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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전쟁의 끔찍함 속 유머, 그보다 더한 원칙과 시스템의 황망함 <어 퍼펙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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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 퍼펙트 데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의 유머스럽고 황망한 하루. ⓒ마노엔터테인먼트



1992년부터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1995년 발칸반도의 어느 곳, 내부인과 외부인 콤비가 차를 이용해 우물에 빠진 시체를 끌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시체의 육중한 무게로 밧줄이 끊어지면서 실패한다. 이내 동료들이 당도하는데, 그들도 밧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밧줄이 없으면 시체를 건지지 못하고, 24시간 안에 시체를 건져 우물을 청소하지 못하면 마을의 유일한 식수가 완전히 오염될 것이었다. 그들은 튼튼한 밧줄이 필요하다. 한편, 더 이상의 오염을 막기 위해 시체를 건져낼 때까지 우물을 막아야 한다. 그건 UN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4명인 그들은 2명씩 짝지어 각각 밧줄을 구하기 위해, UN의 도움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사실 하등 어려울 것 없는 일들이다. 튼튼한 밧줄 하나 없을까? 24시간 안에 그런 거 하나 못 구할까? 그런데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시체 때문에 마을 유일의 식수가 오염되었으니 우물을 막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합당한 논리로 UN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너무 쉬운 일인 듯 느껴진다. 하지만 이 또한 황당한 원칙주의를 앞세운 UN의 비논리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정말 좋지 않은 의미로 완벽한 날이다. 


유머에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


영화는 절대 유머를 놓치 않는다. 아니, 유머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출연진들이다. 대가의 반열에 오른 베니치오 델 토로와 팀 로빈스가 각각 팀의 리더와 베테랑 요원으로 분해 극의 중심을 확실히 잡는다. 올가 쿠릴렌코, 멜라니 티에리가 허리를 든든히 받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다름 아닌 팀 로빈스가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유머'에 있다. 


인류사에 길이남을 '인종청소'로 유명한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겪은 직후라는 배경에 마을 유일의 식수가 완전히 오염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 겹치는 지극히 일촉측발의 하루를 보여줌에도, 영화는 팀 로빈스가 분한 B를 앞세워 유머를 최우선적으로 내보이려 한다. 


심각한 상황임에 분명함에도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한 유머를 주로 선보이는데, 그럼으로써 전쟁이라는 비극이 촉발한 끔찍한 사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전쟁, 그것도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난 내전의 참모습이겠지만 그럼에도 유머가 계속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유머는 한편 인간성을 포기한 이 내전에 휴머니티, 즉 인간성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건 비단 B뿐만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태생이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영화 전체로 이어진다. 그리고 종국엔 제목과 지극히 반(反)하는 하루의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한 유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유머에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 제목 <어 퍼펙트 데이>가 주는 아이러니함도 그 자체로 유머가 아닌가. 


전쟁의 직설적이고 모순적 끔찍함


주인공들이 놓인 상황은 내전의 막바지다. 즉, 전쟁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마노엔터테인먼트



밧줄을 찾으러 간 B의 팀에게 리더가 요청한 게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닌 '공'. 리더의 팀이 UN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던 길에 한 아이(니콜라)가 또래 불량 소년들에게 공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았다. 리더는 불량 소년들에게 공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이 총으로 위협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는 어느새 이 요원들에게 중요하게 인식되지만,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의 직설적 끔찍함과 모순적 끔찍함을 모두 상징하는 게 니콜라인 것이다. 그 아이는 지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전쟁 때문에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 엄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내전으로 니콜라 같은 아이들은 너무 많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사실상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 없는데, 불과 20여 년 전에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양상이다. 여기서 더욱 끔찍한 건 '내전'이라는 전쟁이 주는 모순이다. 그 모순의 한복판에 니콜라의 가족이 있었고, 니콜라 가족의 집이 있었다. 


밧줄과 공을 찾으러 급기야 니콜라의 옛집을 찾은 요원들, 그들은 여러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한다. 집의 어느 곳엔 지붕이 없었는데, 니콜라 가족들이 달아난 사이 이웃사람이 와서 폭발시켜버렸다는 것이었다. 니콜라의 부모님이 서로 내전에서 적과 적으로 있는 계였기 때문이었다. 이웃사람들은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달아날 곳은 없었다. 니콜라의 부모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원칙을 위한 원칙,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황망함


전쟁보다 더한 치명적 상황은, 원칙과 시스템에 목매인 원칙과 시스템이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방면은 원칙을 위한 원칙,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의 황망함이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사람의 목숨이거늘, 그러하기에 유일한 식수가 오염된 상황에서 처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그 원인을 제거하고 또 제거하기 전까지 임시로라도 막아놓은 것임이 당연한 것임을, UN은 그보다 원칙과 시스템을 따르고자 한다. 


물론 그들이 내세운 이유도 사람의 목숨이다. 시체로 오염된 우물 말고도 근처에 2개의 우물이 더 있는데, 그곳엔 지뢰가 설치되어 있고 아직 제거하지 않은 상태다. UN은 시체로 오염된 우물보다 지뢰 제거가 우선이라는 원칙 하에서 확고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지뢰 폭발은 당면한 눈에 보이는 최고 최악의 위기다. 무엇보다 빨리 해치워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식수 오염이라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광범위하게 지대한 위기를 줄 것이 뻔한 사태보다 시급할까. 그들에게는 '식수 오염'으로 죽는 사람보다 '지뢰'로 죽는 사람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의 목표는, 그들이 하달받은 목숨에, 그들이 지켜야할 사람에, '식수 오염' 관련된 조항은 전혀 없다. 그럼 끝인 것이다. 더 이상 거들떠볼 것도 없다. 


진정 전쟁보다 더 황망한 게 이런 모습들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영위하고 전쟁 덕분에 살아가는 것들도 다름 아닌 이런 모습이다. 정녕 그들의 유연성 없고 고지식하며 완벽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면에서 그리 완벽하고, 모든 순간에 그리 완벽하면, 우리네 사는 인생의 하루하루가 어찌 완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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