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한 편의 완벽한 정통고전추리소설 <인비저블 게스트>

반응형



[리뷰] <인비저블 게스트>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얻게 해준 <인비저블 게스트> ⓒ㈜더블앤조이픽쳐스



성공한 젊은 사업가 아드리안은 불륜녀 로라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몰린 상황이다. 아드리안은 극구 부인하지만, 로라가 살해된 호텔방에는 아드리안밖에 없었고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거나 나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아드리안은 완벽한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 버지니아를 선임해 난관을 타개하고자 한다. 


버지니아는 오자마자 심각한 사항을 들이민다. 검사가 사건을 반전시킬 만한 증인을 확보했고 3시간 안에 출두해 증언을 할 거란 얘기였다. 아드리안은 진실을 말했다고 하며 아무 문제 없을 거라 주장하지만, 그녀는 더 자세하고 진실된 얘기를 원한다. 아드리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버지니아는 모든 걸 이미 알고 왔다는 듯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곤 아드리안에게 압박을 가하며 감옥에 가기 싫거든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드리안은 비로소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로라와의 3개월 전 교통사고로 은폐하려 한 살인사건과 연관지으려 한 것이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미스터리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Like 고전추리소설


그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고전추리소설이다. ⓒ㈜더블앤조이픽쳐스



<인비저블 게스트>는 정통고전추리소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스토리의 영화다. 영화의 시작을 장식하는 '밀실 살인'은 가스통 르루의 <노란방의 비밀>, 존 딕슨 카의 <세 개의 관> 등의 대표적 밀실살인사건 추리소설의 외형과 분위기를 허술하지 않게 따오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더해진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의 연출은, 클래식한 반석 위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의 급격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이 영화 앞에 '웰메이드'의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되겠다. 고전추리소설 따라쟁이 혹은 반전 영화 따라쟁이가 될 수 있는 위기를 기회로 다잡은 것이다. 


배경과 의상과 음악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에 몰입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큰 변화가 없는 배경, 화려하지 않고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칙칙한 느낌의 의상, 잔잔하지만 긴장의 요소가 다분한 음악. 심지어 배우들도 캐릭터를 위한 연기가 아닌 영화를 위한 연기를 한 듯했다. 이 또한 연출의 한 부분이기에, 연출자에게 심심한 찬사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거짓말에 집중하다


진실이 아닌 거짓말에 집중한다. 그렇게 얻는 건 '이야기' ⓒ㈜더블앤조이픽쳐스



영화는 '진실'이 아닌 '거짓말'에 집중한다.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토리 외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 건 '진실'에 담긴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거짓말'에 단긴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우린 당연히 아드리안의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심각하게 전하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변호를 위해 진실을 알고자 하는 변호사에 의해 거짓말임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없다. 자신의 똑똑함을 아주 잘 아는 아드리안이기에, 버지니아에게 완벽히 이 일을 맡길 수 있는지 떠 보기 위해 거짓말을 자유자재로 써먹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직 완전히 믿을 수 없는 '한 편'과 밀고 당기는 두뇌싸움이 이 영화의 백미다. 만약 이 자리가 재판정이었거나, 상대가 한 편이 아니었다면 이와 같은 자유자재의 거짓말을 써먹을 순 없었을 것이다. 즉, 이토록 재미있는 반전의 연속을 구경할 순 없었다는 말이다.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 판 자체를 짠 능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시험해보는 상황 하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반전들인 것이다. 


악의 본성과 악을 퇴치하는 자


영화는 이야기로만 풀어가진 않는다. 악의 한 면을 보여주며 목소리도 내려 한다. ⓒ㈜더블앤조이픽쳐스



이 영화의 거대한 판, 전체적 이야기, 세밀한 조각들을 아우르는 건, 필연 또는 우연의 부정적 소용돌이 속에서 피어나는 한 인간의 악의 본성이다. 영화는 그 악의 본성이라는 것이 가진 게 많고 쌓아올린 게 높아 잃을 게 많은 인간에게 쉽게 찾아온다고 말한다. 직접적으로 보여지진 않지만, 그만큼 가지는 동안 악도 함께 차곡차곡 쌓인 게 아닐까. 그리고 한 번 감싼 악은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그런 악을 퇴치할 수 있는 건 한낫 경찰 같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악이 찾아와 들러붙은 인간이 하지 못할 건 없다. 대대로 영화에서 악을 퇴치하는 건 지극한 개인의 지극한 복수였다. 이 영화에서도 과연 복수의 슬프고 씁쓸한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까. 마지막 끝의 끝까지 알 수 없다. 


사회가 무너진지, 믿음의 울타리가 무너진지, 개인의 방패막이 허물어진지 오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의 치밀하고 다분히 서스펜스를 장착한 스토리와 명민한 반전은 그 의미가 퇴색된다. 대신 스토리가 이어지며 사이사이 보이는 분노, 슬픔, 위태위태함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무엇이 이 영화를 진정 구성하는 것인지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대부분이 스토리와 반전에 시선을 둘 것이다. 그게 편하고 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내려두고 다른 방법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런 층위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