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의 20세기>
'아트버스터'라 부르기 충분한 영화 <우리의 20세기>. ⓒ그린나래미디어㈜
1979년 미국 서부 산타 바바라, 약관 15세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 분)는 40살 많은 엄마 도로시아(아네트 베닝 분)와 함께 산다. 하숙하는 사람이 둘 있는데, 20대 애비(그레타 거윅 분)와 40대 윌리엄(빌리 크루덥)이 그들이다. 그리고 매일 같이 제이미 방에 몰래 놀러와 자고 가는, 제이미의 친구 17세 줄리(엘르 패닝 분)가 있다.
각자 소소한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그들, 제이미 덕분에 또는 때문에 뭉친다. 제이미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도로시아가 혼자서는 자신이 없으므로 애비와 줄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제이미를 보살펴 주고 가르쳐 주라고 말이다. 즉, 제이미를 함께 키우자는 뜻이었다.
애비와 줄리는 지극히 열려 있는 여성으로서 남자가 알아야 할 것들을 제이미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그 나이대에 비해선 굉장히 열려 있는 여성인 도로시아가 보기에도 그건 굉장히 급진적이거니와 '잘못된' 방향인 것 같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해도, 머리로는 가능한대 가슴으로는 불가능한 세대 간의 간극처럼 말이다. 그녀가 보기엔 제이미가 전에 없이 빗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좋을까.
그들이 보여주는 20세기
그들이 보여주는 20세기는 어떨까. 우리는 왜 그들의 20세기를 봐야 하는가.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나이도, 세대도, 성도, 삶의 방향이나 지침도, 생각도 완전히 다른 다섯 남녀를 통해 지나간 지 한참이나 되어버린 20세기의 면면을 보여준다. 21세기도 어언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선 한꺼번에 '옛날'로 치부해버리곤 하는, 치부해버릴 수밖에 없는 20세기를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이 영화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 한 줄이 그 목적을 말해준다. "난 아들에게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제이미가 감독의 어린 시절을 비추는 거울이었을 게 분명한 만큼, 그의 어머니 즉, 도로시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의 아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20세기가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개개인의 '소서사'를 당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들과 함께 배치해 보여주고 설명하는 구조를 택했다. 1920년대생 도로시아, 1940년대생으로 추측되는 윌리엄, 1950년대생 애비, 그리고 1960년대생들인 줄리와 제이미까지. 1979년 당시까지, 오롯이 20세기를 관통하는 세대들이다. 얼핏 다큐멘터리적인 장면들인데, 미장센이 상당히 감각적이라 지루할 새가 없다.
1980년대 이전, 진정한 '자유'의 시대
그들이 보여주는 진정한 20세기는 1980년대 이전의 진정한 자유의 시대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영화에도 나오지만 1979년은 적어도 미국에 한해서 '소비와 환락의 시대'의 마지막이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대적인 연설로 '절제와 통제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듬해 출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영화가 말하는 '20세기'란 1979년까지를 말하는 것일 테다. 그 이후 다섯 사람의 행보를 간략히 들어보면, 모두 마치 한 사람인 양 획일화된 삶이다.
그런 측면에서 1980년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며 '너희의 20세기'란 제목을 붙여도 되겠다 싶었다. 사회문화비평적으로 상당한 소구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 영화에도 그런 소구점들이 눈에 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페미니즘'으로, 원제가 '20TH CENTURY WOMEN'인 만큼 세 여성의 생각이 얽히고 부딪히고 맺어지는 부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사이 사이 세대와 문화와 환경에서 비롯된 여러 차이들이 산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키움을 당하는 제이미뿐만 아니라 키움을 행하는 도로시아, 애비, 줄리도 모두 이 거스르기 힘든 차이들로 혼란스러워 하고 불편해 하고 힘들어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나아갈 수 있었던 건 1979년까지의 진정한 자유의 시대 20세기 덕분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순 없어도 인정할 준 알았다. 거기에 편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은 장치들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이 영화를 수놓는데, 하나같이 영화의 품격을 높이는 데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그린나래미디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에 각종 장치들이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개개인의 '소서사'를 당대를 상징하는 중요 요소들과 함께 다큐멘터리적으로, 그러나 감각적으로 보여준 게 가장 큰 장치라 하겠다. 오히려 시대가 아닌 개인이 보이고 기억에 남는 훌륭한 의도적 역효과를 일으켰다.
여기에 자주 선보이며 항상 같은 느낌으로 보여주는 장치들에 빨리 감기, 홀로그램, 미래몽환적 음악 등이 있다. 이 장치들을 한 번에 선보일 때가 종종 있는데, 현실에서 벗어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을 묘사할 때다. 누가 보아도 인상적일 텐데, 누군가에겐 최고의 장면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평생 몇 번 느껴볼까 말까한 진정한 자유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우린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그저 '20세기'라고 통칭하는 20세기도 이토록 수많은 점점들로 나눌 수 있고 수많은 시대들로 나눌 수 있을진대, 21세기도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러한 면면들이 있지 않겠나. 그렇지만 당대는 모른다. 아직 역사의 한 모퉁이로 진입하지 않았기에. 나는 바란다. '우리의 21세기'에 한순간이라도 진정한 무엇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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