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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고독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절규'의 화가 <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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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뭉크>


<뭉크> 표지. ⓒ아르테



에드바르 뭉크, 우리에겐 전 세계 최고의 미술품 중 하나인 <절규>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뭉크는 몰라도 <절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12년 소더비 경매를 통해 당시 역대 최고가인 약 1400억 원에 판매되면서 예술적 평가는 최고점을 찍었고,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이 그림 하나로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가 양산되는 걸로 보아 대중적 평가 역시 최고점을 찍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건 <절규>이지 결코 뭉크는 아니다. <절규>가 아닌 뭉크를 상상해보았는가? 아니, 뭉크가 언제적 사람이고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활동하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한가? 단언컨대, '아니오'라는 대답이 주를 이룰 것이다. 필자부터, 뭉크가 노르웨이의 국민화가이고, 노르웨이는 물론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등에서 활동했다는 것,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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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라는 타이틀과 본인 삶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죽음, 불안, 고독' 등의 주제에 깊이 천착했다는 것과 생전 그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있었고 사후 그의 작품과 관련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는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빈센트 반 고흐나 한 세대 후에 활동한 파블로 피카소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누구나 알 정도는 아닌 것이다. 


이번 기회에 에드바르 뭉크에 대해 수박 겉 핥기 정도만이라도 알아보고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뭉크>를 펴들었다. <모차르트>에 이어 시리즈 8번째로 나온 책으로, 거장의 삶과 예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다. 시리즈 차기작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나온다는데, '음악'의 모차르트와 '미술'의 뭉크와 '문학'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까지 서평으로 소개해볼 예정이다. 


예술가적 키워드들


<뭉크>를 통해 들여다본 뭉크의 삶은 그야말로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적' 키워드들로 가득 차 있다시피 하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열세 살 때 누이 소피에가 요절했으며 20대 파리 유학 시절엔 아버지까지 사망했거니와 그 자신 어린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기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의 그림 주요 모티브가 삶과 죽음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정신병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며 근원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에게 '외로움'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키워드였을 텐데, 그런 그에게도 '사랑'의 시절이 있었다. 밀리, 율, 툴라가 그들인데, 뭉크는 그들과의 사랑 덕분에 다양한 자극을 받으면서도 그들과의 이별로 외로움과 상실감에 빠져 더욱 침잠하고 '고독'해졌다. 


예술가 하면 으레 따라 생각하게 되는 이런 종류의 정신이상적 키워드들은, 뭉크의 삶뿐만 아니라 작품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공포, 불안, 죽음, 외로움, 고독 등이 태반을 이룬다. 동시에 그의 작품 활동에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예술 절정기에 해당하는 작품들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하겠다. 


노르웨이에서 거주하기도 하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자연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사색과 고독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긴긴 겨울이 지나면 봄과 여름과 가을이 순식간에 찾아오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노르웨이인들은 짧은 여름을 최대한 즐긴다고 하는데, 그 방법이 자연 속에 고립되어 사색과 고독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인 DNA에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 역시 노르웨이인 뭉크도 자의 반 타의 반 고독을 즐기는 한편 고독과 싸웠던 게 아닐까 싶다. 


뭉크의 삶과 예술


화가로서의 뭉크는, 당대 화단과 정반대에 있다시피 한 길을 갔다. 노르웨이는 자신의 길을 가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베를린과 파리에서 주로 활동하였는데, 평단으로부터 수없이 많이 혹평의 융단폭격을 당했다. 초기에 살짝 주춤했을 뿐 이후에는 오히려 그걸 즐겼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럴수록 뭉크는 이단아로 더욱 유명해졌고 뭉크 또한 그런 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한편 유명해지길 바랐다. 그런 일환으로, 뭉크는 노르웨이에선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에, 베를린에서는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 참여하여 기존 사회와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함께 했다. 


그런가 하면 뭉크를 흔히 표현주의 화가로 수식하는데, 저자는 표현주의라는 현대 미술 운동에 결정적인 초석을 놓았다는 게 정확하다고 평가한다. 그의 대표작 <절규>를 놓고 수많은 '주의'들이 달라붙었는데, 독일 낭만주의, 상징주의, 종합주의 또는 나비파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어느 사조와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바, 자신의 경험을 형과 색의 왜곡을 통해 시각화한 뭉크의 그림들은 오히려 당시 새로운 움직임을 갈구하던 독일의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뭉크는 시대를 앞서 갔던 진정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절규>와 더불어 뭉크를 대표하는 작품은 <생의 프리즈>라는 연작이다. 1900년대 초 재기를 꿈꾸며 베를린으로 돌아온 뭉크는 오래전부터 구상한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인생'의 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뭉크의 노트'를 통해 <생의 프리즈>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살짝 들여다보자. "나는 그 그림들을 모아보았을 때, 각각의 그림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들이 전시되자 그림들 사이에서 하나의 울림이 터져 나왔고, 그림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교향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되었다."


뭉크에게도 인생 제2막이 찾아온다. 노르웨이 아닌 외국을 전전하며 유럽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뭉크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건강과 정신의 모든 측면에서 무너져내렸다. 그러던 차 40대 중반에 접어든 1909년 노르웨이로 돌아와 정착하게 된다. 방황과 불안, 갈등과 피폐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맞이한 예술가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과 정착이 필요했던 때였던 것이다. 뭉크 스스로도 그렇게 판단했던 게 분명하다. 


제2막 인생에서도 여전히 고독했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고독했던 뭉크, 그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공감 어린 동질감 또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이 불안과 우울이 아닌가. 반대로 말해 불안과 우울이야말로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뭉크의 그림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적확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뭉크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이 곧 나이고, 그림을 온전히 채우는 배경과 분위기 또한 곧 나의 일상과 머릿속이며, 그림을 그린 뭉크의 삶이 나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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