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황정민, 최민식의 연기 중 누가 박수를 받을까

반응형


[리뷰] 세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영화 <신세계> 포스터. 세 명 전부 반쯤 가려진 모습이 그들의 앞 날을 예고케 한다.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영화 <신세계>(박훈정 감독)는 분명 몇몇 영화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갱스터 무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시리즈, 무너져가던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 시리즈, <무간도>에 이어 홍콩 누아르의 새로운 계보를 이어간 <흑사회> 시리즈 등등. 

공교롭게도 모두 시리즈로 나온 영화들인데,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신세계>의 이야기가 긴 시나리오의 중간 부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시나리오의 전반부는 기업형 범죄조직 '골드문'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고, 후반부는 새로운 수장을 맞은 '골드문'의 뒷이야기와 경찰의 반격을 다룬다고 운을 뗐다.

즉, 3부작이라는 말인데 잘 되면 속편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내용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형식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앞의 영화들도 성공했으니 속편이 나왔을 것이고, 이런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니만큼 <신세계>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신세계>는 갱스터 누아르의 '신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확연히 나뉜다. 그리고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갱스터 누아르 장르의 장점을 어느 정도 잘 이어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질 떨어지는 경찰의 수작과 조폭의 의리

영화는 이자성(이정재 분)이 조직원 한 명을 프락치로 몰아서 잔인하게 처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잔인함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어딘지 모르게 탐탁지 않아 하는 이자성의 모습을 보며 복선을 깔아둔 듯한 느낌이다. 

얼마 후, 이자성이 속한 조직이자 거대 그룹인 '골드문'의 회장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이에 후계자 그룹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알력 싸움에 들어간다. '골드문'은 죽은 회장의 오른팔인 이중구(박성웅 분)계와 정청(황정민 분)계와 비록 이인자지만, 힘이 없는 장이사계로 나뉘어 있었다. 이자성은 정청과 의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지만, 사실 그는 경찰이었다. 8년 동안 강과장(최민식 분)의 스파이다. 

범죄 조직에 경찰의 스파이가 잠입해 있다, 조직의 차기 대권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있다는 스토리는 <무간도>와 <흑사회>를 연상한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의지가 개입된, 오히려 노리고 있는 수 같다. 장르 영화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이왕이면 최고의 시너지를 노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경찰의 철저한 개입을 보여주면서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무간도> 같이 경찰과 범죄 조직 간의 다툼을 넘어, <흑사회>의 범죄 조직 내부의 다툼을 넘어 서로 얽히고 설힌 대치 상황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골드문' 내부의 3파전 모두를 교묘히 이용해 서로 와해시키고 그 자리에 이자성을 올려놓으려는 강과장의 '수작'이었다. 

경찰이 하는 행동에 '수작'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그가 하려는 짓이 정말 질 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비록 잔인한 행동을 일삼는 정청이지만, 자성에게는 친형제처럼 대해주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판임에도 그가 스파이라는 것을 눈감아 주는 행동에는 왠지 모를 감동이 인다.

질 떨어지는 강 과장의 수작. "나 이거 참... 내가 아무리 조폭이 만치로, 그렇게 질 떨어지는 놈으로 보으요?"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여기에는 아마도 감독의 의도가 또 한번 들어갔을 터. '선(善)'을 상징하는 경찰의 강과장의 '악(惡)'한 행동과 '악(惡)'을 상징하는 범죄 조직의 정청의 '선(善)'한 행동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 이를 표현함에 있어서 황정민이 분한 정청의 캐릭터가 최민식이 분한 강과장의 캐릭터보다 훨씬 더 살아있다고 느껴진다. 순수한 악과 순수한 선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와중에도 중심을 잃은 황정민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원했던 신세계

영화는 정청이 강과장의 계략을 역이용해 이자성을 비롯한 경찰의 스파이를 알게 되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들이 원했던 신세계는 무엇일까. 감독은 각각 캐릭터에 부여한 공간으로 이를 설명한다. 모든 계획을 설계한 강과장의 사방이 꽉 막힌 더러운 물의 낚시터(?). 그는 떡밥을 던져놓고 뭐라도 걸리기를 기다린다. 뭐가 걸리든 상관없다. 배불리 먹으면 그 뿐. 그가 원했던 신세계는 범죄 조직이 없는 유토피아. 하지만 그는 안다. 알지만 행한다. 유토피아를 위한 디스토피아를.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차와 비행기 안은 정청의 공간. 그는 순수하다. 악의 결정체이자 선의 결정체다. 그가 원했던 신세계는 그냥 이대로 자유롭게 사는 거다. 경찰과도 조화롭게 살고 싶어한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그러다 죽기 전에 깨달았을까? 독하게 굴어야 한다는 걸. 그가 원했던 신세계는 이자성에게로 이어진다. 

사방이 꽉 막힌 접견실은 이자성의 공간. 그는 정체도 모르는 접견자와 앉아서 바둑을 둘 수 있을 뿐이다. 이쪽 아니면 저쪽 뿐인 흑과 백의 세계다. 정적인 그에게 유일하게 동적인 모습을 선사하는 이는 정청. 러나 자성은 경찰이고 정청은 범죄자일 뿐이다. 그게 대수랴? 죽고 싶지 않으면 선택을 해야한다. 그의 선택은 어느 곳일까.

끝없는 무간지옥

끝없이 이어지는 경찰의 스파이 노릇에 지쳐가는 이자성은 강 과장에게 말한다.

"약속했잖습니까... 이번엔 진짜 끝이라고!" 

끝없이 이어지는 경찰 노릇에 지쳐가는 강 과장은 고 국장에게 말한다.

"이번 일 끝나면 사표쓰겠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의 줄다리기에서 힘들어하는 자성에게 정청이 죽어가면서 말한다. 

"독하게 굴어...그래야 니가 살어"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들의 집합을 보고 있자니, '무간지옥(無間地獄)'이 떠오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8열지옥 중에 가장 가장 낮은 층에 있으며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괴로움을 받는 일이 사이도 없이 끊임 없기 때문에 무간(無間)으로 불리운다. 이들이 가고 싶었던 신세계는 방식은 달랐을지 몰라도 그 끝은 분명한 듯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의 탈출. 무간지옥에서의 탈출이다. 

"약속했잖습니까... 이번엔 진짜 끝이라고!"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무간도> 시리즈를 통해 많이 알려진 불교의 '무간지옥'은 오히려 이 영화 <신세계>에 맞지 않을까.(혹시 감독은 여기서도 의도한 것이 아닐까. 명나라 때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의 역사적 의미를 가져와 모티브로 삼은 게 아닐까.)

갱스터 누아르에서 시작해, 개개인의 욕망, 조직 집단 간의 욕망을 넘어, 선과 악의 뒤섞임을 지나 신세계까지. 어떤 이들은 죽음의 신세계를 영접했고, 어떤 이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당신은 어떤 신세계를 향해 가는가? 누구나 고통없는 세계에 도달하고 싶을 터인데. 


"오마이뉴스" 2013.3.4일자 기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