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의 <플라이트>'쳇 베이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 음악가이자 트럼펫 연주가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재즈계의 슈퍼스타이자 영웅이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음악적 요소로만 봤을 때 그는 두말할 나위 없는 최고의 위치에 서 있지만, 그의 삶을 반추해 보면 정 반대에 포지션 되어 있다. 오죽하면 그에 관한한 제일 유명한 전기의 부제가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제목은 <쳇 베이커>(을유문화사))이겠는가. 그의 노래는 천사 같지만, 그의 삶은 악마와 같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마약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천사가 불러주는 듯한 연주를 했고, 마약을 구하기 위해 아내로 하여금 다른 남자에게 몸을 팔게 했다고 한다. 자,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쳇 베이커라는 악마 같은 사람과 그의 천사 같은 연주를 따로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천사 같은 연주라도 악마 같은 사람에 의해서였으니 악마의 손길이 닿은 듯 폄하해야 하는가? 반대로 악마 같은 사람이라도 천사 같은 연주를 했으니 그 삶에도 천사의 숨결이 닿은 듯 대해야 하는가? 이를 대하고 느끼는 감정은 단연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는 여기서 통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역사상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유형의 대표 격을 보여드린 것뿐이다. 지금 주위에도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실력은 가히 최고를 넘어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지만, 성격이 너무나도 괴팍하거나 도저히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라거나 그 삶 자체가 너무도 '쓰레기' 같다거나. 어느 쪽에 중점을 둔다고 해도 서로 주객전도라는 말을 쓸 수 있을 듯하다.
영웅의 악마 같은 삶
영화 <플라이트>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플라이트>의 주인공 윕 휘태커(덴젤 워싱턴 분)도 이러한 인물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파일럿으로, 그 탁월한 판단력과 순발력은 가히 일품이다. 그 뿐이랴? 호탕하고 털털한 그의 성격은 주위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다. 그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이다. 물론 파일럿이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숨겨야 한다.
비가 많이 쏟아지고 폭풍이 치던 어느 날, 그는 어김없이 전날 술과 마약을 잔뜩 한 채로 비행기를 운전한다. 이 뿐이랴? 비행을 하던 도중에도 몰래 음료수에 술을 타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비행기는 엄청난 난기류 속에서 기체 고장으로 추락한다.
여기서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인지? 전날 술과 마약을 한 것도 모자라 비행 도중에도 술을 마셨으니 사고가 난 거 아니겠어? 그런데 이 사이에 하나가 빠져 있다. 어느 파일럿도 하지 못할 솜씨로 그는 대참사의 현장에서 대다수의 승객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그는 영웅이 된 것이다. 술과 마약에 찌든 악마 같은 삶을 살던 이가 영웅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그의 인생은 소용돌이친다. 비행기 추락을 자세히 조사하게 되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알코올 중독자의 실체가 밝혀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영화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 <플라이트>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그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영웅이 되어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오히려 전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 휘태커.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영웅에서 중독자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승객들을 살린 영웅이었지만, 그 이전에 비행기가 추락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그가 사실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과 비행 전날과 당일의 음주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쳇 베이커'의 삶과 예술 사이에서 느꼈을 법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휘태커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린 영웅인가, 술과 마약으로 실패한 삶을 살아가는 중독자인가. 영화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추락 원인 규정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추락의 원인을 휘태커의 음주라고 지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휘태커의 탁월한 변호인은 추락의 원인이 기계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휘태커를 안심시킨다.
휘태커가 할 일은 하나. 더 이상 음주를 하지 않고만 있으면 되었다. 그가 음주를 한 이후의 행동이 기계의 고장보다 더한 추락의 원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법정에서 이를 증명해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었다.
참고 참고 또 참았던 휘태커. 하지만 결국 일을 내고 만다. 하필 법정에 서야할 전날, 술을 진탕 먹고 완전히 뻗어버린 것이다. 그는 술에 만취한 상태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술김에인지 아니면 마음먹은 대로인지 법정에서 모든 걸 실토한다. 결국 기계의 고장 보다 그의 음주가 추락의 더 큰 원인이라는 게 판명되고 만 것이다.
영화 <플라이트>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중독자들의 삶
영화는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의 전작인 <캐스트 어웨이>를 연상케 하는 스펙타클한 비행기 추락 장면을 시작으로, 휘태커를 비롯한 중독자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그리고 법정물로 까지 이어진다. 영화는 휘태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영웅적인 그의 모습을 보여준 뒤, 그의 삶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플라이트>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그는 사실 결혼을 해 아이까지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역시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불화로 이혼을 했고, 그의 가족들은(이었던) 그를 경멸한다. 영웅이고 아니고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휘태커는 한낱 '인간쓰레기'에 불과했다. 영웅이 되고 나서도 중독자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알게 된 다른 '중독자' 여성인 니콜(캘리 라일리 분)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었을까, 연민이었을까. 그들은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공유하며 더욱 친해진다.
니콜과 휘태커는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 착실한 삶을 살아간다. 아니, 그런듯했다. 하지만 휘태커는 주위에서 계속 떠들어대는 비행기 추락과 자신의 알코올 중독 연관 뉴스를 보고 참을 수 없었다. 그가 달아날 곳은 술과 마약뿐이었다. 자신 또한 한 때 중독자였기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하지만, 계속되는 휘태커의 행동에 참을 수 없었고 집을 나간다.
영화 <플라이트>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중독자의 삶은 파국으로 치닫기 일쑤이다. 영화 제목처럼 어디론가 날아서 도망가려 해도, 장애물을 뛰어넘으려 해도 '중독'은 항상 따라다닌다. 영화에서는 휘태커와 니콜을 상징적으로 내세웠지만 사람은 누구나 중독이 상징하는 '핸디캡'을 지니고 살아간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주인공들은 '미친' 사람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모두 '미친' 사람들이다.사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단지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은 '아픈'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 <플라이트> 역시 그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영웅이자 중독자라는 이미지를 집어 던지고 그를 바라본다면, 그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단지 남들보다는 조금 더 외롭고 아프고 상처받아서 도망가 숨을 곳이 술과 마약인 사람. 어떤 사람들은 술과 마약 대신, 여자 또는 남자에게로, 일, 게임, 음식, 도박에게로 도망가지 않는가? 중독자의 삶이라고 특별하다거나 우리와는 '다른' 또는 '틀린'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워 하지마
휘태커에게 세상은 두려운 존재였던 듯하다. 그런 세상에 갑자기 영웅이 되어 완전한 벌거숭이인 채로 내던져진 것이다.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망쳤다. 도망쳤지만 세상을 그를 끄집어내려 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영화의 종반까지 세상은 무섭기만 했다.
영화의 종반에 이르러 그는 알게 된다. 중독자인 자신의 악마 같은 삶이 사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좁고 고립된 세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러며 교도소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두려움을 떨쳐버리니 도망가거나 날아갈 필요가 없고, 자연스레 술과 마약은 멀리하게 된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던 '플라이트'(비행)의 추락으로, 그는 아무것도 컨트롤할 수 없게 되어 술과 마약으로 '플라이트'(도망)하였다. 그러던 중 속 시원하게 자신의 모든 걸 밝히고 드러내니 술과 마약이라는 장애물로부터 '플라이트'(해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는 진정한 자유로의 '플라이트'(시작)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책임이었을지 모른다. 부인에 대한 책임, 자식들에 대한 책임, 그리고 파일럿이라는 직업에서 오는 안전한 비행이라는 책임. 그래도 그는 비록 그 기반은 허술했을지라도 그나마 안전한 비행이라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가, 힘들 때면 그에게로 도망가 숨을 곳을 찾을 가족들을 책임져야 할 때인 것이다. 그걸 암시하는 것일까. 영화는 휘태커와 아들의 만남으로 끝을 맺는다.
"오마이뉴스" 2013.3.1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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