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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CG로 커버할 수 없었던 스토리텔링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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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즉, 동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 이토록 매일매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동화는 주기적인 리메이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 할리우드에는 길러도 길러도 계속 물이 샘솟는 요술 우물과 같을 것임은 자명하다.  

할리우드가 요즘 들어 동화에 관심을 두고 이리 틀고 저리 트는 모양새가 가히 심상치 않다. 작년 2012년에만 해도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삼은 <백설공주>,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2013년에는 이미 개봉한 헨젤과 그레텔 원작의 <헨젤과 그레텔 : 마녀사냥꾼>과 3월 7일 개봉 예정인 오즈의 마법사 원작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그리고 <잭 더 자이언트 킬러>까지. 모티브와 내용까지 가져온 영화가 있는 가 하면, 모티브만 가져온 영화가 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어떨까?

감독과 배우를 믿고 본 영화, 그런데...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유주얼 서스펙트>, <엑스맨> 시리즈 등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이언 싱어가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간 블록버스터를 좋아하기에 두말 않고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도 5년 만에 컴백이 아닌가. <엑스맨>에서 보여준 그만의 색깔을 다시금 감상하고 싶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 거대한 놈들과 조그마한 인간의 싸움이 있을 것이다. ⓒ 워너브라더스

영화관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애니메이션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아이들의 눈엔 거대한 놈과 거대한 놈의 얼굴보다 작은 주인공이 서로를 보고 있는 포스터와 "비밀의 문이 열리고 거대한 놈들이 몰려온다"는 문구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나 보다.

반면에 어른들도 많았다. 이들은 아마 '브라이언 싱어'라는 브랜드를 보고 왔으리라 짐작되었다. 물론 요즘 잘 나가는 배우인 '니콜라스 홀트'와 믿을만한 배우들 '이완 맥그리거', '이안 맥셰인' 등의 출연도 한몫했을 테지만. 과연 아이들과 어른들 중 누가 실망하고 누가 환호했을까?

적어도 그 시간 그 영화관에서는 어느 누구의 환호도 들을 수 없었다. 관객들이 리메이크 작품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하나는 어떻게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감동과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인가. 다른 하나는 얼마나 기존의 작품을 충실히 계승해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어정쩡했다. 재해석이라기보다는 동화 '잭과 콩나물', 민담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아서왕의 전설'에서 이것저것 가져와 어느 정도는 개연성에 맞게 버무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는 곧 기존의 작품을 충실히 계승하지 않았다는 말도 될 수 있겠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진한 아쉬움

영화는 주인공인 잭(니콜라스 홀트 분)이 전설의 비밀을 알고 쫓기는 수도사에게서 얻은 콩으로부터 사실상 시작된다. 그 콩은 전설 속 하늘 위에 존재한다는 거인들의 세상 '간투아'까지 자라나는 콩이었다. 잭이 집으로 가져온 콩은 비 오는 날 물을 머금고 하늘로 치솟는다. 하필이면 아주 우연하게 조금 전 잭의 집으로 오게 된 공주(엘리너 톰린슨)가 잭의 집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이를 알게 된 왕은 공주를 구하게끔 잭을 비롯한 왕국의 정예군사들을 올려보낸다.


잭의 집에서 자라나 거인들의 세상 '간투아'까지 자라난 콩나무. 이 콩나무는 인간과 거인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이다. ⓒ 워너브라더스


이들 중엔 전설의 비밀을 알고 절대 왕관을 통해 거인들을 통제해 인간 세상을 삼키려는 왕국의 2인자 로더릭(스탠리 투치)이 있었다. 그는 왕국에서 가져온 절대 왕관으로 거인들을 통제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려 한다. 하지만 왕국의 충실한 부하 엘몬트(이완 맥그리거)에 의해 실패하고 죽고 만다.

결국 절대 왕관은 거인 두목의 손에 들어가고, 거인들은 거인 두목의 통제 하에 인간 세상으로 내려간다. 성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인간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절대 왕관을 차지한 잭이 거인을 돌려보낸다.

언급한 바와 같이 스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다. 영웅 잭과 절대 악 거인, 사건의 원인 콩, 사건의 전개 원인 공주, 충신 엘몬트와 간신 로더릭의 조합과 권선징악의 귀결. 여기서 아쉬운 건 바로 권선징악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선은 인간이다. 표면상 악은 로더릭이다. 개인의 욕망을 이용해 인간 세상을 파멸에 이르게 하려 했으니. 그런데 로더릭은 허무하게 죽고 만다. 그리고 악의 역할을 거인들에게 넘긴다.

거인들은 '추방당해서 잃었던 땅을 되찾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진격한다. 그들에게서 악의 요소를 굳이 찾아본다면, 더럽고 무섭고 크고 인간을 잡아 먹는다는 거다. 여기서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의 명분에서 찾아야 할진데, '복수'가 악의 요소가 된다는 건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무지막지하고 더러운 거인들. 자신들을 쫓아낸 인간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 워너브라더스


CG는 괜찮다... 그런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CG는 볼만하였다. <아바타>에서 사용되었던 실시간 증강현실 시스템인 시뮬캠을 도입해 거인을 볼 때 어떠한 불편함도 없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거인들의 피부를 세세하게 표현한 이유를 들어 '지구'의 모습이 반영되길 바랐다면서 수천년 동안 고립되고 방치된 시간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감독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위 감독의 말은 아무래도 스토리보다 CG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방증이 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하늘 높이 솟은 콩나무처럼 그 기술의 한계가 극대치에 와있는 CG의 기술에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CG의 위대함(?)을 극대화해 상대적으로 허술한 스토리를 커버해 보려는 감독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인간과 거인의 공성전. CG는 괜찮았다. ⓒ 워너브라더스


절대 왕관(예명)도 거대한 괴수와의 싸움이라는 것도 한낱 힘없는 사내가 영웅적인 일을 해냈다는 것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축약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건 한 가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의 소설 자체가 고대 북유럽의 신화에서 많은 걸 가져와 창조한세계와 마물들이 중점을 이루는 것처럼 <잭 더 자이언트 킬러>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 반면 <반지의 제왕>은 뚜렷한 권선징악의 대치와 절대 반지를 없애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와의 대치, 10여년 전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거대한 스펙타클의 끝을 보여주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시선을 조금 바꿨으면 뭘 보여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거인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활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의 전작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이 결코 악인이 아니듯이, 거인들도 악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라면 로더릭을 일찍 죽게 만들지 말고 극단적 악의 존재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좋은 감독에 좋은 배우에 좋은 콘텐츠에 좋은 기술까지, 멍석을 깔아줬지만 이를 활용하지 못해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오마이뉴스" 2013.3.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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