 이동했다. 술을 진탕 마셨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고 밤새 놀았으니 졸렸을 것이다. 덱스터가 운전할 때 가로등을 들이박는다.

 

이 사고로 운전자 덱스터는 가벼운 찰과상 정도로 끝나고, 동승자 존은 전신이 마비된다. 그때 병원으로 찾아온 자원봉사자 아누(루니 마라 분)에게 한눈에 반한 듯한 존이다. 시간이 흘러 휠체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존, 그런데 그가 나라에서 돈을 타서 하는 거라곤 집에 간병인을 한 명 두고는 계속해서 술을 찾아 마시는 일이었다. 그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뜨린 술이지만, 술이 아니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 신세.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존은 술을 끊기로 작정하고 알코올중독자 프로그램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모임의 리더이자 멘토 도니(조나 힐 분)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서 존은 자유롭지 않은 손을 이용해 특유의 영약한 유모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에겐 인생을 결정지을 만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를 버리고 떠난 생모이다. 그는 생모에 관해 아는 게 4가지라고 한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빨강 머리이고 교사라는 것. 그리고 그를 원치 않았다는 것.

 

착하게 그려내는 아웃사이더

 

 

영화 <돈 워리>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돈 워리>는 지난 2010년 작고한 미국의 유명 만화가 존 캘러핸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신작으로, <굿 윌 헌팅> <밀크>로 대표되는 '구스 반 산트'표 인물 천착 장르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무난하고 안정된 스토리에, 결을 함께 하는 연출과 연기가 조화를 이루었다.

 

2010년대 들어서 거짓말처럼 좋지 않은 평가를 들을 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이지만, 최고 흥행작이자 대표작 <굿 윌 헌팅>을 비롯해 <아이다호> <투 다이 포> <파인딩 포레스터> <엘리펀트> <밀크> <파라노이드 파크> 등 1990~2000년대를 주름잡을 만한 영화들을 다수 내놓았다. 이중 '각 잡고' 만든 영화 <엘리펀트>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에 빛난다.

 

들여다보면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변방의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때론 착하게 그려내어, 오히려 더 부각되는 묘미를 살린다. 그 자신이 성소수자(게이)임을 밝혔기에,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 구스 반 산트의 삶과 시선이 다분히 녹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알코올중독

 

 

영화 <돈 워리>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의 시점은 자못 뒤죽박죽이다. 만화가로 성공한 지금의 시점도 3~4개에 다다르고, 대중 앞에서 하는 이야기와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쓰러졌을 때 일으켜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와 중독자 모음에서 일행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일치 또는 불일치되면서 사고가 나기 전의 이야기, 사고가 난 직후의 이야기,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된 후에도 여전히 알코올에 중독된 이야기, 중독자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후의 이야기가 마치 알코올중독자이자 전신마비자 존의 뒤죽박죽 삶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돈 워리>에서 전신마비는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전신마비에 이르게 한 교통사고가 단순한 실수나 타인에 의한 고의 때문이 아니라, 100% 본인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알코올중독. 그래서일까, 교통사고에 천착한 참혹한 장면 묘사는 없고 대신 그때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떤 알코올중독적 일상을 지내왔는지 들여다보거나 전신마비 재활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닌 알코올중독적 일상을 계속 영위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영화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극중에서 존은 중독자 프로그램에서 큰 깨달음을 두 번 얻는 듯하다. 그때마다 활짝 웃으니까. 프로그램에 처음 갔을 때 도니가 나와서 얘기한다. 그는 두 벌의 바지만 있었다고 한다. 똥 묻은 바지와 똥 묻지 않은 바지. 그는 원래 그 둘 중 어느 것을 입으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젠 아침에 일어나 똥 묻지 않은 바지를 입고 커피를 마시러 간다고 한다. 커피 맛이 기가 막힌 그 평범함을 축하하고 그런 하루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중독자 프로그램의 또 다른 모임에서 도니가 존에게 음주에 관해 얘기해줄 것을 요구한다. 존은 13살에 처음 술을 마셨는데, 좋았고 계속 마셨다. 그는 자신이 술을 끊지 못한 게 입양아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입양아인 게 별로 신경 안 쓰였던 것 같다면서.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그의 말이 핑계라고 몰아부친다. 분노가 치민 존, 급기야 본인의 전신마비 얘기를 꺼낸다. 그때 한 명이 웃기에 조는 그녀에게 화를 푼다. 하지만 그녀는 심장암을 앓고 있었고 '자기 연민'에 대해 존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존은 받아들이고 사과를 하며 활짝 웃는다. 그건 이 모임의 '12단계' 중 하나였던 것이다.

 

궁극적 ‘치유’에 다다르다

 

 

영화 <돈 워리>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전신마비 '재활'을 건너 띄고 알코올중독 '치료'로 나아갔지만, 궁극적으론 인생을 보다 올바르고 건강한 쪽으로 바꾸는 '치유'에 다다른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존의 사고 전후의 이야기들 자체가 모두 치유의 과정이라 하겠다. 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도 싫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매우 힘든 일임과 동시에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궁극적 심연에의 도달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돈 워리>는 그 자체로 치유 프로그램이다. 누구든 문제라고 직시하고 있거나 힘들고 두려워 하는 부분이 있다면 궁극적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 존의 과정을 따르면 될 것이다.

 

존은 걷지 못한다, 왜? 사고를 당했으니까. 왜? 덱스터가 졸음운전을 했으니까. 왜? 술에 취했으니까. 왜 그 차를 탔나? 다음 파티장으로 가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왜 그 차를 탔나? 그땐 어렸으니까. 도대체, 왜 그 차를 탔나? 모르겠다... 술에 무지 취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술에 절어 살았다. 너무 창피했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도 날 원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을 마셔서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 집에서 많은 몹쓸 짓을 저질렀다. 존은 그들이 그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도니는 오히려 존이 그들을 용서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 <굿 윌 헌팅>의 명대사 "윌, 네 잘못이 아니야", 들여다보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윌의 그곳을 숀은 윌과 함께 억지로 다다른다. 그러곤 올바르고 건강한 삶을 향한 치유의 발걸음을, 그 고통의 심연을 파헤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돈 워리>에선 도니가 숀의 역할을 대신 하여 존을 이끈다. 획기적이거나 번개 같지 않은 발견과 통찰과 명료한 순간들의 길고 긴 이어짐 속 '용서'의 궁극을 전하는 것이다. 그 끝엔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용서가 있다. 결국,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고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고는 자신의 모든 과오를 자신이 직접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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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하는 러브 스토리 <먼 훗날 우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 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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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먼 훗날 우리>


영화 <먼 훗날 우리> 포스터. ⓒ넷플릭스



2007년 춘절, 고향으로 귀향하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린젠칭(징보란 분)과 팡샤오샤오(저우둥위 분),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그들은 베이징에서 함께 지내며 꿈을 키운다. 린젠칭은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우는 반면, 팡샤오샤오는 잘 나가는 베이징 남자와 결혼할 때까지는 그저 먹고 사는 데만 치중할 뿐이다. 


린젠칭은 팡샤오샤오를 좋아한다. 팡도 린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들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다시 없을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도 팍팍하다. 


언제 꿈을 이룰지 알 수 없지만, 꿈을 이루기 노력하는 한편 현실을 살아가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 린. 팡은 그런 린을 응원하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계속할 뿐이다. 그들의 사랑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영화는 동시에 10년이 흐른 후 린과 팡이 우연히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담담히 서로를 응시하며 조용히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 분위기로 봐서 그들은 헤어졌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던 것일까. 


중국 멜로의 대세이자 현재


이 영화는 단연코 중국 멜로의 현재이자 대세이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먼 훗날 우리>는 중국 현지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내고는 북미와 한국엔 넷플릭스로 공개되었었다. 중국 대세 배우들인 징보란과 저우둥위가 함께 한 청춘 감성 멜로로, 대만 출신의 만능 엔터테이너 류뤄잉의 첫 연출작이다. 


류뤄잉을 간단히나마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녀는 수많은 상을 휩쓴 영화배우, 대박 음반을 낸 가수, 10권이 넘는 책을 낸 작가, 그리고 이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이밖에 작사와 작곡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다양한 사회활동도 한다. 


그런 감독의 작품이다 보니 영화도 지루하지 않고 빠르고 다채롭게 진행될 것 같고, 다방면의 이야깃거리들이 한데 잘 뭉칠 것 같다. 정통 멜로에 한 발만 걸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했던 것을 훨씬 웃도는 만듦새를 보여주었다. 단연코 이 영화는 중국 멜로의 현재이자 대세이고, 당분간 '중국 멜로' 하면 이 영화를 떠올릴 듯하다.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현재의 청춘을 보여주는 데도 성공했다. 


첫사랑 지침서


첫사랑 지침서 <건축학개론>을 생각나게 하는 외관을 지녔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는 우리나라의 첫사랑 지침서 <건축학개론>을 생각나게 하는 외관을 보인다. '그때 우린 왜 그랬을까' '그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린 달라졌을까' 하는 덧없지만 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 정처없다. 


보다 깊이 들어가보면, 밖으로만 도는 팡을 향한 린의 일편단심과 그 일편단심의 소소하고 디테일한 면면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호감인지 사랑인지 모를 미묘함이 웃음 아닌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게 또 그럴 수밖에 없다'라고, 누군가는 말하게 만들고 또 그 말이 맞을 때가 있는 법. 사실, 팡이야말로 린을 계속 사랑해오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는 그들의 연애와 사랑의 모습들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울 수 있겠는가. 


팍팍한 현실이라는 벽 또는 핑계는 그들로 하여금 아니 팡 아닌 린으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마치, 운명 같다.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건, 운명 같다. 영화는 이 운명의 거시적 관점을 현재의 시점에서 풀어내고, 이 사랑의 미시적 관점을 과거들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우린 영화의 시작부터 결말을 다 알고 있지만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빠짐없이 녹아 있기에.


결국, 다시, 사랑.


중국 청춘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데 사랑과 연애를 수단으로 사용한 것 같지만, 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한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중국은 이제 명실상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지만, 실상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중앙 통제의 공산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세계 최고의 빈부격차를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 성공을 위해서라면 도시에서의 집도 절도 없는 생활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린과 팡의 베이징 나날들이야말로 그 자체이다. 


영화는 중국이, 중국 청춘들이 처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정공법을 택하면서, 사랑과 연애를 표나지 않게 어우르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가 명작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게 바로 그 부분인데, 홍콩 반환기의 혼란과 10년 동안의 사랑을 절묘하고 절절하게 그린 20여 년 전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과 궤를 같이 한다. <건축학개론>보단 <첨밀밀>이 연상된다. 


그런 면에서 <먼 훗날 우리>는 단순명쾌한 영화는 아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시골 청춘의 도시 상경기 또는 성장기 그리고 회상기인 건 맞지만, 영화를 온전히 품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개인 아픔, 사회 현실, 시대 정신까지 차례대로 두루두루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인생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게 가슴 아프다. 그렇다고 다른 무엇의 것이라고 한다면 더욱 가슴 아프다.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사랑에서 오는 아픔과 슬픔이라면 공감에의 '치유'가 가능했을 텐데, 이 영화의 사랑이 낳은 아픔과 슬픔은 끼어드는 것들이 너무 많고 일개 개인으로선 어찌 해볼 수 없는 것들이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사랑이라면 다 이길 수 있고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하니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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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4 17:12

    좋은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찾아서 감상해 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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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 하지만 끔찍한 현실 <툴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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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툴리>


영화 <툴리>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는 두 아이를 키우는 임산부다. 큰딸은 의젓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기에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하고 챙겨주어야 한다. 둘째 아들은 조금 특별하다, 조금 다르다. 예민한 게 정도를 지나칠 때가 많다. 와중에 그녀는 이제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운명이다. 육아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셋째가 태어나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전쟁에 돌입한다. 큰딸을 최소한으로 챙기고 둘째 아들에게는 여전한 관심을 쏟는 와중에, 정녕 밤낮 없이 셋째 키우기가 계속된다. 와중에 남편은 아이들과 적당히 놀아주고는 게임 삼매경이다. 끝이 없을 것 같고 변함도 없을 것 같다. 사소한 것부터 큼직한 것까지 모든 게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나'라는 존재는 없다. 


마를로의 오빠는 자신들이 야간 보모의 손에 키워졌다며 마를로에게 야간 보모를 권유한다. 어떻게 되든 아이는 엄마 손에 키워져야 한다고 생각해 완강히 거절하는 마를로, 하지만 나날이 지쳐가며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가는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오빠의 권유를 받아 들인다. 야간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 분)가 등장한다. 


툴리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가 케어해줄 거라 말한다. 이 당돌함 또는 당당함이 처음에는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지만 점점 믿음직하게 와닿는다. 마를로는 툴리에게 마음을 열고 아이를 맡기며 한껏 여유로운 나날을 만끽한다. 하지만 툴리의 정체는 가히 궁금하다. 그녀는 누구이길래 마를로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를로 본인까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것인가? 


끔찍한 현실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끔찍한 현실을 그려내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 <툴리>는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이자 끔찍할 수 있는 현실을 끔찍하리만치 여지없이 그려낸 다큐멘터리이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했던 그때 D-Day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찬사를 받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육아 전쟁' 편을 보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툴리>의 그것이 더 끔찍했다. 


데뷔 후 쉬지 않고 열일 중인 샤를리즈 테론이 세 아이의 엄마 역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22kg나 찌우는 투혼을 불살랐던 게 이슈가 되는 와중에, 이 영화의 제작도 한 그녀는 <몬스터>의 에일린, <매드맥스>의 퓨리오사를 잇는 대반전 변신 캐릭터로 분했다. 이 영화들에서 그녀가 공통적으로 변신 공력에 맞먹는 연기 공력을 선보였듯, <툴리>에서도 활약을 펼쳤다. 


수없이 많은 드라마, 영화에 얼굴을 비치며 '찌질남'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론 리빙스턴이 마를로의 남편 드류로 희한하게 중심을 잡는 와중에, 툴리 역의 맥켄지 데이비스는 특유의 저음과 표정으로 샤를리즈 테론과 훌륭한 짝을 이룬다. 


한편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전히 젊은 나이이지만 10대 때 연출 데뷔를 한 만큼 다수의 연출작을 보유한 그는, 우리에게 <주노> <인 디 에어>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에 특화된 그는, 지극한 현실의 치명적일 수 있는 부분들을 잘 캐치해내어 건드려 내보인다. 그의 영화들을 보고는 생각지도 못한 점을 인지하게 되며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은데 <툴리>도 그러하다. 


참담, 경악, 슬픔을 수반시키는 엄마의 모습


엄마의 모습은 참담, 경악, 슬픔을 수반시킨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남자, 남편으로서 아직 아이는 없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지만 이 영화에서 마를로로 보여지는 엄마의 실질적인 모습들을 보고 참담, 경악, 슬픔의 감정을 복잡다단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쟁 같은 아이들 돌봄의 광경은 참담함을 야기시켰고, 밖으로 드러내기 힘든 엄마의 모습은 경악을 불러일으켰으며, 반전을 통해 보여준 여자, 엄마, 아내의 복합적인 자장에서는 슬픔이 밀려왔다. 


내 한 몸 온전히 건사하기 힘든 게 세상사는 이치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와 차라리 아무것도 못 했으면 좋겠는 아이와 그래도 아이는 아이인 세 아이를 온전히 키워낸다는 건 한없이 불가능의 영역에 수렴된다. 매일같이 한시도 쉼없이 똑같은 전쟁을 치르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이루 말할 수 없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담 그 자체이다. 영화의 시작은 참담이다. 


영화는 점차 그 참담함을 들여다본다. 디테일들은 경악이다. 물론 아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함의 일환일 테다. 그럴수록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경악일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줄 젓을 짜는 유축기 사용 장면은, 사용자 엄마의 태연하고 하릴 없는 모습과 대비해 충격을 준다. 제때 젖을 짜주지 않아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도 그렇다. 실로 많은 걸 배운다. 충격과 경악은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슬픔을 수반한다. 


이 영화가 주는 슬픔은 말할 수 없는 반전과 함께 온다. 말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면 2/3 지점에서 갑자기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나올 때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바로 그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가장 이해되고 가슴에 와닿게 된다. 그러며 세 아이의 엄마가 여자이자 아내라는 걸 한순간에 깨닫게 된다. 


치유와 위로의 긍정적 목적


영화는 치유와 위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영화의 참담-경악-슬픔의 감정라인은 당사자에겐 치유, 보는 이들에겐 위로의 궁극적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이다. 당사자인 주인공 마를로, 마를로로 대변되는 '엄마'는 자신의 엄마로서의 모습을 누구한테고 보여주기 힘들다. 거기에 부정이나 긍정, 무관심을 보이는 모든 사람들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든 상처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를로는, 샤를리즈 테론은 가감없이 대신해주었다. 그 자체로 치유다.


보는 이들이 이 영화에, 마를로의 모습에 마냥 감동 종류의 감정을 느끼긴 힘들 것이다. 그런 현실은 애써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맞대면 했을 때는 나서기 힘들기에 어떤 식으로든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비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져왔다시피 했지만 '영화'로서의 함의를 잊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위로의 감정 영역에 들게 한다.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이 영화가 대신해주는 치유의 역할에 묘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이기적인,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위로. 


사실, 이 영화의 대상은 엄마가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엄마에게 이 영화는 또 하나의 현실일 뿐이라서 공감 어린 끄덕끄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혹은 끝나지 않더라도 엄마는 아이를 보러 가야 한다. 


반면, 당장의 엄마가 아닌 모든 사람은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실상을 한순간, 한 장면의 디테일을 통해서라도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달라진다. 달라져야 한다. 엄마를 보는 시선이. 나아가 아내를 보는 시선이. 궁극적으로 여자를 보는 시선이. 더 이상 '여'전사(女戰士)는 없다. 전사(戰士)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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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성스럽고 황홀하고 지적인 섹스란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오래된 리뷰 2017. 6.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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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충분한 논란과 충만한 사랑이 공존하는, 직선적인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20세기폭스코리아



얼마 전 국내 주요 언론들에서 BBC 보도를 인용해 '천사의 손' 논란을 다룬 적이 있다. 천사의 손은 대만의 작은 민간 자선단체로, 성욕을 해결하기 힘든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마디로, 간호 자격을 갖춘 성 도우미가 장애인의 수음을 도와주는 것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름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이를 풀어야 하며, 장애인의 식사와 배설을 도와주는 것처럼 성욕도 해소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매춘 행위와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매춘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테고, 장애인의 성 욕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존재할 것이다. 무엇보다 '봉사'의 의미로 행해지는 성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다. 


이와 다분히 동일선상에서 대할 순 없겠지만, 비슷한 생각과 논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영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가 흥미롭게 눈을 잡아끈다. 소아마비로 인해 얼굴 근육을 제외한 온몸이 자유롭지 못한 중증 장애인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그리고 '치유'하기 위해 섹스 테라피스트와 시간을 가진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1988년 미국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중증 장애인 마크의 총각 딱지 떼기


중증 장애인 마크는 총각 딱지 떼기를 실현코자 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는 것. ⓒ20세기폭스코리아



마크 오브라이언(존 혹스 분)은 얼굴 근육을 제외한 온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6살 때 걸린 소아마비 때문인데, 도우미와 호흡을 도와주는 기계와 도구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데, 어느 날 '장애인의 섹스'에 대한 칼럼 제의가 들어 온다. 그러고 보니 38살 평생 섹스는커녕 수음도 해보지 못한 그, 섹스 테라피스트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렇게 셰릴 코헨 그린(헬렌 헌트 분)과 마크 오브라이언은 만남을 갖고, 세션 즉 '훈련'에 들어간다. 


자신의 몸을 느끼고, 서로의 몸을 느낀 후, 수음의 단계를 지나, 삽입의 순간 이후, 절정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마크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셰릴에 의해서만 단계가 이어진다. 쉽지 않다. 마크는 평생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성에 관한 어떤 행동도 취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칼럼 때문이기는 했지만, 마크는 그토록 원하던 '총각 딱지 떼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편, 마크가 어디에 가서도 쉽게 꺼내지 못할 자신의 속 깊은 얘기를 브렌단 신부(윌리암 H. 머시 분)에게 한다. 고해성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신부가 답해주기엔 맞지 않는 것 같은 성 상담이 대부분이다. 그런 와중, 계속 바뀌는 도우미도 문제다. 자신의 상태를 이해해주는 것 이상으로 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도우미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영화는 마크 오브라이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관계를 이어간다. 처음엔 '중증 장애인' 마크가 보일 것이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이 가장 먼저 인다. 그러다가 어느새 '마크'가 보인다. 그러며 그와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섹스와 논란을 넘어 사랑과 관계로


영화 포스터를 볼 때는 '섹스'에 방점을, 일반적으로는 '논란'에 방점이 찍힐 수 있겠다. 하지만 그 행간에 위치한 사랑과 관계를 들여다보자. ⓒ20세기폭스코리아



별다를 게 없는 소소한 일상을 그리는 이 영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포스터를 보니, 배급사는 '섹스'에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신부님... 하고 싶은 게 죄가 되나요?'가 메인 카피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선정성에 최대한 포커스를 맞췄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영화가 가지는 다양한 초점 중 가장 빗나간 초점일 것이다. 


'섹스'와 비슷한 관점일 텐데, '논란'에 방점을 찍는 게 이 영화를 보는 극히 일반적인 방법이다. 여기엔 두 층위가 있는데, 장애인의 성 욕구와 섹스 테라피스트의 정체다. 장애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의 기반 위에서 장애인이 가지는 성 욕구는 더욱 생각하기 힘들다. '장애인 따위가 성 욕구를 가지고 있겠어?'와 '장애인이 무슨 성 욕구를 해소해?'가 있겠는데, 여하튼 이미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글의 처음 소개한 장애인 성 도우미 논란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섹스 테라피스트의 정체는 사실 혁명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쓴 60년대에 확립되었다고 한다. 섹스보다 테라피스트 즉 치료와 치유에 방점을 둔 것이다. 단지 그 방법론이 섹스에 있는 것이리라. 이는 본인의 확고하고 당당한 신념이 중요할 듯하다. 


나아가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자,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과 '관계'에 있다. 마크를 아는 사람들이 느끼는 오묘한 감정, 그의 인간적인 면에 끌려 진정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셰릴처럼 공적인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마크의 진심어린 마음과 역시 인간적인 매력에 끌린 사람도 있으며 모든 걸 떠나 오로지 마크라는 인간에 끌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와 도우미도 있다. 그들은 모두 '장애인' 마크 때문에 관계를 가졌지만, 모두 '마크'와 함께 하는 게 좋아졌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수정해야 할 것들


이 괜찮은 영화를 보고 우리는 더욱 괜찮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20세기폭스코리아



나는, 아니 우린 이 영화를 보며 '수정'해야 할 게 많다. 무엇보다 꽉 막힌 머리와 무관심한 가슴이다. 장애인도 당연히 성 욕구가 있고 원한다면 그 욕구를 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할 수 있지만 안 하거나 못 하는 것과, 할 수 없어 안 하거나 못 하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서, 그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을 논해야 한다. 그 방법에는 봉사 또는 치료가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니, 이해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진부하지만 심플한 명답도 함께.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데, 그들은 단지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섹스를 바라보는 시선과 섹스에 대한 생각의 수정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할 수도 있겠다. 비록 전라노출과 사실적인 섹스신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누구보다 추천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인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섹스란 불경하고 더럽고 몰래 숨어 즐기는 게 아니라, 이처럼 성스럽고 황홀하고 지적인 대상이다. 더욱이 몰래 숨기는커녕 당당하게 밝히고 응원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내적으로는 완벽한 캐릭터를 부여한데 대해 완벽하게 부합한 연기를 펼친 배우들이 빛났고, 영화 외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이겨낼 필요가 있는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놓고 풀어낸 점이 빛났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삶의 아름다움으로 묶어낸 점이 가장 밝게 빛났다. 그 어떤 인간도, 그 어떤 순간에도,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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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회복하는 인간>

지나간 책 다시읽기/한국 대표 소설 읽기 2016. 5. 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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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


<회복하는 인간> 표지 ⓒ아시아



한 자매가 있다.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언니는 화려한 외모에, 건실하고 잘생긴 형부와 결혼해 누구라도 부러워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동생은 평범한 외모에,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고, 신통찮은 전공을 택해 불안정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언니를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언니가 동생을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매 사이는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지고 죽을 때까지 좁혀지지 않는다. 조만간 언니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언니를 보내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 아니, 일부러 고통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자 방식이라는 듯이. 


'고통'과 '아픔'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가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은, 역시 고통과 아픔이 소설을 관통한다. 주인공인 동생은 아프고 고통스럽고 동생의 언니도 아팠고 고통스러웠으며 그들의 가족 또한 그랬다.


초월적 아픔과 고통 앞에선, 그 어떤 아픔과 고통도 없다


동생이 현재 아픈 이유는 화상에 의한 괴사 때문이다. 괴사로 구멍이 난 그곳은 복숭아뼈 아래쪽인데, 닷새 전 왼쪽 발목을 접지른 후 찾아간 한의원에서 처방해준 직접구 때문이었다. 살갗이 탈 때까지 불붙은 쑥덩이를 얹어 두는 뜸인 직접구로 동생의 아픔과 고통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실제적 아픔과 고통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언니라는 존재,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언젠가부터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존재, 동생에게만 불치병의 사실을 알리곤 동생과는 멀어진 채 고통과 아픔 속에서 속절없이 떠난 존재 때문이었다. 그 존재 때문에 동생은 아파도 아픈 게 아니었고, 고통도 고통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걸 '이따위'로 치부해야 했다. 


그런 때가 있다. 초월적 아픔과 고통 앞에선, 그 어떤 아픔과 고통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말이다. 그럴 때면 초월적 아픔과 고통이 아닌 '일반적' 아픔과 고통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곤 한다. 거기에서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로지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강해지는 것일까, 약해지는 것일까. 초월적 아픔과 고통에서 회복된다고 봐야 할까, 일반적 아픔과 고통이 가중된다고 봐야 할까. <회복하는 인간>은 그 무엇도 아니라고, 그러며 모두 맞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건 아픔과 고통 그 자체로 수렴된다.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소설은 아픔과 고통으로 시작해 또 다른 아픔과 고통으로 끝난다. 초월적 아픔과 고통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다른 아픔과 고통으로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며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기미가 보인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이 시작된다.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싫어진다. 더 이상 생을 살아가기 싫다는 암시일까?


하지만 초월적 아픔과 고통에도 생을 마감하지 않은 걸 보면, 그런 암시로 보이진 않는다. 결국 계속 버티고 살아갈 거라 생각된다. 다만, 온갖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회복하는 인간>은 그것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회복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치유는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병을 짊어진 채 버티며 살아가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한강 작가의 글쓰기와 일맥상통한다. 짧은 소설이기에 집대성했다고 보는 건 힘들지만,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하겠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지루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기까지 할 수 있겠지만, 보다 고민과 통찰을 원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소설에는, <회복하는 인간>에는 '인간'이 보인다. 



아시아 출판사가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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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고통, 삶, 아픔, 인간, 죽음, 치유, 한강, 회복, 회복하는 인간
  • BlogIcon 둘리토비
    2016.05.27 11:37 신고

    공감에 또 공감의 마음을 담아 글을 읽습니다.

    단 인생이 아픔과 고통으로 시작해 또 다른 아픔과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좀 받아들여지기가 싫어지네요. 하지만 그 담긴 의미의 성찰......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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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인문학> 인문학은 어디 가서 배울 수 있을까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3. 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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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상의 인문학>


<일상의 인문학> ⓒ민음사

흔히들 IMF 이후 우리들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극단으로 치달아, 물질(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이 되어버렸죠. 그 결과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소외되었습니다. 이는 기업은 고사하고, 학문의 가치를 숭고히 해야 하는 대학에까지 침투하고 맙니다. 교수들은 어떻게든 취업률을 올려놓아야 하고, 학생들도 스펙 위주의 학습으로 눈을 돌립니다. 자연스럽게 문·사·철을 위주로 하는 인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은 나몰라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장기 불황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지금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들은 더 있습니다. 정치 불안, 각종 살인 사건,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세계 1위라는 자살 문제, 이혼, 부익부 빈익빈 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죠. 이 깊은 수렁에서 사람들은 찾으려고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을. 그래서 많은 서적들이 나오고 있죠. 치유서, 인문서들이. 


책으로 인문학을 말하다


여기 생애 전체를 독서에 몰두해, "밥을 먹듯, 또한 노동을 하듯" 책 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3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해마다 1000여 권의 책을 사들이고 그것들을 매일매일 읽는 것을 생의 큰 보람과 기쁨으로 여깁니다. <일상의 인문학>의 저자 장석주 시인입니다. 


이 책은 기다림, 망각, 사랑, 죽음, 소비, 여행, 일 등 50여 가지의 주제를 300여 권의 책 읽기를 통해 인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볍지 않은 책과 주제들이지만, 그 안에는 일상이 생활이 숨쉬고 있어 다가가기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살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죽지 않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내 사유는 책과 더불어 싹을 텄고 풍성해졌다. 그동안 내 사유의 주제는 기다림, 망각, 타인, 결혼, 사랑 (줄임) 같은 것들이었다. 삶과 세계 속에서 이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고, 다시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드높이고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궁리했다." (본문 중에서)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인문의 바다'에서 뛰놀던 저자가 이번엔 책을 통한 인문의 사유 방식을 택한 듯합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에는 수많은 사유의 주제로 약 300편의 책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지금 당신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 대신에 다만 기다림의 주체와 대상이 사라지고, 기다리는 시간들이 흘러가 부재에 이를 뿐이다." (본문 중에서)


"일요일 정오. "요일 중의 요일. 가장 늦게 탄생한 요일의 막내 자매. 모든 요일의 여왕이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날!"(서동욱 <차이와 타자>) 일요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먹고 마시며 즐길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줄고 있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


자칫 흔한 서평집이 될 수 있는 것을 저자는 서평과 사유와 문학적 글쓰기로, 독자로 하여금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같이 생각해보며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는 엄연한 '인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확장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일상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가치를 갖게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인문학과 책, 그리고 일상은 하나다


저자는 말하길, 현실이 던적스럽고 갈 길이 흐릿할 때 인문학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적이 아니었을 때가 있었나 싶지만, 요즘 들어 심화된 것 같네요. 인문학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이 힘들고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언젠가부터 필요의 학문이 되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많이 힘들어들 하고 있다는 반증 때문입니다. 


모든 학문의 요체는 '책'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문학의 정수는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책에만 있을까요? 심오한 글의 세계에서만 인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대한 이해와 애정을 근간으로 삼는 인문학이 모든 사람들에게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이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일상 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인문학과 책 읽기가 우리의 삶,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기반으로,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리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이 요즘들어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학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치유'도 인문학에 대한 깊은 천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행복이 사라진 것 같은 지금, 인문학을 알아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문학은 가까운 '일상'에도 있고, '책'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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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IMF, 스펙, 신자유주의, 인간, 인문학, 일상, 일상의 인문학, 장석주, 책, 치유
  • BlogIcon all about
    2014.03.05 07:55

    살면서 인문학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과를 나와서 관련업무를 종사하고 있지만 인문학과 철학이 있는 삶이 현재를 살아가는 열정과 근본적 힘이 되는것 같습니다 또한 요즘 대세인 스토리텔링 코칭 과 같은 일련의 일들이 인문학과도 관련이 많다는걸 느낌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칠게 아니라 인문학을 배워 깨닫게 하는게 중요한것 같습니다

  • BlogIcon 노지
    2014.03.05 09:26 신고

    이런 종류위 책은 정말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주변에 있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더라고요.
    자기개발서와 다른 또 다른 나를 개발할 수 있어 참 좋은 듯 싶습니다.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3.05 10:04 신고

    잘 읽고갑니다~~

  • BlogIcon 미미르의 샘
    2014.03.05 12:59 신고

    얼마전에 김경집 교수의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책을 선물 받아서 시간 날 때마다 재미있게 읽고있는데, 이 책도 비슷한 성격의 책일 것 같네요 ^^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이 일상을 풍요롭게 살아간다면 우리 사는 삶도 더 나아질까요 ^^? 괜히 기대해봅니다

  • BlogIcon 어듀이트
    2014.03.05 18:49 신고

    좋은글 너무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 BlogIcon S매니저
    2014.03.05 19:19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 BlogIcon 푸른
    2014.03.05 22:33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장석주님의 말을 듣고 나니, 새삼스럽게 난 왜 책을 읽는걸까? 난 왜 책을 읽어야 하는걸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책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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