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큐레이터'S PICK] <돈 워리>
영화 <돈 워리>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미국 포틀랜드의 유명 만화가 존 캘러핸(호아킨 피닉스 분), 휠체어에 앉은 채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히 충격적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걸은 날은 전날 마신 술로 잔뜩 취한 상태였기에 숙취 없이 잠에서 깼다는 것이다. 곧 그는 술을 찾아 마시고 계속 술을 찾아 헤맨다. 밤에는 파티에 가서 '언니'들이랑 놀았는데, 덱스터(잭 블랙 분)가 와서 훨씬 좋은 파티에 가자고 한다.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며 놀고는 계속 차를 타고 이동했다. 술을 진탕 마셨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고 밤새 놀았으니 졸렸을 것이다. 덱스터가 운전할 때 가로등을 들이박는다.
이 사고로 운전자 덱스터는 가벼운 찰과상 정도로 끝나고, 동승자 존은 전신이 마비된다. 그때 병원으로 찾아온 자원봉사자 아누(루니 마라 분)에게 한눈에 반한 듯한 존이다. 시간이 흘러 휠체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존, 그런데 그가 나라에서 돈을 타서 하는 거라곤 집에 간병인을 한 명 두고는 계속해서 술을 찾아 마시는 일이었다. 그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뜨린 술이지만, 술이 아니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 신세.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존은 술을 끊기로 작정하고 알코올중독자 프로그램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모임의 리더이자 멘토 도니(조나 힐 분)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서 존은 자유롭지 않은 손을 이용해 특유의 영약한 유모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에겐 인생을 결정지을 만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를 버리고 떠난 생모이다. 그는 생모에 관해 아는 게 4가지라고 한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빨강 머리이고 교사라는 것. 그리고 그를 원치 않았다는 것.
착하게 그려내는 아웃사이더
영화 <돈 워리>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돈 워리>는 지난 2010년 작고한 미국의 유명 만화가 존 캘러핸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신작으로, <굿 윌 헌팅> <밀크>로 대표되는 '구스 반 산트'표 인물 천착 장르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무난하고 안정된 스토리에, 결을 함께 하는 연출과 연기가 조화를 이루었다.
2010년대 들어서 거짓말처럼 좋지 않은 평가를 들을 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이지만, 최고 흥행작이자 대표작 <굿 윌 헌팅>을 비롯해 <아이다호> <투 다이 포> <파인딩 포레스터> <엘리펀트> <밀크> <파라노이드 파크> 등 1990~2000년대를 주름잡을 만한 영화들을 다수 내놓았다. 이중 '각 잡고' 만든 영화 <엘리펀트>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에 빛난다.
들여다보면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변방의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때론 착하게 그려내어, 오히려 더 부각되는 묘미를 살린다. 그 자신이 성소수자(게이)임을 밝혔기에,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 구스 반 산트의 삶과 시선이 다분히 녹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알코올중독
영화 <돈 워리>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의 시점은 자못 뒤죽박죽이다. 만화가로 성공한 지금의 시점도 3~4개에 다다르고, 대중 앞에서 하는 이야기와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쓰러졌을 때 일으켜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와 중독자 모음에서 일행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일치 또는 불일치되면서 사고가 나기 전의 이야기, 사고가 난 직후의 이야기,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된 후에도 여전히 알코올에 중독된 이야기, 중독자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후의 이야기가 마치 알코올중독자이자 전신마비자 존의 뒤죽박죽 삶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돈 워리>에서 전신마비는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전신마비에 이르게 한 교통사고가 단순한 실수나 타인에 의한 고의 때문이 아니라, 100% 본인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알코올중독. 그래서일까, 교통사고에 천착한 참혹한 장면 묘사는 없고 대신 그때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떤 알코올중독적 일상을 지내왔는지 들여다보거나 전신마비 재활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닌 알코올중독적 일상을 계속 영위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영화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극중에서 존은 중독자 프로그램에서 큰 깨달음을 두 번 얻는 듯하다. 그때마다 활짝 웃으니까. 프로그램에 처음 갔을 때 도니가 나와서 얘기한다. 그는 두 벌의 바지만 있었다고 한다. 똥 묻은 바지와 똥 묻지 않은 바지. 그는 원래 그 둘 중 어느 것을 입으나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젠 아침에 일어나 똥 묻지 않은 바지를 입고 커피를 마시러 간다고 한다. 커피 맛이 기가 막힌 그 평범함을 축하하고 그런 하루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중독자 프로그램의 또 다른 모임에서 도니가 존에게 음주에 관해 얘기해줄 것을 요구한다. 존은 13살에 처음 술을 마셨는데, 좋았고 계속 마셨다. 그는 자신이 술을 끊지 못한 게 입양아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입양아인 게 별로 신경 안 쓰였던 것 같다면서.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그의 말이 핑계라고 몰아부친다. 분노가 치민 존, 급기야 본인의 전신마비 얘기를 꺼낸다. 그때 한 명이 웃기에 조는 그녀에게 화를 푼다. 하지만 그녀는 심장암을 앓고 있었고 '자기 연민'에 대해 존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존은 받아들이고 사과를 하며 활짝 웃는다. 그건 이 모임의 '12단계' 중 하나였던 것이다.
궁극적 ‘치유’에 다다르다
영화 <돈 워리>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전신마비 '재활'을 건너 띄고 알코올중독 '치료'로 나아갔지만, 궁극적으론 인생을 보다 올바르고 건강한 쪽으로 바꾸는 '치유'에 다다른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보는 존의 사고 전후의 이야기들 자체가 모두 치유의 과정이라 하겠다. 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도 싫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매우 힘든 일임과 동시에 반드시 행해야만 하는 궁극적 심연에의 도달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돈 워리>는 그 자체로 치유 프로그램이다. 누구든 문제라고 직시하고 있거나 힘들고 두려워 하는 부분이 있다면 궁극적 심연에 도달하기 위해 존의 과정을 따르면 될 것이다.
존은 걷지 못한다, 왜? 사고를 당했으니까. 왜? 덱스터가 졸음운전을 했으니까. 왜? 술에 취했으니까. 왜 그 차를 탔나? 다음 파티장으로 가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왜 그 차를 탔나? 그땐 어렸으니까. 도대체, 왜 그 차를 탔나? 모르겠다... 술에 무지 취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술에 절어 살았다. 너무 창피했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도 날 원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을 마셔서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 집에서 많은 몹쓸 짓을 저질렀다. 존은 그들이 그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도니는 오히려 존이 그들을 용서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 <굿 윌 헌팅>의 명대사 "윌, 네 잘못이 아니야", 들여다보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윌의 그곳을 숀은 윌과 함께 억지로 다다른다. 그러곤 올바르고 건강한 삶을 향한 치유의 발걸음을, 그 고통의 심연을 파헤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돈 워리>에선 도니가 숀의 역할을 대신 하여 존을 이끈다. 획기적이거나 번개 같지 않은 발견과 통찰과 명료한 순간들의 길고 긴 이어짐 속 '용서'의 궁극을 전하는 것이다. 그 끝엔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용서가 있다. 결국, 자신의 현재를 직시하고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고는 자신의 모든 과오를 자신이 직접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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