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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잔잔하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웰메이드 성장 드라마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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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몬스터 콜>


삶의 진리와 사랑으로 귀결되는, 인생에 대한 다양한 은유의 결정체 <몬스터 콜>. ⓒ롯데엔터테인먼트



2년 전 개봉해 찬사를 받은 명품 애니메이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무스타파라는 현자가 말하는 삶의 진리와 사랑 이야기를 9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최대한의 시너지로 풀어내었다. 직설적으로 전달되는 진리의 향연이 90여 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내내 계속되기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현자 같은 이(몬스터)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는 애니메이션화되어 이해를 도우며 결국 삶의 진리와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생각나게 하는 <몬스터 콜>은 다양한 은유의 결정체다. 현재를 기반으로 하되 다분히 판타지, 그것도 다크 판타지적인 세계관이 이를 가능케 한다. 


'성장'과 '가족'을 주요 키워드로, 인생과 작별과 마음 등의 키워드가 뒤를 받힌다. 데인 드한이 생각나게 하는 연기를 펼친 루이스 맥더겔이 주인공 코너를, 익숙한 이름들인 펠리시티 존스와 시고니 위버가 코너의 엄마, 할머니 역을 맡아 영화의 품격을 높혔다. 무엇보다 목소리만으로 극의 중심을 잡은 리암 니슨은 CG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몬스터에 확실한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진실 뒤에 찾아오는 거대한 슬픔과 깨달음


어린 나이, 하지만 너무도 힘든 삶의 코너. 그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성장통이자 통과의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집에선 암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가 있고, 학교에는 사정없이 괴롭히는 놈들이 있다. 그 때문인지 코너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또래와는 뭔가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집에서 멀리 보이는, 공동 묘지 한가운데의 큰 나무가 몬스터로 변해 집으로 들이닥친다. 그러곤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다 듣고 나서는 코너보고는 진실된 네 번째 이야기를 해야 한단다. 


코너에게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외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코너를 데려가고자 한다. 아무래도 딸에게 큰 가망이 있는 것 같진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코너는 그게 너무나 싫다. 엄마가 죽는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거다. 아니 그는 엄마가 금방 나을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밤 12시 7분이면 찾아오는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가지 이야기는 코너의 일상과 묘한 병렬을 이룬다. 코너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걸까. 몬스터는 진짜일까 그저 꿈 속의 환상일까. 코너 안에 내재된 또 하나의 코너일까. 그런 와중에 엄마의 병은 악화되고 코너는 점점 엇나간다. 할머니는 물론 이혼한 아빠와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코너를 이끄는 건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몬스터다. 코너도 그걸 느꼈는지 몬스터를 만날 12시 7분을 기다리는 것도 모자라 시계를 돌려 몬스터를 억지로 불러낸다. 그리고 코너는 결국 네 번째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거기엔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그 후에 찾아오는 깊은 깨달음이 있다. 


불행이 우리를 덮칠 때


어마어마한 불행이 덮치려 한다. 헤어나올 수 없다. 마주볼 수 있을까? 마주보아야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불행이 우리를 덮칠 때, 불행은 다른 무엇도 아닌 불행 자체로 나타난다. 우린 대부분 저항할 생각도 못한 채 넋 놓고 불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곤 곧 불행을 덮어둔 채 시선은 불행이 덮친 나를 향한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내가 아니다. 불행한 나일 뿐이다. 애초에 잘못된 것이다. 


불행이 우리를 덮칠 때 우선 불행을 마주보아야 한다. 나중에야 이미 불행한 나로 시선을 향하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니, 일단 불행이 덮치면 모든 게 달라지므로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훈련이라도 하란 말인가.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영화는 말한다.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며 공유해야 한다고 말이다. 즉, 기쁨은 함께 하고 슬픔은 나누라는 말일 테다. 어렵기는커녕 지극히 쉬운 이 명제를 영화는 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그렇지만 유치하지 않게 그려낸다. 코너가 대화해야 하고 대화하게 되는, 슬픔을 나누어야 하는 대상들이 어른들이기 때문에 그 어른들 또한 나름의 성장을 하는 것이다. 


코너가 말해야 하는 네 번째 이야기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뭔가 크나큰 비밀이 있는 것일까. 절대 말할 수 없는 잔인하고 기가 막힌 비밀일까. 불행과 슬픔, 모순적 마음, 성장에 관련된 마음 속 깊숙히 숨겨놓은 코너만의 비밀이라고만 말해둔다. 당연히 죽어가는 엄마와 항상 불안에 떨고 불편하고 불만에 차 있는 코너의 표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가리라


불행은 곧 작별이다. 작별 뒤엔 무엇이 있을까. 그래도 저래도 '삶'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코너의 엄마는 죽어 간다. 죽는 게 확실하다. 그 자신도 알고 코너의 할머니도 알고 코너도 안다. 즉, (죽음에 의한) 영원한 작별이 멀지 않다는 걸 다들 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작별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미 누군가와의 작별을 해봤을 게 분명한 어른들도, 누군가와의 작별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잘 모르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반드시 당면하게 될 건 다름 아닌 '작별'이다. 분신과도 같은 사람과의 작별이라도 그건 명백한 진실, 하지만 맞닥뜨리면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은 진실이기도 하다. 몬스터는 그 모든 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인간적인 마음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진실이라고 말한다. 


우린 사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 그리고 과정까지도 모두 꿰뚫을 수 있다. 아니, 이미 꿰뚫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삶의 요소들이 변주되고 은유로 표현되는 장면 장면들은 이 영화의 것만도 코너의 것만도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잔잔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건, 영화를 보는 우리들 현재 삶의 결이 영화 주인공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잊지 않고 좋은 일 슬픈 일 모든 걸 기억해야 한다. 또한 그 기억을 공유해야 한다. 우린 혼자가 아니다. 그 기억을 공유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곳엔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는 우주를 구성하는 핵심이 있다.