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썸네일형 리스트형 떼려야 뗄 수 없는 삶과 죽음, 긍정적으로 접근해보기 <헤피엔딩> [서평] 10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웰빙'이라는 거의 모든 곳에서 쓰였던 적이 있다. 단순히 먹고 사는 시대를 지나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에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혹은 오로지 물질적인 풍요와 성공만을 강요하는 시대를 지나 정신적인 풍요와 성공이 삶의 진정한 척도로 부상했다는 뜻이기도 했을 거다. 웰빙의 뜻은 점차 확대 되었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만이 아닌 '잘 죽는 것'도 웰빙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은 줄 안다. 일명 '웰다잉'이다. 말이 쉬워 웰다잉이지,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웰다잉이 사회적으로 퍼진 건 '고 김수환 추기경' 연명 치료 중단 판결 덕분이다. 2009년 선종한 그는 병세가 악화되기 .. 더보기 화가들 생의 마지막 그림, 그들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서평] 여섯 살 때 찾아온 척수성 소아마비, 18살 때 당한 끔찍한 교통사고로 평생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살았던 프리다 칼로.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에 '삶이여, 만세'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오롯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기에 오히려 삶에 집착하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이라 적혀 있었다 한다. 화가들 생의 마지막 그림으로 삶을 유추하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고, 작가는 글로 말하며,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화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에는 어떤 특별한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생각해봄직하다. 처음 그린 그림보다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에 그가 더 많이 담겨져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더보기 '영생'이라는 아름다운 지옥, 택할 것인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오래된 리뷰] 아무런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영원한 삶을 얻을 것인가. 너무 극과 극에 있지 않은가. 누구라도 영원한 삶을 선택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럴 것 같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도 그랬고, 중세의 연금술사들도 그랬다. 많은 종교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 못지않게 영원한 삶에 대해 수많은 콘텐츠들을 양산해냈다. 그 중 하나가 '뱀파이어'다. 그들은 햇빛에 노출되지 않거나 동족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이상, 영원한 삶을 보장받는다. (그들의 신체 능력은 발군을 자랑하기에 동족이 아니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뱀파이어가 된 당시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유지하기에, 경우에 따라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녕 뱀파이어.. 더보기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회복하는 인간> [한국 대표 소설 읽기] 한강의 한 자매가 있다.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언니는 화려한 외모에, 건실하고 잘생긴 형부와 결혼해 누구라도 부러워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동생은 평범한 외모에,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고, 신통찮은 전공을 택해 불안정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언니를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언니가 동생을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매 사이는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지고 죽을 때까지 좁혀지지 않는다. 조만간 언니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언니를 보내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 아니, 일부러 고통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자 방식이라는 듯이. '고통'과 '아픔'이라.. 더보기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 죽음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건 '거짓' <이반 일리치의 죽음> [지나간 책 다시 읽기] 죽음은커녕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할 나이에 죽음을 걱정했던 것 같다. 자그마치 초등학교 5학년 12살 때였다. 아마 어느 정도의 삶을, 되풀이 되는 삶의 연속을 경험해본 나이였을 테니까, 이 삶의 끝을 상상해봤을 것이다. 한 때 매일 밤 눈만 감으면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머리에 든 게 많지 않고 생각도 짧으니 죽음에 대한 한 면만, 그리고 한 가지만 물고 늘어졌다. 죽음은 두렵고 무섭고 나쁘고 아프고 피하고 싶은 것, 부정(不淨) 그 자체였다. 그 끝이 어떻게 될까, 끊임없이 반복해서 생각하게 되니 미처버릴 것만 같았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자꾸 생각하.. 더보기 비극과 고통에서 행복과 사랑을 끄집어내다 <젖은 모래 위의 두 발> [서평] 책을 읽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나와 다른 삶을 구경하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한다. 나보다 못한 삶 또는 나보다 나은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다. 아무래도 나보다 나은 삶보다는 못한 삶을 들여다보는 게 편할 것이다. 그래서 나은 삶은 거의 자기계발 영역으로 빠졌다. 반면 못한 삶은 소설이나 에세이, 자기계발에서 예전 삶으로 다방면으로 가능하다. 은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것도 치명적인 비극과 불행을 그리고 있다. 못한 삶의 정도가 한계를 넘어선 듯 보인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필력뿐 아니라 치명적인 비극과 불행에 의한 압도적인 슬픔보다 그보다 더한 사랑과 용기 덕분이다. 이제까지 봐왔던 최루성 콘텐츠와는 결을 달리한다. 서서히 죽어가는 두 아이와 함께 하게 .. 더보기 인간의 구원과 멕시코 역사의 질곡을 짚어보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서평] 마야, 아즈텍 등의 당대 최고 문명을 이룩하고, 스페인의 일방적 식민지 통치 시대를 거쳐, 미국의 영향을 받은, 다분히 혼합적인 문화 색체를 띠고 있는 나라 멕시코. 그래서인지 멕시코 하면 어딘지 불안하고 위험한 나라라는 편견과 함께, 정열적이고 충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야말로 온갖 것들을 들이부어도 다 녹여버리는 용광로와 같은 나라이다. 우리나라 소설가 구광렬의 는 그런 멕시코의 특징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겼다. 사실 멕시코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충동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 평화롭지만 불안이 숨 쉬고 있는 공간,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정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그 중심에 유학생 강경준이 있다. 소설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유학생 강경준이 어이없기 짝이 없는 이유.. 더보기 죽음 사회 한 모퉁이를 책임지고 있는 이가 있어 든든하다 <심야식당> [리뷰] 신주쿠 뒷골목, 남들은 퇴근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자리에 들 때쯤인 12시에 문을 여는 곳이 있다. 이름하야 '심야식당'. 7시까지 문을 여는데 은근히 사람이 많다.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는 뭐든 만들어주기 때문일까? 음식이 맛있기 때문일까? 이성이 잠들고 감성이 깨어나는 새벽녘 시간이기 때문일까? 안 가봐서 안 먹어봐서 알 순 없지만, 매력 하나는 철철 넘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식당이 있는 걸로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술장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에 집이 아닌 밖에 있으면 술밖에 찾을 게 더 있겠나. 요즘엔 24시간 하는 가게들도 많던데, 그런 곳에는 어떤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겠다. 반면 '심야식당'은 정확히 12시부터 7시까지 '음식'을 만들어준다. 언제나 사람이 있는.. 더보기 이전 1 ···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