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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김훈 작가의 경탄스러운 글로 여러 세계와 삶을 경험하다 <남한산성> [지나간 책 다시읽기] 김훈 작가의 김훈 작가의 글은 우직하다. 밍기적 거리지 않고 직진한다. 그러면서도 주위를 살필 줄 아는데, 어느 글보다도 수려하게 대상을 그려낸다. 공수(攻守) 양면을 다 갖춘 작가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그의 글은 따라하고 싶고 그의 숙고를 닮고 싶고 무엇보다 그의 글을 읽고 싶다. 그의 글을 읽기 전의 설렘은 글의 끝까지 함께 하고, 그의 글을 마치면서 찾아오는 여운은 아주 오래간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김훈을 로 시작했다. 20살 남짓의 어린 나이였으니 단번에 읽어내리지 못하고 자꾸만 서게 되는 그 소설을 완독하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걸렸을 건 자명한 일이다. 몇 번의 도전 끝에 2년여 만에 완독해냈던 게 기억난다. 한마디로 가늠해내기 힘든 소설이고 소설가이다. 이후 그의.. 더보기
압도적인 심리묘사와 여운... 특별한 소설 <나를 보내지 마> [지나간 책 다시읽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많은 소설을 읽다 보면, '이건 진짜다' 하고 감탄하고 가슴 속에 깊숙이 저장시키는 작품이 있다. 그런 소설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읽게 되어 있는데, 나의 영혼이 뒤바뀌거나 몸에서 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한 번 영혼을 건드린 작품은 앞으로도 더욱 거대한 무엇을 선사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얼마 전 발표한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2005년작 는 이제야 나에게 그런 작품, 나의 영혼을 건드렸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거대한 흔적을 남길 게 분명한 작품이 되었다. 그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와 분위기, 압도적이기까지 한 세밀한 심리묘사는 이전까진 느끼지 못한 그것이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분명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 더보기
옐로 저널리즘의 폐해를 넘어선 그 폭력의 자화상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지나간 책 다시읽기]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에겐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언론과 신문의 최고 명예와 같은 '퓰리처상'이 조셉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제정되어 100년 넘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반면 언론과 신문의 최악 수치와 같은 '옐로저널리즘'이 퓰리처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역시 100년 넘게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옐로저널리즘은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악용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찌라시로 돈을 벌려는 자들을 일컫는데, 자본주의 팽창의 폐해라고 볼 수도 있다. 자본가들의 언론을 이용한 광고 수집에 언론들이 놀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들끼리의 경쟁에서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기사를 보낼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옐로저널리즘은 개인을, 사회를, 나라를, 시대를 속절없이 망쳐.. 더보기
'사람'이 보이는, 60년 전의 놀라운 파격 로맨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지나간 책 다시읽기] 프랑수아즈 사강의 종종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목격한다.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우린 그런 작품을 보고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라고 평하곤 한다. 가령, 1960년대 만들어진 영화 는 최소 30년 후에 만들어졌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만했다. 비쥬얼적 요소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당한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기시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1960년대가 아닌 16세기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을 아주 친숙하게 읽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전체에 흐르는 감각이나 생각 등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나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거리감이나 기시감은커녕 현재를 사는 우리보다 더 감각적이고 생동하는 소설이 있다.. 더보기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이전의 최초 사회파 소설 <점과 선> [지나간 책 다시읽기] 마쓰모토 세이초의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추리소설가가 아닌)들이다. 추리, 미스터리, 서스펜스 장르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독자도 이들의 소설 한 편쯤은 접해봤음직하다. 30여 년 동안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더욱 대단한 건 장르 작가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거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장르 소설을 제외한 소설이 거의 죽다시피 한 일본 소설계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장르 소설을 엄연히 소설의 주류로 받아들이는 일본 소설계의 넓은 아량(?)을 엿볼 수 있겠다고도 하겠다. 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우리는 이들을 '사회파 소설가'라 칭한다. 추리를 위한 추리, 미스터리를 위한 미스터리가 아닌, 사회 구조를 테마로 하되 그 .. 더보기
지독한 생존 투쟁기이자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의 종말기 <재와 빨강> [지나간 책 다시읽기] 편혜영 소설가의 C국에 있는 본사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 방역업체 직원 '그',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중인 전염병 때문에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이는 그는 입국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입국했고 본사 출근하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있지만 열흘 후엔 문제 없을 것 같다. 그가 자리잡은 곳은 '4구'. 쓰레기로 뒤덮혀 참을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이곳은, 사실 쓰레기매립지를 재개발해서 만든 외딴섬이다. 전염병 때문에 고립된 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그는, 어느 날 모국으로부터 아내가 처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얼마 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으로 들이닥치려 하자 그는 자신이 아내 살인 용의자로 몰린 것이라 생각하고 아파트먼트 4층에서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린.. 더보기
한국을 떠나야 할까, 한국을 바꿔야 할까 <한국이 싫어서>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0년대 들어 한국을 강타한 신조어 중 하나가 '헬조선'인데, 아무도 지옥에서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희망 따윈 찾을 수 없는 지옥 같은 한국을 탈출하는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남들처럼만 살기 위한 피나는 노력, 인생 한방 역전을 위한 로또, 이전까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의 포기, 헬조선 땅을 떠나는 이민. 이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건 무엇일까. 노력은 남들도 다 하고, 로또는 가능성이 희미하다. 반면 포기가 가장 쉬운 것 같다. 이민은? 가능성이 농후한 것 같다. 10여 년 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었다. 헬조선 탈출의 의미 부여는 전혀 아니었고, 외국에서 살며 일하고 놀고 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였다. 이왕이면 공부도 하면 좋고. 그런데 요즘 워킹홀리데.. 더보기
행복이란 무엇인가? 벤은 파괴자인가, 소외자인가? <다섯째 아이> [지나간 책 다시 읽기] 도리스 레싱의 1960년대,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수적이고 답답하며 까다롭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곧 결혼한 그들은 천생연분이었고,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나가길 원했다. 굉장히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을. 많은 자식을 낳아 키우며 주기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가족들을 불러 함께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반대를 무릅쓰고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집을 산다. 큰 집을 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무엇보다 많은 자식을 낳는 것에 반대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너무 서두른, 그래서 모든 걸 다 움켜쥐려 한다는 인상. 기어코 그들은 많은 자식을 낳는다. 막상 그들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심취한다. 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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