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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압도적인 심리묘사와 여운... 특별한 소설 <나를 보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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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소설 <나를 보내지 마> 표지 ⓒ민음사



많은 소설을 읽다 보면, '이건 진짜다' 하고 감탄하고 가슴 속에 깊숙이 저장시키는 작품이 있다. 그런 소설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읽게 되어 있는데, 나의 영혼이 뒤바뀌거나 몸에서 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한 번 영혼을 건드린 작품은 앞으로도 더욱 거대한 무엇을 선사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얼마 전 발표한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2005년작 <나를 보내지 마>는 이제야 나에게 그런 작품, 나의 영혼을 건드렸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거대한 흔적을 남길 게 분명한 작품이 되었다. 그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와 분위기, 압도적이기까지 한 세밀한 심리묘사는 이전까진 느끼지 못한 그것이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분명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SF적 요소가 다분한 성장 소설로 분류할 만하다. 거기엔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사상 초유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작품에서 참으로 많은 걸 느끼고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는 여운에 한동안 잠식당할 게 분명하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비인간 존재들


'헤일셤'이라는 기숙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여느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당연히 학교도 별다른 게 없다. 우리가 보기엔 그곳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정체는 인간이 아닌 클론, 인간에게 장기이식을 하는 목적으로 복제되어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다. 헤일셤은 클론만을 위한 학교인 것이다. 


지금, 캐시는 그곳 헤일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코티지에서 간병사 교육을 받은 후 회복 센터에서 간병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간병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장기이식을 한 클론으로, 그녀는 학창 시절 가장 친하게 진했던 루스와 토미를 간호하고 또 여지 없이 떠나보낸다. 그녀도 결국 장기이식 후 죽음을 맞게 될 운명이다. 


소설은 캐시의 지금과 캐시가 회상하는 헤일셤, 코티지, 회복 센터 간병사 시절을 오간다. 그녀와 함께 한 이들은 그녀가 간병하고 또 떠나보낸 루스와 토미다. 그들은 함께 클론으로선 절대 얻지 못할 평범한 생활에서 기인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의혹들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체념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아간다, 살아간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지만 참으로 인간적인 울림을 준다...


그들이, 클론들이 인간적으로 보일수록 인간적인 울림을 줄수록 미안하고 부끄럽고 슬픈, 복잡하기 그지없는 마음이다. 그들은 절대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길, 죽음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인간의 영원한 생을 위해 자신을 내주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소설로만 볼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존재의 삶을 엿본다. 그들은, 아름답게 슬프고 슬프게 아름다운, 너무나도 인간적인 비인간 존재다. 


정녕 특별한 소설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에 관한 작품을 무수히 봐왔다. 그 작품들에서 그들은 여지없이 다양한 형태의 존재부정, 현실부정을 통해 일종의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인간이 되려 하고, <아일랜드>에서는 탈출을 하려 하는 게 그 대표적 모양새다. 


하지만, 그런 존재 부각의 모양새는 오히려 그들의 존재 주체의 측면에 소홀하기 쉽다. 그들은 거대 담론과 논쟁의 소모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반면,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려내는 <나를 보내지 마> 속 클론들의 삶은 다른 무엇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충분히 격렬한 논쟁의 한 담론을 도출해낼 수 있으면서도 그런 방향성을 견지 하지 않고 다분히 안으로 안으로 천착함으로써 궁극적인 성찰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클론의 시선을 통해 소외된 모든 존재,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 그리고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나라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해본다, 아니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 존재이니까. 그들을 그들의 손이 아닌 인간의 손에 맡길 의무가 인간에게 있고, 그들을 신의 손에 맡길 권리는 인간에게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평범한 삶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능력도 없다. 


그들에게 '학창시절'의 추억을 준 헤일셤의 존재는 그래서 특별하다. 우리가 그들의 학창시절을 '성장'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작가의 능력 또한 특별하다. 이 소설로 조금은 세상을 '다르게'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 또한 특별할 것이다. 특별한 존재이지만 평범함을 소원하는 클론들도 평범하기에 가능할 수 있는 특별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보내지 마>는 정녕 특별한 소설이다. 


나를 보내지 마 - 10점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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