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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회복하는 인간> [한국 대표 소설 읽기] 한강의 한 자매가 있다.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언니는 화려한 외모에, 건실하고 잘생긴 형부와 결혼해 누구라도 부러워할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동생은 평범한 외모에,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고, 신통찮은 전공을 택해 불안정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언니를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언니가 동생을 질투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매 사이는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지고 죽을 때까지 좁혀지지 않는다. 조만간 언니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동생은 그렇게 언니를 보내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 아니, 일부러 고통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자 방식이라는 듯이. '고통'과 '아픔'이라.. 더보기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 죽음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건 '거짓' <이반 일리치의 죽음> [지나간 책 다시 읽기] 죽음은커녕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할 나이에 죽음을 걱정했던 것 같다. 자그마치 초등학교 5학년 12살 때였다. 아마 어느 정도의 삶을, 되풀이 되는 삶의 연속을 경험해본 나이였을 테니까, 이 삶의 끝을 상상해봤을 것이다. 한 때 매일 밤 눈만 감으면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머리에 든 게 많지 않고 생각도 짧으니 죽음에 대한 한 면만, 그리고 한 가지만 물고 늘어졌다. 죽음은 두렵고 무섭고 나쁘고 아프고 피하고 싶은 것, 부정(不淨) 그 자체였다. 그 끝이 어떻게 될까, 끊임없이 반복해서 생각하게 되니 미처버릴 것만 같았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데 자꾸 생각하.. 더보기
비극과 고통에서 행복과 사랑을 끄집어내다 <젖은 모래 위의 두 발> [서평] 책을 읽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나와 다른 삶을 구경하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한다. 나보다 못한 삶 또는 나보다 나은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다. 아무래도 나보다 나은 삶보다는 못한 삶을 들여다보는 게 편할 것이다. 그래서 나은 삶은 거의 자기계발 영역으로 빠졌다. 반면 못한 삶은 소설이나 에세이, 자기계발에서 예전 삶으로 다방면으로 가능하다. 은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것도 치명적인 비극과 불행을 그리고 있다. 못한 삶의 정도가 한계를 넘어선 듯 보인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필력뿐 아니라 치명적인 비극과 불행에 의한 압도적인 슬픔보다 그보다 더한 사랑과 용기 덕분이다. 이제까지 봐왔던 최루성 콘텐츠와는 결을 달리한다. 서서히 죽어가는 두 아이와 함께 하게 .. 더보기
인간의 구원과 멕시코 역사의 질곡을 짚어보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서평] 마야, 아즈텍 등의 당대 최고 문명을 이룩하고, 스페인의 일방적 식민지 통치 시대를 거쳐, 미국의 영향을 받은, 다분히 혼합적인 문화 색체를 띠고 있는 나라 멕시코. 그래서인지 멕시코 하면 어딘지 불안하고 위험한 나라라는 편견과 함께, 정열적이고 충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야말로 온갖 것들을 들이부어도 다 녹여버리는 용광로와 같은 나라이다. 우리나라 소설가 구광렬의 는 그런 멕시코의 특징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겼다. 사실 멕시코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충동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 평화롭지만 불안이 숨 쉬고 있는 공간,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정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그 중심에 유학생 강경준이 있다. 소설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유학생 강경준이 어이없기 짝이 없는 이유.. 더보기
죽음 사회 한 모퉁이를 책임지고 있는 이가 있어 든든하다 <심야식당> [리뷰] 신주쿠 뒷골목, 남들은 퇴근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자리에 들 때쯤인 12시에 문을 여는 곳이 있다. 이름하야 '심야식당'. 7시까지 문을 여는데 은근히 사람이 많다.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는 뭐든 만들어주기 때문일까? 음식이 맛있기 때문일까? 이성이 잠들고 감성이 깨어나는 새벽녘 시간이기 때문일까? 안 가봐서 안 먹어봐서 알 순 없지만, 매력 하나는 철철 넘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식당이 있는 걸로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술장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새벽에 집이 아닌 밖에 있으면 술밖에 찾을 게 더 있겠나. 요즘엔 24시간 하는 가게들도 많던데, 그런 곳에는 어떤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겠다. 반면 '심야식당'은 정확히 12시부터 7시까지 '음식'을 만들어준다. 언제나 사람이 있는.. 더보기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서평]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다. 10살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 20년 동안 혼자 사신 건데, 그럼에도 외할아버지는 정말 건강하셨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쓰려지셔서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건강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서 다시금 쓰러지시곤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때 집안 어른들은 외할아버지를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된 모든 가족들이 한 번씩 왔다 갈 때까지 살아 계셨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이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당신 생의 마지막에 만족하셨을까? 혹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가족들을 원망하셨을까?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 더보기
<화장> 명백한 의도, 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 [리뷰] 임권택 감독에게는 언제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세계 영화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102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로 단성사 단관 서울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흥행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으며, 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예술적으로도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할까. 그렇지만 최근에는 조금 주춤하는 모습이 보인다. 특히 흥행 면에서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데, 어떤 작품이 100번째 작품인지 알지도 못하는 정도이다. 그의 100번째 영화는 이라고 하는데, 소리꾼 이야기로 13만 명의 흥행 성적을 남겼다. 거장의 작품을 단지 흥행 성적으로 재단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상업 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임권택 감독.. 더보기
<자기록> 조선 시대 여성이 칼 대신 붓을 든 이유는? [서평] 주자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왕조. 그리하여 유교적 관습은 사회 곳곳에 침투해 모든 이들의 삶을 지배했다. 특히 여성에게는 유교적 부덕을 가르치고 이의 실천을 강요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게 했다. 그래서 여자는 오직 집안에서 가족을 위한 가사 활동에 힘쓰고, 부모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정절은 제도적으로 강요 되었다. 이렇게 유교적 부덕을 내세워 여성의 삶을 옭매는 것 중 가장 잔인한 짓이 있었으니, 남편이 죽은 뒤에 여자가 따라 죽어야 한다는 규범이었다. 이들을 '열녀'라고 칭하는데, 열녀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는 국가 차원에서 표창이 내려질 뿐만 아니라 세금 감면, 부역 면제 등의 혜택까지 주어졌다고 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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